전락의 고향

11

 

홍인제가 가버린 뒤 고요해진 병원은 찬수로 하여금 질식할것 같은 답답증과 울분을 자아냈다. 하여 그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요란하게 쏟아지고있었다.

이윽고 그는 불을 끄고 잠들려 하였다.

얼마간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진찰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였다.

찬수는 갑자기 긴장되였다. 아까 홍인제에게서 들은 말도 있어서 혹시 형사놈들이 영준을 잡으러 온것이나 아닌가싶어 귀를 기울이고 동정을 살피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확실히 녀자의 급한 목소리였다.

찬수는 정말 누가 왕진을 청하러 온것만 같아 얼른 일어나 불을 켜놓고 진찰실로 나갔다.

《누구십니까?》

《네, 문 좀 열어주세요.》

《? …》

찬수는 좀 이상스러웠으나 급한 용건이 있는것만 같고 또 컴컴한 유리창밖이지만 녀자 한사람밖에 없는것 같아 문을 열어주었다.

스물네댓가량 되여보이는 젊은 녀자였다. 머리는 파마를 하고 비록 화려하지는 못하나 검정세루양복저고리에 람색양복치마를 입었고 신발은 흰 운동화를 신었으나 진흙투성이가 되여있었다.

그는 종이우산을 들고 왔으나 비바람이 쳐서 그런지 옷이 거의다 후줄근하게 젖어있었다.

그는 무엇인가 제법 커보이는 보퉁이를 하나 들고있었다.

그는 보퉁이를 진찰실에 내려놓고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에 묻은 비물을 씻고나서 찬수를 향하여 입을 열었다.

《저- 선생님이 홍선생님이세요?》

찬수는 깜짝 놀랐다. 대체 누구이기에 자기를 알며 또 이 밤중에 자기를 찾아온것일가?

《네, 그렇습니다. 누구십니까?》

찬수는 진찰실이 어둡지는 않았으나 비에 온몸이 젖은 그가 몹시 추워보였으므로 《자! 이리 들어오십시오. 비를 많이 맞으셔서 추우시겠습니다.》 하고 자기가 먼저 앞서며 숙직실안으로 안내했다.

《그럼 좀 실례하겠어요.》

녀자는 곧바로 숙직실로 들어왔다.

그는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둥근것이 어딘가 소박해보이고 귀여운데가 있었다.

그는 웃목에 얌전히 쭈그리고 앉더니 바로 찬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를 잘 모르시겠지요? 저는 지은숙이예요.》

녀자는 순박한 얼굴에 방그레 웃음을 띠웠다.

찬수는 이 순간 더욱 놀랐다.

《아, 은숙씨로군. 전혀 몰라보게 됐습니다. 그것이 벌써 10여년전의 일이였으니까요. …》

찬수는 갑자기 지나간 옛날이 회상되였다.

그때 찬수는 소학교 6학년이였고 은숙이는 1학년에 입학했을 때였다.

장마가 져서 개천에 물이 많이 불었을 때 은숙이가 울면서 건느지 못하는것을 찬수가 등에 업어 건네준 일이 한두번만이 아니였다.

그 시절 자기 등에 업혀다니던 어린 은숙이가 이렇게 몰라보게 자라 묘령의 처녀가 된걸 생각하니 흐르는 세월이 너무나 빠른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 병원에 와있는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실은 내가 다리를 좀더 치료해가지고 은숙씨가 계신 곳을 찾아가려 했습니다만…》

찬수는 은숙의 얼굴을 건너다보며 궁금한듯이 물었다.

《네, 이곳 리선생헌테서두 대강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은 오늘 아침에 서울서 편지가 와서 더 똑똑히 알게 됐어요.》

《네? 서울서요? 누구에게서요?》

《지용세아저씨에게서요. …》

《그럼 실례이지만 그 편지를 좀 보여주실수 없습니까?》

찬수는 성급하게 말했다.

은숙은 자기 양복저고리 속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여 찬수에게 내주었다.

틀림없는 지용세의 편지였다.

편지내용은 간단하였다. 자기는 그 사건으로 고생하다가 며칠전에 나왔는데 혹시 죽촌리 홍인제씨의 병원에 인제씨의 5촌조카되는 선생이 입원하고있는지 알아볼것과 그가 있거든 동봉하는 편지를 전하라는 글이 씌여있었다. 그리고 은숙이의 아버지가 구금중에 병이 났다는 글까지 씌여있었다. 찬수는 얼른 자기앞으로 보낸 동봉한 편지를 펼쳤다.

《홍선생! 나와보니 계시지 않아 정녕 고향으로 내려간것이 확실하였으므로 편지를 보냅니다. 그곳이 치료에 불편하시면 곧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나의 현명치 못한 간판영업에서 생긴 불찰로서 선생에게 큰 상처를 입혀드렸다고 생각되여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또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지용세.》

찬수는 용세의 편지를 읽고 그의 고마운 심정에 감동되였다.

그러나 찬수는 은숙이가 어떻게 되여 이곳 젊은 의사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와는 어떻게 알고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당장 오늘일을 알고나 있는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 병원의 리선생을 오늘 만나셨습니까?》

《네, 아까 만났어요.》

《네, 그래요?》

《참 그리구… 리선생이 선생님께 말루 전하라구 하면서 래일 아침에는 꼭 병원에서 피하시라구 하던데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리선생은 지금 안전한 곳에 있습니까? 또 만나실수 없습니까?》

찬수는 좀 지나친 질문인듯 하여 은숙의 표정을 살피였다.

《글쎄요, 이젠 만날것 같지 않아요.》

은숙은 이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기분을 바꾸어 찬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제가 새벽차로 서울에 올라갈가 해요. 그래서 오늘 밤에 편지를 전해드리지 않으면 기회가 없기때문에 이렇게 늦었지만 뵈러 왔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비가 오는데 하필 오늘 가시려구 그러십니까?》

《아저씨의 편지를 안 받았으면 모르지만 받은 이상 어찌 하루라두 머무를수 있어요. 아버지의 차입문제두 급하고 또 얼른 가서 아버지면회도 해야겠어요.》

은숙의 이 말에는 찬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언제 내려오시겠습니까?》

《가봐야 알겠어요.》

은숙은 이 순간 얼굴이 침울해졌다.

《지금 학교에 계시지요?》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그만둔게 아니라 면직을 당한셈이예요.》

은숙은 쓸쓸한 웃음을 얼굴에 띠웠다.

《아니, 면직을?》

《조건이 한두가지는 아니였죠. 수업료미납자들에게 퇴학처분을 주기에 반대했더니 그게 빨갱이사상이라나요. 또 결식아동들에게 체벌을 가하는것을 보고 반대했더니 그것두 빨갱이사상이라구 하며 면직시키더군요.》

은숙의 대답은 간단하였으나 그의 얼굴에는 농촌교원생활에서 받은 쓰라린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있었다.

《그럼 구태여 이 고장으로 다시 내려올 필요도 없군요.》

찬수의 이 말에 은숙은 잠간 대답을 주저하더니 《좌우간 가서 결정하겠어요.》 하고 약간 고뇌의 빛을 보이였다.

그리고는 곧 자기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몇시 찹니까?》

《아직 차시간은 넉넉해요.》

《그렇지만 비가 이렇게 와서 정거장까지 나가시기가 곤난하겠습니다.》

《산길로 질러가면 가까운걸요 뭘!》

《그렇지만 이 밤중에 산길을 어떻게 혼자서 가십니까?》

《이렇게 비가 많이 올 때는 괜찮아요.》

은숙은 천진한 아이처럼 방긋이 웃었다.

찬수는 은숙이가 올라가는 편에 용세에게 편지를 써보낼가 하여 종이와 연필을 꺼내였다. 그러나 그는 선뜻 생각되는것이 있어 다시 집어넣고나서 말로 전해달라며 안부를 부탁하였다.

이윽고 은숙은 찬수에게 작별을 고하고 일어섰다.

《자, 그럼 조심해가십시오. 나두 쉬이 올라가겠습니다.》

《그럼 얼른 치료를 더하시구 곧 올라오세요.》

은숙은 보퉁이와 우산을 다시 들고 비내리는 어둠속으로 나섰다.

찬수는 한참동안 진찰실문앞에 서서 그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가 호젓한 산길을 혼자서 걸어가는것이 암만 생각하여도 불안스럽고 걱정이 되였다.

비줄기는 더 굵어지고 바람까지 몹시 불었다.

때때로 천둥이 꽈르릉- 울릴 때마다 찬수는 오늘 밤 농민들의 아우성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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