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문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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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문짝만 한 그림판을 지고 화구가방을 든 찬수는 허물어진 옛 성터의 돌자갈밭을 밟으며 인왕산기슭을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소나무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험준한 절벽들, 누렇게 단풍이 들어 잎사귀는 거의다 떨어져버린 댕댕이덩굴이며 담장덩굴, 칡덩굴들이 제멋대로 뻗어올라가 한데 엉클어져 몸뚱이를 뒤덮은 바위들, 여기저기 자차분하게 피여있는 소박한 가을꽃들, 어느 나무가지에선지 《쪼비, 쪼비, 쪼비비?》 하고 종알대는 이름모를 새들… 그는 마치 깊은 산골에나 들어온것 같은 한적감을 느끼였다.

그는 얼마만에 무너진 옛성터를 지키고 섰는듯 한 우뚝 선 늙은 소나무 한그루가 정면으로 보이는 참나무아래에 화판을 내려놓았다.

늙은 소나무의 늘어진 가지사이로는 안개에 잠긴 남산이 낮게 보이였고 크고작고 높고낮은 서울장안의 지붕들과 거리들이 피여오르는 아침연기에 자욱하게 잠겨있었다.

제법 싸늘한 바람이 이따금 나무가지를 스칠 때마다 전차달리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찬수는 화판을 세워놓고 화구가방을 열었다.

그는 붓에 채색을 찍기 전에 잠간동안 눈을 감았다뜨며 자기 정면에 우뚝 서있는 늙은 소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학교에서 면직당한 이후 자기 그림의 모델이 되여 벌써 4~5일동안 이른아침마다 서로 대하고있는 이 늙은 소나무가 오늘은 웬 일인지 자기에게 더 정답게 어떤 심정을 호소하는것만 같았다.

늙은 소나무는 큰 죽지 하나가 부러져있었고 미끈한 몸뚱이에는 여러 군데 상처를 입어 병신이 되였다.

1950년 9월 하순, 해방된 서울을 다시 강점하기 위하여 미제침략군은 맹폭격을 가해서 수많은 시민들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하고 화재를 일으켰으며 장거리포탄을 퍼부어 남산과 인왕산과 북악산 등 서울주변의 산들을 거의 파헤치다싶이 했던것이다.

울창하고 아름다운 수목들은 죽지가 부러지고 불에 타버리고 뿌리채 패여져 참담한 살풍경을 이루었다.

그때 이 소나무도 파편에 맞아 큰 죽지 하나가 부러지고 여러 군데에 상처를 입은것이였다.

찬수는 이 늙은 소나무-전쟁에 상처를 입은 이 가엾고 불행한 나무를 그림의 모델로 삼은것이 자기도 무슨 까닭인지 얼른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학교에서 면직당한 이후 우울한 기분을 가시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는데 정력을 바치려고 한것이였다.

자기가 갈길은 오직 창작의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앞으로 개인전람회를 가지기 위하여 우선 서울부근의 풍경화 몇장을 그려두려고 모델을 구하다가 선뜻 눈에 뜨인것이 이 늙은 소나무였고 어딘지 모르게 이 나무에 매력을 느낀것이였다.

예술이란것이 현실을 똑바로 반영해야 하는것이라면 자기딴엔 이 상처받은 소나무를 그려 이 땅의 현실을 옳바로 반영하려 한것이였다.

8. 15해방이후 12년이 지나갔으나 아직도 통일이 되지 못한채 북남으로 갈라져있는 조선은 마치 죽지가 부러진 이 소나무와 같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이 소나무에서 강인한 인내성과 불굴의 투지와 고상한 기개를 발견하였다.

찬수는 바로 이 상처받은 소나무가 시들어죽지 않고 그대로 버티고 서서 꺾어진 죽지에서 새 가지가 돋아 푸른 기개를 자랑하는것이 마치 조선사람의 강인한 인내성과 불굴의 투지와 고상한 기개를 상징하는것이라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는 붓에 푸른 채색을 찍어 화폭으로 옮기였다.

그는 오늘 이 소나무의 배경으로 들어갈 서울시가지를 바라보다가 아직도 전쟁의 상처를 가시지 못한채 파괴된 건물흔적이 군데군데 그대로 남아있는것을 발견하였다. 뿐만아니라 자기가 현재 그림을 그리고있는 소나무밑에서 불과 50메터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도 폭탄구뎅이를 손쉽게 발견할수 있었다.

불벼락을 맞아 한쪽귀퉁이가 다 타버린 산기슭, 폭탄과 포탄에 바스러지고 갈라진 바위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였다.

그는 전쟁이란 인간을 죽이고 생활을 파괴할뿐만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까지도 모조리 파괴하고 죽이고 빼앗아가는 무서운 악마라고 생각되였다.

어느덧 해살이 높이 솟아올랐다. 시가지에 자욱하던 아침연기도 차차 사라졌다.

그는 광선관계가 달라진데서 오는 색채의 차이, 명암과 원근의 변화로 인하여 그림을 더 그릴 생각을 단념하였다.

그는 화구를 정리해 가방에 넣고 화판을 다시 등에 졌다. 그는 무심코 자기 시선이 마리야녀학교가 보이는 산기슭으로 옮겨졌을 때 얼른 고개를 돌리며 북악산쪽을 건너다보았다.

마리야녀학교의 지붕까지도 보기 싫었기때문이였다.

그는 다시 아까 걷던 성터길을 걸어내려갔다.

자하문고개로 넘어오는 신작로로는 세검정로정을 거쳐 북한산으로 등산을 가는 미국인남녀들을 태운 찌프차들이 먼지를 날리며 련달아 달려왔다.

등산모를 쓰고 등산배낭을 멘 젊은 남녀들, 학생들, 단장을 짚은 늙수그레한 신사들이 서로 지껄이며 희롱질하며 걸어오고있었다.

자하문밖에 능금꽃이 피기 시작할 때부터 첫겨울이 될 때까지 일요일만 되면 등산을 가는 일부 유한계층들을 볼 때마다 찬수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찬수는 이 사람들처럼 등산을 해본 일이라고는 한번도 없었다.

속사를 하기 위하여 화판과 화구가방을 들고 산에 올라간 일은 적지 않았으나 술과 과일과 음식을 흠뻑 싸서 지고 녀자와 희롱거리며 가본 일은 더구나 없었다.

지난날 그의 생활이 그러한 환경에 처해있지 못했기때문이였다.

고학으로 화가가 된 그는 20전후의 꽃다운 시절에 가질수 있는 화려한 랑만의 세계를 가져보지 못했던것이였다.

그는 화려하고 경쾌하게 차린 젊은 남녀들이 쌍쌍이 짝을 지어 소곤거리며 세검정쪽으로 내려가는것을 보며 한편 부러운 생각도 났고 다른 한편 가벼운 질투심에 가까운 기분도 느끼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라는듯이 고개를 흔들며 그런 생각을 잊으려 하였다.

지금 자기앞에 긴박하게 다달은 문제는 현실적인 생활문제인것이다.

앞으로 자기 생활문제를 어떻게 타개해나가야 옳을것인가? 그는 생각할수록 막연하였고 불안스러웠다.

이제는 다시 학교에 미술선생으로 취직이 되기는 글렀고 또 하고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벗어붙이고 로동자가 될수 있느냐 하면 그런것도 될수 없었다.

로동에 대한 경험도 기술도 없었을뿐더러 실직자가 사태가 난 판에 무슨 일자리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살것인가? 그것은 더구나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는 이렇게 절박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하숙이 있는 골짜기로 들어섰다.

그는 하숙집대문에 들어서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 화실문앞에 뜻밖에 녀자의 흰 고무신 한컬레가 놓여있었기때문이였다.

찬수는 가볍게 기침을 하고 문을 드르렁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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