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의 고향

7

 

속사첩에 그려진 영옥의 그림을 본 후 젊은 의사의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심상치 않다는것을 민감한 찬수 역시 모를리는 없었다.

신문뭉치를 가지고 나갔다가 다시 가지고 들어올 때의 젊은 의사의 표정, 또다시 진찰실로 나갈 때의 태도가 속사첩을 보기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것 같기도 했고 또 심각한 어떤 사색이 그의 얼굴에 떠도는것 같기도 했다.

찬수는 젊은 의사가 영옥이의 속사에 대하여 모델이 있느냐 없느냐, 이름이 무어냐 하고 꼬치꼬치 파고들던 태도가 암만해도 이상스러웠다.

정녕 이 젊은 의사가 영옥이의 오빠 영준이가 아니라면 영옥이를 잘 알고있는 청년이라는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되였다. 그를 다잡아 앉혀놓고 어떻게 돼서 영옥이를 잘 아는가 또 어떤 관계인가를 물어보고싶은 충동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이 젊은 의사에게 자극을 주다가는 도리여 자기의 본색이 드러날것만 같아 그 충동을 억제하고말았다.

이러한 촉감은 너무도 과민한 경각성에서 나온것이였으나 그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도리여 서글프게 쓴웃음을 참을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찬수는 어느덧 젊은 의사에게 모든것을 낱낱이 털어놓고 자기의 정체를 밝히더라도 무슨 화근이 미칠 일은 없을것처럼 그가 믿음직스럽게만 생각되였다.

얼마후 숙직실문이 열리였다. 젊은 의사가 왕진가방을 가지러 들어온것이였다.

《좀 먼데루 왕진갑니다. 아마 오늘 밤두 못 들어올것 같습니다.》

젊은 의사는 찬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다녀오십시오.》

찬수가 인사말을 하기가 바쁘게 젊은 의사는 바삐 밖으로 나가버리였다.

이윽고 진찰실도 숙직실도 고요해졌다.

해가 저물자 그의 5촌아주머니가 목판에 찬수의 저녁밥을 이고 왔다.

《아주머니, 이젠 가지고 오시지 마십쇼. 내가 다니면서 먹겠습니다.》

찬수는 5촌아주머니에게 미안했으므로 일어나 앉으며 사의를 표했다.

《괜찮아, 어서 가만히 누워서 치료해야지 왔다갔다하면 되나?》

아주머니는 인자하게 말하고는 어느덧 밖으로 내려가 아궁이에 군불을 때는것이였다.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아주머니가 아니면 어린 6촌동생들이 차례로 밥을 날라다 주고 군불을 지펴주는것을 생각하면 몹시 거북하고 미안하였으므로 웬만하면 자기가 다니면서 식사를 하려 한것이였다.

찬수는 좀 무리를 해서라도 걷는편이 5촌집에 덜 미안하고 또 갑갑증도 어느 정도 풀릴것 같았다.

그는 오늘 밤은 단연히 걸어나가 마을사람들을 찾아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저녁을 먹고나서 쌍지팽이를 짚고 천천히 발길을 옮기여 마을로 향했다.

실은 오는 날로 마을사람들을 만나보고싶었으나 로독이 심하고 상처가 도져서 다닐수가 없었던것이였다.

그는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며 발길을 옮기였다.

골목길은 모두다 변했고 집들도 모두 찌그러져서인지 위치조차 달라진것 같아 옛날의 인상에 남았던 소학동창네 집들이 어디가 어디인지 잘 분간할수가 없었다.

찬수는 자기가 살던 장군바위마을사람들의 일부가 여기로 쫓겨와서 이 마을 사람들과 섞이여 산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디에 사는지 얼른 분간할수가 없었다.

골목은 어둑컴컴하였고 사람의 흔적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쌍지팽이를 짚은 거지로 본 모양인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개떼가 나와 사납게 짖어대기만 했다.

찬수는 개를 쫓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또 피할 생각도 없이 태연스럽게 걸어갔다.

그는 마을에 있는 사랑방을 찾아가면 누구든지 알만 한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되였다.

그는 어느 집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5~6명이 넘는 로인들과 몇몇 젊어보이는 농민들이 침침한 석유등불밑에 모여앉아 담배들을 피우며 무슨 이야기들을 하기도 하고 새끼들을 꼬기도 했다.

찬수는 덮어놓고 방안으로 불쑥 들어가며 방안사람들을 살피였다.

그는 어린시절에 그리고 10년전에 잠간 고향에 돌아왔을 때 만났던 어른들이 모여있지나 않은가 쭉 한번 살피였다.

《아니, 자네 이게 홍군 아닌가?》

젊은 농민 하나가 깜짝 놀라며 찬수를 반가이 맞이해주었다.

《아, 참 몰라보게 됐군! 자네가 바루 상설이지?》

찬수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른팔이 없는 병신이였다.

《여러 어른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바루 홍인제씨의 5촌조카올시다.

오래간만에 고향에 돌아온김에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찬수는 빙그레 웃으며 로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오오 그래. 원, 그렇구나! 자네 얼굴이 어렸을 때와는 아주 딴판이 됐네그래.》

《아니, 그런데 다리는 어쩌다 다쳤나?》

《그래, 고향마을에 오니 쓸쓸하구 서글프지 않나? 자네 부모님들이 살아계셨다면 자네두 반갑겠지만…》

《선친이 살아있은들 별수야 있겠나. 고향마을이 이렇게 쇠통 변해버렸다네. 아마 자네는 그동안 이렇게 변한줄 몰랐지?》

로인들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찬수를 건너다보며 한마디씩 건넸다.

《정말 많이들 년로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상설이허구 학교에 다닐때만 해두 모두다 헌다는 장정들이시였는데…》

찬수는 옛날일이 엊그제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그때 상설이와 마을뒤 대밭에서 큰 대나무를 몰래 베여내다가 상설의 삼촌에게 들켜 야단을 맞던 기억이며 또 그와 함께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다가 그의 삼촌어머니에게 혼쌀이 났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래, 자넨 그동안 서울에 있었나? 동경 가서 그림공부하고 왔으니 자넨 괜찮은줄 알았더니만 자네두 보아허니 세월을 잘못 만난것 같네그려.》

찬수를 유심히 살피며 걱정스럽게 말하는 로인은 바로 상설의 삼촌이였다.

그는 찬수가 입을 벌리기도 전에 계속 말을 했다.

《자네두 원래 농사군의 자식이니 별수 있겠나. 지금 세상에는 돈이 제일이야! 우리 상설이두 글쎄 돈만 있었더면 징병인지 염병인지 끌려가지 않았을거구 저렇게 팔이 잘리워 돌아오지 않았을것을… 그래두 목숨이 살아서 왔으니 다행이지! 자네허구 같이 학교 다니던 아이들이 지금 우리 마을에 불과 두어명밖에 없네. 모두다 도망 안 갔으면 끌려가고 또 그 몹쓸 놈의 뇌염통에 죽고… 이렇게 우리 마을은 망했네. 망했어!》

로인은 한탄조로 말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찬수는 이 로인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였다.

《비단 우리 마을뿐이겠습니까. 어디든지 다 그렇지요.》

《그러나 서울 같은 곳은 좀 낫겠지. 그래도 이름있는 서울 아닌가?》

《날것이 뭐 있겠습니까. 서울사람들두 농촌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생활들이 곤난합니다.》

찬수의 말을 귀담아듣던 한 로인이 불쑥 나서며 《여보게, 그래 서울에서는 무슨 딴 소식을 더러 들을수 있겠지? 도대체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되는 판인가? 내 나이 70평생을 살아두 이런 놈의 세상살이는 처음이랑깨.》 하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물었다.

찬수는 이 로인에게 무슨 시원한 말이라도 해주고싶었으나 뭐라구 말했으면 좋을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 걱정들 하시지 마십시오. 좋은 세상이 쉬 닥쳐올겝니다.》

찬수는 그저 이렇게 서두를 떼며 빙긋이 웃었다.

《이 사람아. 자네들은 아직 젊으니깨 앞으로 좋은 세상을 보겠지만 우리처럼 륙칠십이 다 넘은 노닥다리가 언제 좋은 세상을 보고 죽겠나. 생각하면 안달이 나 견딜수 없네. 이제는 리승만이가 콩으로 메주를 쑨대두 곧이 안 들리네.》

그 로인은 서슴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

《어쨌든 이놈의 세상이 얼른 요정이 나야 돼. 젊은 장정들은 징병으로 끌어내다가 죽이거나 병신 맨들지 않으면 제발루 이리저리 피해 도망을 가게만 하니… 원, 이래 가지구서야 어디 농산들 맘대루 지어먹겠던가! 그 알량한 놈의 농사… 지어놓으면 요리조리 다 빼앗기고 뜯겨버리니 무얼 먹고 이듬해 농사철까지 산단 말인가. 온 마을안에 남은것이란건 늙은이, 녀편네, 아이들뿐일세. 가시내도 반반한건 요리조리 모두다 갈보로 뽑아내가네그려.》

또 한 로인이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찬수는 잠간동안 입을 다물고있다가 로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아저씨들 생각엔 어떻게 해야만 잘살것 같습니까?》

《그야 리치가 빤하지 않는가, 이 사람아! 어서 이놈의 세상이 망하고 통일이 돼야만 해.》

상설이 삼촌이 선뜻 말했다.

《통일이 그리 쉽게 되겠나? 미국놈을 모두다 몰아내기 전에는 안되네, 안돼!》

70대로인이 개탄조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할아버지말씀이 옳습니다. 우리는 미국놈들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야만 통일이 된다는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찬수는 태연스럽게 말했다.

사랑방에는 어느 틈에 농민들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

그들은 밤이 깊은줄도 모르고 서로 둘러앉아 자기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고 또 찬수로부터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찬수는 고향마을은 황페하고 전락되였으나 농민들은 한결같이 미제를 반대하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갈망하고있다는것을 직접 느꼈을 때 한없이 흐뭇해졌다.

찬수는 이날을 계기로 하여 밤이면 의례 상설이네 집을 찾아가거나 큰사랑방을 찾아갔다.

그는 농민들의 얼굴모습들을 하나하나 그려주어 그들을 기쁘게 하였고 또 이미 형체조차 없어진 장군바위와 팽나무를 그린 그림을 사랑방에 붙여놓아 농민들의 감회를 자아내게 했다.

뿐만아니라 그는 농민들과 담화를 하면서 서울사람들의 비참한 생활모습을 알려주고 미군놈들의 만행을 폭로하는가 하면 청년학생들이 미제와 리승만을 반대해서 동맹휴학을 하고 로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고있는 사실들을 알려주었다.

그는 비록 다리의 상처를 치료하려고 5촌을 찾아온것이지만 자기 고향마을의 농민들이 황페한 환경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계속하고있는것을 목격하고는 그대로 병원 숙직실에만 은신하고있을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모든 지혜와 재능과 정열을 다 바쳐서 고향마을 농민들을 위로해주고 또 그들에게 머지않아 반드시 통일된 좋은 세상이 오고야말리라는 확신을 안겨주어 래일에 대한 굳은 신념을 북돋아주는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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