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의 고향

6

 

찬수는 젊은 의사의 얼굴을 별로 세밀히 관찰하지 않았지만 잠간동안에 능란한 솜씨로 속사하고는 어느덧 그대로 책뚜껑을 덮어버리였다.

《어디 좀 보여주십시오.》

젊은 의사는 자기의 그림이 보고싶었으므로 빙긋이 웃으며 찬수의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뭐… 잘되지 않았습니다. …》

찬수는 이렇게 말은 했으나 어느 틈에 속사첩을 번지여 그에게 내보였다.

젊은 의사는 자기의 얼굴모습이 속사치고는 너무도 지나칠만큼 잠간동안에 사진이나 별다름없이, 아니 오히려 더 특징을 살려 예술적으로 잘 그려져있는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찬수가 보통 평범한 화가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것은 잠간동안에 속사한 자기의 얼굴이지만 그 관찰이 정확할뿐아니라 세밀했고 또 그 필치가 로련했으며 화풍이 흔히 서울에서 볼수 있는 초현실파에 속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였기때문이였다.

젊은 의사는 한참동안이나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필치가 매우 로련하시구 또 화풍에 사실주의적향기가 풍기는군요. …》

《천만에요.》

《그런데 이 장을 떼여서 나에게 주실수 없습니까?》

《글쎄요, 뭐 잘 그려졌어야죠. …》

《아니, 그럼 책장을 뜯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데 따루 한장 그려주시든지…》

《네, 그럼 따루 다시 그려드리죠.》

찬수는 기분좋게 응낙했다.

젊은 의사는 여전히 찬수의 필치에 매혹되여 자기의 얼굴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불시에 속사첩에 그려져있는 다른 그림들까지도 보고싶은 호기심이 불쑥 생겨난듯 《다른 그림을 좀 봐두 좋겠습니까?》 하고 묻고는 찬수의 표정을 살피였다.

《뭐, 보실만 한것이 못될겝니다. 그저 붓장난인걸요.》

찬수는 겸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의사는 호기심에 가득찬 눈초리로 속사첩을 번지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페지에선가 깜짝 놀라며 두눈을 둥그렇게 뜨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마리야녀학교 교복을 입은 녀학생 하나가 형사놈에게 고문을 당하고 끌려나오는 그림이였다.

그 녀학생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자기의 누이동생 영옥의 얼굴과 똑같은지 그는 갑자기 흥분되고 긴장되였다.

(아니, 이게 정말 영옥이가 아닐가?)

젊은 의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되자 이 화가가 정녕 영옥이를 잘 알고있는 화가나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나고 궁금증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순간 태연스럽게 찬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녀학생의 스케치는 모델이 있습니까?》

《네.》

찬수는 무심코 소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이 녀학생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젊은 의사는 성급하게 물었다.

찬수는 곤난한 질문에 부딪쳤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잠간 망설이기만 하고 얼른 대답을 못하다가 《글쎄요, 이름은 잘 기억 못했습니다.》 하고 단호히 잘라 말했다.

젊은 의사가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하다가는 암만해도 자기의 신분이 드러날 념려가 있기때문이였다.

젊은 의사는 찬수가 자기의 질문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는것만 같아 어느덧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속사첩을 접어서 돌려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실례될 말씀만 물어 미안합니다. 사실은 스케치가 너무 잘 돼서…》

《원, 천만에…》

찬수는 미소를 지으며 속사첩을 받아가지고 머리맡에 다시 놓았다.

《어서 속히 상처를 고칩시다. 다도해 섬들도 좋고 또 이 근방 농어촌도 좋지요. 모델감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

젊은 의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담배를 찬수에게 권하며 자기도 한대 피워물고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할듯 하다가는 입을 다물어버리고말았다.

그는 무엇인가 생각되는바가 있었던지 약장서랍을 뽑아내더니 그 속에서 8절로 접어넣어둔 여러장의 신문지를 꺼내들고 진찰실로 휙 나와버렸다.

그는 서울에서 피신해 내려온 이후 집과는 련락을 끊었기때문에 자기 집이 망해버린 소식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동안 서울소식을 알기 위하여 배달되여오는 신문들을 자세히 보아왔다.

그는 금년 가을 어느날 신문에서 우연히 《마리야녀학교 맹휴사건》이라는 기사를 발견하고 그 기사를 통하여 누이동생 영옥이가 검거되였다는것과 또 미술교원 하나가 선동인물로 엄중취조를 받고있다는 기사를 본 일이 갑자기 회상되였다.

그때 그 신문은 다른 날 발생한 다른 학교들의 맹휴사건이 보도된 신문들과 함께 약장서랍에 따로 보관되여있었던것이다.

젊은 의사는 신문뭉치를 진찰실 책상우에 놓고 그때 그 신문을 골라내여 쫙 펼쳤다.

그는 그 기사중에서 《맹휴사건 선동혐의자로 동교 미술교원이였던 홍찬수가 검거되였다.》라는 구절을 발견하였다.

(홍찬수?)

그는 갑자기 신경이 예민해졌다.

지금 숙직실에서 치료를 받고있는 미술가 홍평이가 바로 홍찬수의 변성명이 아닌가 몹시 의심스러웠다.

아니, 그는 틀림없는 홍찬수다. 영옥이의 속사가 의심할 여지없이 바로 그것을 확인해주지 않는가?

그는 오늘 홍평의 정체를 거의 알게 되자 어쩐지 가슴이 설레이였다.

그는 묵중하고 소박하고 고상한 예술가적품성을 지닌 홍평이가 오늘은 더욱 믿음직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는 당장 숙직실로 뛰여들어가 홍평의 손목을 덥석 쥐고 《홍찬수선생이 아니십니까? 나는 바로 영옥이의 오래비 손영준입니다.》 하고 자기의 소개를 하고싶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틈에 그러한 충동을 억제해버리고말았다.

아직 자기의 정체를 알려서는 안될 큰 리유나 있는듯이 그는 시치미를 따고 신문뭉치를 든채 숙직실로 들어갔다.

찬수는 침상에 누워있었다.

이 순간 진찰실에서 인적기가 났고 젊은 의사는 부리나케 다시 진찰실로 나가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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