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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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었다. 회색빛어둠이 대지에 가득찼다. 먼바다에서는 파도소리가 거칠게 들려오고 소금기를 품은 해풍이 쌀쌀하게 몰아쳤다.

영준은 진찰실을 대강 정리하고 위생복을 입은 그대로 또다시 진찰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자전거에 진찰가방을 싣고 마을앞으로 통한 좁은 신작로로 달리였다.

그는 날마다 저녁이면 멀리 떨어진 농촌이나 어촌으로 왕진을 가는것을 마땅히 자기가 할 일로 알고있었다.

오늘 밤은 죽촌리에서 20리가량 떨어져있는 송림리란 산골마을로 갈 차례였다.

송림리는 무의촌가운데 하나였다. 경찰지서와 15리, 면소와 10리, 읍내와 20리 떨어져있어서 이 근방 평야지대보다는 비교적 교통이 불편한 산골농촌이였다.

인제의원이 있는 죽촌리를 중심으로 무의촌은 사면에 산재해있었다.

100여호가량 되는 큰 마을이 여기저기 10~15리정도의 지점에 네댓곳이나 있었고 또 70여호정도의 마을이며 30호가량 되는 마을들이 넓은 들판 군데군데에 흩어져있었건만 의료기관이라고는 이 근방에 인제의원 하나밖에 없었다.

송림리로 가는 도중에 80여호쯤 모여사는 버들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는 옛날부터 한약방이 있었으나 약값이 비싸고 외상은 절대로 주지 않는데다가 비싼 약을 지어다 먹어봤자 병이 잘 낫지 않았기때문에 농민들에게서 인심을 잃어 결국 영업을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가버렸다. 그뒤에 한지의시험에 합격된 사람이 와서 개업을 했으나 그도 역시 약값은 비싸게 받고 병은 고치지 못했기때문에 농민들은 그를 의사로 상대해주지 않았다.

송림리농민들도 인제의원보다 한지의가 있는 버들마을이 가까왔지만 영준이가 온 뒤부터는 인제의원의 젊은 의사라야만 자기들의 병을 친절하게 잘 고쳐준다고 믿어왔던것이다.

영준이가 버들마을앞을 지나 송림리에 이르렀을 때 밤은 제법 깊어져서 사방이 캄캄하였다.

그는 그전에 환자들을 모아놓고 진찰을 하던 마을의 어떤 큰집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일주일전 이 마을에 왔을 때 그는 오늘 밤 또 오기로 약속을 했었다.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이집저집에서 환자들을 데리고 모여들었다.

영준은 가방을 열어놓고 송림리환자명단을 꺼내들었다.

이 마을에서 영준은 외과, 내과, 소아과 등 각 분야에 걸친 진찰을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대부분이 다 해진 무명홑껍데기가 아니면 솜도 두지 못한 겹옷을 입고 병석에 누워서 앓다가 온 사람들이였다.

어느 마을에서나 마찬가지로 이 마을에서도 주류를 이루고있는 병들은 역시 먹지 못하고 굶주린데서 오는 질환들이였다.

할머니들과 젊은 녀인들은 부황이 나서 전신이 띵띵 부어있었다.

어린아이들은 피기없는 얼굴에 두눈만 빠끔하고 두팔과 두다리는 꼬챙이처럼 말라 비틀어졌다.

어떤 아이는 다리에 힘이 없어서 숫제 일어나 서지도 못했다.

영양부족에서 생기는 각기병, 눈병, 피부병, 야맹증 그밖에 기관지염, 기침, 천식 등등 모두가 빈궁이 빚어낸 질병들을 가진 환자들이였다.

영준은 이런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가 밤마다 이렇게 왕진을 나오는것은 보건당국의 지시에 의한것은 물론 아니였고 오직 자기 개인의 의무감에서 나온것이지만 그들을 대할 때는 어쩐지 딱하고 스스로 얼굴이 뜨거워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던것이다.

영준은 가지고 간 약을 나누어주고 주사를 놓아야 할 환자에게는 주사를 놓아주었으나 마음이 흡족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유일한 약은 가루약이나 주사약이 아니라 오직 배불리 먹는 밥이라는것을 느꼈기때문이다.

환자들은 약을 받고 주사를 맞고도 얼른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준이가 자기네 마을에 나타나면 자기들의 병만 보이는게 아니라 의사에게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듣는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생각하고있었다.

영준은 오늘 밤도 그대로 돌아가려고는 생각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줄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가야만 할것 같았기때문이다.

영준이는 그동안 여러번 이 마을에 와서 환자들을 진찰하고나면 마을사람들과 한데 모여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등 재미나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또 자기가 하기도 했다.

그는 어느덧 소박하고 선량하고 순진한 이 마을 농민들과 낯을 익혔고 또 정이 들었다.

영준은 그동안 이 마을 사람들에게 세상형편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면서 농민들이 어떻게 해야만 잘살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던것이다.

마을사람들은 그가 보통의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기들보다도 훨씬 많이 알고 높은 지식을 가지고있으며 자기들과 같은 빈궁한 농민들을 진정으로 리해하고 동정하며… 그런즉 자기들을 위하여 의사노릇을 하는 청년이라고 생각되였기때문에 그들은 영준이에게 이것저것 흉허물없이 묻기 시작했던것이다.

오늘 밤도 농민들은 영준이에게 자기들의 답답한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의사선생님! 언제면 우리 농민들이 이따위 병들을 앓지 않고 잘살게 되겠능게라우?》

한 농민이 한탄섞인 답답한 어조로 물었다.

이런 질문은 이 농민에게서만 받는것이 아니였다. 여러 농민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영준은 가슴이 벅차올랐고 농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한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군 하였다.

《너무 비관들을 마십시오. 반드시 잘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영준은 먼저 이렇게 운을 떼였다.

《글쎄, 그때가 언제나 온다능게라우?》

농민 하나가 또 안타까운 어조로 물으며 영준을 마주 건너다보았다.

《통일이 얼른 돼야 잘살 날이 오지, 통일이 안되면 만날 이 지경이지 별수 있능게라우?》

한 농민이 결론을 하듯이 자신있게 말했다.

《이 사람아, 통일이 돼두 전쟁을 해서 통일이 되는건 통일이 아니라 다 죽는거렁깨.》

한 농민이 자기 주견을 말했다.

《암! 자네 말이 옳네. 평화적으로 통일이 돼야지.》

한 로인이 동감이라는듯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영준은 빙그레 웃으며 힘있게 말했다.

《아니, 선생님! 평화통일은 그럼 언제나 된다는게라우?》

한 아낙네가 묻고 나섰다. 누구인가 그 아낙네의 말을 받아 《흥, 아 그런걸 묻소? 미국놈들을 어서 몰아내야지 그날이 오지!》 하고 퉁을 준다.

《미국놈들을 우리 힘으로 어떻게 몰아내? 전쟁지랄을 할라고 연방 대포와 비행기를 또 실어들여온다는데 그놈들을 무슨 힘으로 몰아내?》

한 중년농민이 말했다.

《우리가 맘만 합치면 되지라우. 제길, 일년 죽두룩 피땀 흘려 농사 지어갖고 그 원쑤놈들에게 빼앗기니 이런 분한노릇이 어디 있능게라우.》

한 젊은 농민이 분격에 찬 어조로 말했다.

《여보게들, 정신들 바짝 채리게들! 우리 이러다가 올겨울 넘기지 못하구서 모두다 굶어죽고말기여. 아, 의사선생님! 이걸 글쎄 어떡하면 좋다는게라우… 우리 동네에두 절량된 집이 3분지 2나 되니…》

《이제 꼼짝없이 굶어죽게 됐지라우.》

《흥, 망할것! 이왕 죽게 된 놈이 가만히 앉아죽을가, 그저 벌떼같이 일어나야 된당깨. 그 도적놈들헌테 빼앗긴 곡식들을 다시 찾아와야 된당깨…》

《그저 그 군청하구 경찰서하구를 한꺼번에 때려부셔버려야 된당깨로.》

《이 사람아, 경찰지서와 면소두 못 때려부시면서 그런 장담만 허지 말게나.》

《장담은 무슨 장담… 사람이란 악에 받치면 못하는 일이 없는거랑깨. 힝, 이대루 어떻게 더 참고 견디여나갈수 있어. 모두다 힘만 합하면 안될 일이 없당깨로.》

농민들속에서 이처럼 미제와 리승만에 대한 반대기운과 조국의 평화적통일에 대한 갈망이 최고조에 이르고있는 사실을 영준은 오늘 밤 더욱 또렷이 느낄수 있었다.

그는 어느덧 자기도 흥분되여 농민들에게 국제정세와 북반부의 눈부신 건설모습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조선사람이 살길은 오직 미제를 물리치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달성하는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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