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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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거리에 살던 사람들도 철거령을 받아 10리가량이나 더 멀리 떨어진 동쪽산밑으로 밀리여갔다.

찬수의 5촌인 홍인제가 경영하던 인제의원도 철거령을 받아 산밑마을로 옮겨갔다.

산밑마을 죽촌리도 옛날의 형체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푸른 대밭이 많았기때문에 《죽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이 마을에 대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뒤동산에 꽉 들어찼던 소나무와 참나무를 언제 다 베여버렸는지 보기에도 흉하게 발가숭이가 되였다.

찬수가 옛날 지선생에게서 배우던 소학교 분교실이 이 마을 한복판에 있었건만 그 집도 보이지 않았고 그때 제법 커보이던 집들이 거의다 없어지고 오막살이만 더 많이 늘어난것을 느낄수 있었다.

집들은 하나같이 네 기둥이 찌그러지고 지붕들은 여러해 잇지 못해 이영이 썩어 고랑들이 났다.

남향으로 뻗은 산비탈엔 전에 볼수 없었던 초막들이 많이 생겼고 또 거적을 둘러치고 은신하는 움집들도 수없이 보이였다.

철거령을 당한 《장군바위》주변 사람들의 일부도 이 산밑으로 쫓겨왔다.

인제의원은 본부락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一》자형으로 길게 지은 초가집이였다.

찬수는 벽에 회칠을 한것으로 보아 그 집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남에게 묻지 않고도 쉽사리 찾아갈수 있었다.

찬수가 지팽이를 짚고 진찰실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5촌인 홍인제는 없고 아니나다를가 지선생이 말한 어떤 젊은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있었다.

좁은 대기실에는 환자가 꽉 들어차있었다.

황페한 농촌의 병원대기실이라고는 하지만 모여온 사람들중에는 하나같이 영양부족에 빼빼 마른 사람들이 아니면 부황병에 걸리거나 얼굴과 손등이 퉁퉁 부은 사람들이 많았다.

금방 생명이 위독해보이는 어린아이들, 눈병, 부스럼, 종기, 귀앓이, 치통, 수종, 천식 등등… 형형색색의 잡병환자들이 침울하고도 고통스러운 표정들을 하고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있었다.

젊은 의사는 급한 환자부터 먼저 골라 진찰을 하더니 처방을 떼여 4~5매가 되면 잠간 진찰을 중지하고 약실로 들어가 약을 지어 나누어주었다.

찬수는 환자들의 뒤꽁무니에 앉아서 병원안을 살피였으나 간호부도 약제사도 없이 젊은 의사가 혼자 겸하고있는것 같이 보이였다.

《원, 젊은 량반이 무던두 하지라우. 혼자서 저렇게 애를 쓰니 병원에 한번 오기두 미안하다니깨.》

《글쎄말이지라우. 그렇지만 병은 자꾸 나구 읍내 병원은 갈수 없구… 미안하지만 어떡하겠는게라우.》

《아이구, 읍내 병원 말두 마시라우. 괜히 약값만 비싸구 병은 안낫구… 내 딸년두 읍내 병원에 다니다가 돈만 처내버리구 죽지 않았는게라우. 글쎄 저 량반이 작년 겨울에만 우리 동네에 왔더래두 그 못된 병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지는 않았을게라우.》

《사실이지라우. 저 량반이 와서부터 병자들 많이 고쳤지라우.》

《아, 글쎄 저 량반이 병을 잘 고친다는 소문이 나서 읍내 사람들까지 이 병원으로 나온다니깨. 제발 읍내 사람들은 여기까지 오지들 마시라우.》

《힝! 읍내 병원? 말이 병원이지 이 병원만 한줄 아능게라우? 병보이러 가면 돈 얼마 가져왔는가 먼저 묻고… 사람옷 채림새 봐서 나중간 놈도 먼저 봐주고, 어떤 사람은 숫제 봐주지두 않고… 골딱지가 나서 우리 같은 농투사니야 갈 재미가 있능게라우.》

대기실 긴 판자쪽 의자에 쭉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며 환자들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찬수는 묵묵히 앉아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있었다.

이미 지선생에게서 들은바가 있긴 하지만 젊은 의사가 환자들에게 상당히 평이 좋은것을 느낀 찬수는 자기 5촌의 병원일을 위하여 기쁜 일이라고 생각되였을뿐아니라 의사의 인상도 좋아 단번에 감정이 통할것 같았다.

진찰실에서 약을 받아가지고 나오며 어떤 환자들은 서로 소곤소곤 자기들끼리 귀속말을 했다.

《젊은 량반이 고맙기두 하지. 읍내 병원 같으면야 어림이나 있을 일인게라우. 글쎄 누가 약값 안 받구 약을 내주어?》

《그리게 말이지라우. 약값을 받아두 그게 어디 읍내 병원에다 대면 약값인게라우. 종이값이지…》

《그저 저런 의사가 우리 마을에 오래오래 있어야 할텐데…》

찬수는 환자들이 돌아가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례사로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얼마후에 대기실과 진찰실에 있던 환자들은 거의다 돌아가고 병원안이 조용해졌다.

찬수는 지팽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서 진찰실로 들어갔다.

찬수는 책상에 앉은 젊은 의사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했다.

《원장선생 안 계십니까?》

《네, 군에 들어가셨습니다. 다리를 못쓰십니까?》

젊은 의사는 찬수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였다.

《네, 좀 다쳤습니다.》

찬수는 태연스럽게 말하였다. 그리고는 젊은 의사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는 두눈이 몹시 총명해보였고 또 얼굴이 둥그레한것이며, 코날이 우뚝한것이며, 균형잡힌 체격이며, 맑은 음성이며, 사람을 대하는 겸손하고 친절한 태도며 모두가 보통 도회지 개업의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럼 좀 가만히 누워보십시오. 상처를 좀 봅시다. 대단히 불편하신것 같군요.》

젊은 의사는 걱정스런 표정을 하며 찬수를 침대우에 눕혔다.

병원에서 퇴원을 당하던 날부터는 소독도 못했고 약도 바르지 못했기때문에 붕대는 보기 흉했고 악취가 코를 찔렀으나 젊은 의사는 조금도 표정을 달리하지 않고 태연스럽게 붕대를 조심조심 풀었다.

그는 상처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며 《아니, 이거 어찌된 상첩니까?》 하고 찬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네, 종기는 아닙니다.》

찬수는 갑자기 그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디서 이렇게 다치셨습니까? 관통상이군요.》

젊은 의사는 더욱 놀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네, 차차 이야기하죠.》

《어쨌든 치료를 합시다. 좀 오래 걸릴것 같습니다.》

젊은 의사는 부리나케 상처를 소독하고 심을 새것으로 갈아넣고 약을 발라 새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는 진통제를 한대 주사했다.

젊은 의사는 자기 책상에 앉아서 환자명단을 꺼내놓더니 주소와 이름을 물었다.

찬수는 잠간 주춤하면서 《현재 내 집은 없습니다. 사실은 이 마을이 내 고향이고 원장과는 친척관계입니다.》 하고 침착하게 말했다.

《네, 그러세요?》

젊은 의사는 어느덧 환자명단을 접어넣고 담배갑을 꺼내여 찬수에게 한대 권했다.

두사람은 초면이면서도 서로 약속이나 한듯이 자기 이름들을 말하지 않고말았다.

《매우 피곤해보이시는데 아무데라도 좀 들어가 누워계십시오.》

젊은 의사는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원장어른 댁은 어디신가요?》

《이 산너머 마을입니다. 여기 계시다 만나보십시오. 아마 곧 오실겝니다.》

젊은 의사는 찬수를 데리고 진찰실과 맞붙은 숙직실로 들어갔다.

벽에는 중절모자가 걸려있고 조선지도가 붙어있었으며 약병들과 주사약이 들어있는 약장곁에는 책상이 놓여있고 책상우에는 부피가 두꺼운 의학서적들과 신문, 잡지들이 잘 정리되여있었다.

젊은 의사는 찬수의 등산용배낭을 들어다 방안에 놓고 아래목에 담요를 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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