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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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떠난 려수행 렬차가 ○○역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이른 새벽녘이였다.

전등불빛도 없이 침침한 남포등빛이 그림에 가리운 촌정거장은 몹시 어둡고 쓸쓸하였다.

소금기가 배인 무거운 해풍이 제법 거세게 불어치는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남쪽바다가 그다지 멀지 않다는것을 짐작케 하였다.

눈이 별로 내리지 않고 또 얼음도 그렇게 얼지 않는 지방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겨울새벽기후는 쌀쌀하고 추웠다.

홑옷을 입은 녀자, 포대로 허리를 감은 로파, 아래도리를 그대로 내놓고 걸어가는 어린아이, 바가지쪽과 솥단지를 새끼로 묶어 등에 짊어진 중년농민, 퇴색되고 다 찌그러졌으며 철에 맞지 않는 밀짚모자를 쓰고 괴나리보짐을 진 령감 등… 대여섯명의 승객이 차에서 내려 출구를 향하여 걸어갔다.

그다지 무거워보이지 않는 등산용배낭을 지고 량쪽겨드랑이에 쌍지팽이를 짚고 아래턱수염이 시꺼멓게 자란채 텁수룩한 머리에 모자도 쓰지 않은 청년 하나가 맨 나중에 차에서 내려 앞에 간 사람들의 뒤를 따라 걸어나갔다.

그는 얼굴이 몹시 파리했고 또 한쪽다리는 전혀 쓰지 못하였다.

그는 병원에서 채 완쾌도 되기 전에 퇴원을 하지 않으면 안된 찬수였다.

그는 그날 지선생이 한번 다녀간 이후 3~4일이 지나도록 다시는 오지 않고 검거된 지용세며 윤산이도 소식이 없었기때문에 불안속에 날을 보내다가 간호부가 가져다 주는 신문들을 통하여 과연 전날 지선생에게서 들은바대로 지선생도 한숙경도 오변호사도 마리야녀학교의 맹휴사건에 관련되여 모두 검거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던것이다.

그는 병원에서 빨리 퇴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의사에게 속성치료를 간청하였으나 의사는 처음과는 딴판으로 점점 불친절하게 대하였다.

미라가 찬수를 싣고 입원을 시키러 왔을 때는 그 녀자가 치료비를 끝까지 낼줄만 알았던 병원경영주는 미라가 자취를 감추고 얼씬거리지도 않게 되자 완쾌될 때까지의 나머지 치료비를 누가 낼것인가 의심이 났던것이였다.

즉 그들은 환자인 찬수자신에게서 치료비를 받아낼 가능성이 없다는것을 예견했을뿐만아니라 완치를 해놓으면 경찰에서 체포해갈 인물이라고 점찍어놓고 구태여 외상으로 치료를 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그를 강제로 퇴원시키고말았던것이다.

찬수는 강제퇴원을 당한 뒤 하숙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었으나 치료를 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는 헙수룩한 주제를 하고 게다가 중상까지 당한 다리를 끌고 고향마을로 내려간다는것이 심히 부끄럽고 창피스러웠으며 자기의 자존심이 용허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막다른 골목에 부닥친것으로 하여 어쩔수없이 렴치불구하고 지선생이 권고한대로 5촌이 경영하는 병원에 내려와 치료를 받을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찬수는 정거장밖을 나와 역부근의 장터거리로 나섰다.

장터거리는 그전과는 아주 딴판으로 달라졌다.

그전에는 술집, 자전거포, 리발소, 청료리집, 엿집, 떡집, 국수집, 비빔밥집, 잡화상, 대장간, 농산물상점, 려인숙 등 촌정거장부근의 마을로서는 어느 정도 면목을 갖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것들이 모두 없어져버렸고 다만 낯설은 건물들에 경찰지서와 곡물매상창고, 금융조합과 대서소간판들이 붙어있었다.

찬수는 마치 낯설은 타향에나 온것 같은 쓸쓸함을 느끼였다.

여기서 20리를 더 가야만 자기 고향마을인 《장군바위》로 갈수 있고 거기서 다시 5리쯤 떨어진 주막거리로 나가야 자기 5촌아저씨가 경영하는 조그만 병원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건강상태로는 도저히 걸어갈수가 없었다.

창고에 물건을 처쟁이듯 좁은 객차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옴짝달싹할수도 없는 렬차칸에서 성한 다리조차 펴보지 못하고 밤새도록 꼭 끼여서 고생을 한데다가 자리라고 하나 잡은것이 깨여진 유리창으로 찬바람과 석탄가루, 연기가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도리여 전신이 떨리고 어지럽고 숨이 막혀 견딜수가 없었던것이였다.

먼동이 훤하게 트이기는 하나 하늘은 몹시도 찌프렸다.

오래간만에 보는 고향하늘이 이렇게 음산한것을 보자 찬수의 마음도 음울해지고말았다.

때때로 빈차들이 지나칠 때마다 그는 손을 들어봤으나 그것들은 코웃음을 치고 그대로 휙휙 지나쳐 달려가기만 했다.

그는 흙먼지를 전신에 들쓰면서 해가 떠오를무렵까지 신작로로 걸어갔다.

그는 한참만에 고향마을로 들어가는 소로길로 접어들어 다박솔밭모퉁이 굽이진 비탈을 걸어올라가 성황당고개에 이르렀다.

늘어진 소나무가지사이로 멀리 바다가 보이였다.

하늘끝에 맞닿은 아득한 수평선! 여기저기 오뚝오뚝 검은 점처럼 보이는 헤아릴수 없이 많은 섬들!

고향바다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장엄하고 아름다왔다.

쌀쌀한 해풍이 소나무가지를 쏴- 하고 울리건만 찬수는 추운것도 모르고 지팽이에 몸을 의지한채 마루턱에 그대로 한참동안 서있기만 했다.

그는 쓰라린 어린시절의 일이 어느덧 회상되였으나 고개를 흔들어버리고 자기의 고향마을인 《장군바위》쪽을 내려다보았다.

이 순간 찬수는 깜짝 놀랐다.

다닥다닥 100여호의 농가가 붙어있던 《장군바위》는 자취조차 없어져버리고 미군놈의 커다란 군용시설들과 야전용천막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였다.

찬수는 갑자기 머리속이 아찔해지며 눈앞이 아뜩해왔다.

지선생으로부터 고향마을이 변했다는 말은 그동안 두어차례 들었으나 이렇게까지 형체조차 아주 달라질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군이 또다시 침략전쟁을 도발하려고 책동하고있어 각지의 수많은 농토와 촌락, 도시의 주택지구와 산악, 하천들이며 크고작은 건물들이 군용지로 몰수되고 가옥들은 철거령이 내려 허물린 곳이 헤아릴수 없이 많다는 이야기는 노상 들어왔지만 자기 고향마을까지도 이렇게 피해를 입어 송두리채 사라져버릴줄은 그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100여호의 마을사람들은 집을 허물리고 어디로 쫓기여가서 어떻게 사는것인가?

마을을 언제나 지켜주던 500년이상 묵은 큰 팽나무도 또 팽나무와 별로 멀리 떨어져있지 않았던 《장군바위》도 찾아볼래야 볼수 없었다.

마을의 선조들이 500여년을 곱게 가꾸며 큰 정자까지 지어놓은 팽나무를 뿌리채 뽑아버린 놈은 대체 어떤 놈인가?

임진조국전쟁당시 바다에서 기여올라온 적이 고향마을을 침략하려 했을 때 애국적인 우리 선조들은 마을앞에 있는 《장군바위》뒤에 은신하여 활을 쏘고 창을 던지며 용감히 싸워 적을 막아냈다. 과연 그 슬기로운 애국정신이 깃들어있는 유서깊은 바위를 형체조차 없이 쪼개여 파내버린 놈은 과연 어떤 놈인가?

8. 15해방직후 찬수는 도꾜에서 건너와 바로 그 팽나무와 《장군바위》를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린 일이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며 그는 나무를 뽑고 바위를 깎아버린 놈은 남조선을 강점하고있는 미국놈들과 그 앞잡이 리승만이 틀림없다고 확신하지 않을수 없었다.

찬수의 지팽이를 쥔 두주먹이 더욱 부들부들 떨리였다.

그는 어느덧 고개길을 내려와 한참만에 자기 5촌아저씨의 병원이 있는 주막거리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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