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청룡황룡도》

7

 

화가 남평이가 미군장교 스틸맨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는 신문기사는 사회적분격과 여론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기사가 소개된 날 밤으로부터 그 이튿날 온종일이 지나도록 찬수의 병실에는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자기 이름을 감추고 남평이라 변성명을 했으니 그에게 방문올 사람이 있다 치더라도 찾아올리 없었고 또 《시내 모 병원에 입원가료중》이라는 병원이름조차 감춘 신문기사만을 가지고서는 찾아올수 없는것이지만 그러나 이미 미술장치사의 사람들은 다 알고있는 일이 아닌가?

어찌하여 지용세도 윤산이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지 찬수는 실로 답답하고 불안스럽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치료비를 부담하겠다느니, 자기의 퇴원후의 문제까지도 책임을 진다느니 하고 종알대던 미라도 한번 다녀간 뒤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것이 역시 괘씸하게 생각되였다.

물론 미라의 돈을 받아 상처를 치료하고싶은 너절한 생각은 그의 자존심상 허락하지 않았고 또한 그것은 생각만 하여도 구역질이 났으므로 차라리 또 나타나 종알대지 않는것이 도리여 자기의 기분을 불쾌하게 하지 않는것이라고 느끼고있었다.

찬수는 이런 생각에 잠겨있다가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하자 잠이라도 들어보려 눈을 감았으나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도리여 맑아지기만 했다.

그는 결국 미술장치사에 취직을 하지 않은것만 못했다고 후회하지 않을수 없었다.

애당초에 자기의 예술적량심을 굽히는것이 껄쩍지근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지선생의 권고라 하더라도 단호히 거절하였더라면 이런 횡액은 당하지 않았을것만 같았다.

결국 자기의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과단성이 없는것이 큰 결함이였다고 절실히 느끼게 된것이였다.

그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어느덧 형무소생활이 회상되였다.

비록 오랜 기간은 아니였지만 차동무와 정돌이며 또 여러 수감자들이 때때로 자기를 격려해주던 말들이 다시 귀전을 울리는것이였다.

《… 사회에 나가거든 어쨌든 용감하게 싸우시오. 무슨 일이든 과단성있게 처리하시오!》

《역시 홍선생은 예술가인것만큼 예술가적량심과 지조를 굳건히 지켜주십시오!》

차동무가 자기에게 은근히 부탁하던 그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나자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해올랐다.

만일 그들이 자기가 이렇게 중상을 입은 사실을 안다면 미군장교놈의 만행에 대하여 격분을 참지 못할것이지만 그와 아울러 자기의 과단성없는 성격, 예술적지조와 량심을 굳건히 지키지 못한 자기의 성격적결함에 대하여 지적해줄것만 같기도 했다.

찬수는 그날 스틸맨놈이 권총을 발사하려고 뽑아들은 순간 재빨리 그놈에게 덮쳐들어 손에 든 권총을 뿌리치고 그 자리에 쓰러뜨려 힘껏 밟아주지 못한 자신의 지나친 나약함에 후회도 되였다.

이때 병실문이 열리며 누가 들어왔다.

간호부가 체온을 재러 온것이였다.

찬수는 간호부에게 신문이 오는대로 좀 보여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얼마후에 간호부가 석간신문을 가지고 들어와 찬수에게 주었다.

그는 신문을 펴들고 읽다가 깜짝 놀랐다.

《미술장치사 사원 총검거》란 제목이 선뜻 눈에 띄였기때문이였다.

지용세도 윤산이도 최강이도 모두다 검거되였다는 기사였다.

찬수는 분격이 치솟아올라 금방 벌떡 일어나 뛰여나가고싶었으나 중상을 입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어쩔수없이 분을 참을수밖에 없었다.

찬수는 결국 자기때문에 미술장치사에까지도 화근이 미친것을 생각하니 검거를 당한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다.

아울러 자기의 입원치료가 그들의 검거로 인하여 암초에 부딪친것을 생각하였을 때 앞길이 캄캄해졌다.

이제는 더구나 자기를 찾아올 사람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만일 있다면 영옥이나 선희, 인자가 아닐가?

그러나 그들이 이번 맹휴사건에 관련된것만 같고 또 관련이 되지 않았다 치더라도 어떻게 남평이가 자기인줄 알고 찾아올수 있을것인가?

그러나 그는 설령 그들이 자기가 중상을 입고 입원한 사실을 안다고 해도 찾아오지 않기를 바랬다.

그들에게 자기의 무기력함과 약약함, 과단성이 없음과 대담하지 못함 그리고 예술가적지조와 량심을 굳건히 지키지 못했음을 그들에게 알리고싶지 않았기때문이였다.

더구나 그들이 관련되였을것만 같은 이번 맹휴사건에 자기로서 응당 뒤에서 어느 정도 뒤받침을 했어야 할 당연한 의리와 의무를 다하지 못한것이 새삼스럽게 마음에 걸리고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그들을 볼낯이 없을만큼 부끄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이렇게 복잡한 감정의 분위기속에서 가슴을 괴롭히며 지선생이라도 얼른 자기를 찾아주었으면싶었다.

지선생은 자기가 미술장치사에 취직이 된 직후 딸 은숙이를 만나러간다고 자기 고향에 내려갔던것이였다.

그가 찬수의 병실문을 열고 들어선것은 그날 밤도 지난 이튿날 아침이였다.

지선생은 찬수가 중상을 당한것이 그를 미술장치사에 취직시킨 자기의 책임이라고 느꼈던지 민망한 표정을 하며 《자네에게 결국 내가 못할 일을 시켰네. 차라리 이럴줄 알았더면 취직을 안 시킨것만 못하이!》 하고 어두운 얼굴을 보이였다.

《선생님께 도리여 죄송하게 됐습니다.》

찬수는 조용히 지선생에게 사죄를 했다.

《자네가 이렇게 미군놈에게 중상을 당한것을 자네 5촌이 알면 얼마나 놀라겠나!》

《참, 이번에 만나보셨어요?》

《음, 만나서 자네이야기도 했네. 역시 자네 5촌은 자네가 그렇게 된것을 몹시 분하게 여기데.》

《병원은 잘 돼나가던가요?》

《음. 젊은 의사가 하나 와서 자네 5촌이 할 일을 다 맡아하데!》

《젊은 의사가요?》

《음. 자네 5촌이 잘 아는 그전의 의과대학 어떤 선생이 소개한 청년이라는데 실력이 있고 열성적이고 인상이 좋아서 농민들에게 큰 신임을 받고있데그려.》

지선생은 잠간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하였다.

《자네에게 하는 말이네만 그 젊은 의사가 보통청년은 아닌것 같데그려. 모르기는 하지만 암만해두 기피자같데그려.》

《그럼, 선생님은 그하구 이야기 좀 해보셨습니까?》

《음, 좀 했지. 사람은 말소리로 봐서 서울사람인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서 물을수나 있던가? 그런데 그 사람이 내게 마리야녀학교 이야기를 꼬치꼬치 묻데그려!》

《그래요? 이름이 무언지 모르세요?》

《글쎄 인사를 하데만두… 리 뭐라든가…》

《? …》

찬수는 이 순간 웬 일인지 이상한 예감이 머리를 홱 스쳤다.

그 젊은 의사가 혹시 영옥이의 오빠 영준이나 아닐가싶은 륙감이였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지나친 륙감이나 아닌가싶어 흥분된 생각을 가라앉히였다.

얼마후 지선생은 찬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좌우간 자네가 이 병원에서 오래 입원해있을 필요도 없고 또 자네 신변이 위험하니까 어떻게 곧 움직일 정도만 되면 퇴원해가지고 고향으로 슬쩍 내려가 자네 5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겨울을 아주 거기서 나는것이 어떨가 하네. 사실 나도 서울에 있고싶진 않네. 요새 내 신변도 재미없네. 자네 석방운동을 한거라거나 또 요즘 마리야녀학교 맹휴사건에 배후인물로 관련된 사실을 형사녀석들이 알고 나를 체포하려고 하는 판이니까! 물론 나뿐만이 아닐세.》

지선생의 말을 듣고 찬수는 한숙경과 오변호사의 신변도 위험하지나 않을가 은근히 걱정이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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