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청룡황룡도》

6

 

그날 몇몇 석간신문들에는 서울시내 각곳과 지방 각지에서 벌어진 미군들의 만행을 보도한 기사가 실리였다.

술에 취한 미군이 권총을 란사하여 행인 10여명을 살해한 사건, 속력을 놓아 시가지에서 찦차를 달리다가 안전지대에서 사람들을 치워놓고도 못 본듯이 도주해버린 사건, 들에서 나물캐는 소녀에게 군견을 부추겨 물어뜯겨 죽인 사건, 대낮에 큰길에서 젊은 녀자들의 행길을 막고 강제로 그들을 랍치해간 사건, 5~6살밖에 안되는 어린아이를 도적으로 몰아 총살한 사건, 촌가에 침입하여 녀자를 릉욕하려다가 반항한다고 단도로 찔러 절명케 한 사건… 기타 많은 폭행과 만행들이 게재된 가운데 찬수에게 중상을 입힌 스틸맨의 만행이 특별히 길게 보도되였다.

스틸맨의 만행을 취급한 그 기사가운데는 박춘식과 미라에 대한 비난과 야유도 적지 않게 실려있었다.

시민들은 엄동을 앞두고 기아와 혹한에 떨고있으며 가두에는 실업자가 홍수처럼 밀리고있는 이때에 자기 개인의 영달과 부패한 향락생활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촌민에게 강제로 부역을 시켜가며 호화스런 별장을 짓고 벽화까지 그리며 미군장교 등을 초대하여 주연을 베푼것들이 그러한 만행을 일으킨 원인의 하나라고 신문기사는 신랄하게 폭로하였다.

이날 자기 집에서 신문을 읽던 미라는 당황하여 차를 타고 곧바로 《한미무역사》로 찾아갔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사무실인 사장실에 문기척도 없이 불쑥 들어갔다.

박춘식은 혼자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그의 책상우에도 여러 종류의 석간신문들이 널려있었다.

《아버지! 신문 보셨어요?》

미라는 당황한 어조로 물으며 박춘식을 바라보았다.

《내버려둬라! 그까짓 녀석들 신문에 내거나말거나…》

박춘식은 불쾌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다시 미라를 흘겨보았다.

《대체 너는 어제 밤 연회에도 안 오고 도중에서 어디로 갔었니?》

미라는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정말 창피스러운노릇이예요. 이렇게 신문에까지 덜컥 내였으니 어떡해요, 글쎄!》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신문사에 알렸단 말이냐? 그 윤산인지 그놈이지?》

《알리고 안 알리고가 문제가 아니예요. 어제 스틸맨을 데리고 온 아버지에게 책임이 있어요!》

《뭣이 어째?》

《처음 별장을 지은것은 내 음악련습장으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였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버지 욕심대로 별장을 리용하려 하셨어요.》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나는 웰톤이나 스틸맨을 별장에 불러들이지는 않았어요.》

《그러니 어쩌란 말이냐? 이제 와서…》

《결국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때문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됐어요!》

《아니 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사회적으로 매장이라니?》

《아버지의 더 높은 영달을 위해서, 부귀공명을 위해서 내 존재는 희생되였어요!》

《결국 내가 너를 리용했단 말이냐?》

박춘식은 소리를 꽥 질렀다.

《웰톤과 스틸맨이 나를 에워싸고 질투를 하게 만든것은 누구예요? 그것은 결국 아버지의 롱간이 아니고 무어예요. 그 두사람이 서로 지지 않겠다고 다투어 질투극이 더 크게 벌어지는 날에는 내 립장이 어떻게 돼요? 왜 이렇게 만들어놓고 시치미를 따세요, 네?》

미라는 어느덧 흥분되여 박춘식을 공박하였다.

《그 되잖은 소리 말아! 이미 네 운명은 결정되지 않았니? 넌 웰톤씨나 스틸맨대좌를 다 괄세하지 못해. …》

박춘식은 조금도 주저없이 태연스럽게 말하며 미라를 건너다보았다.

《아버지! 그건 너무 심하신데요. 어찌 그렇게 딸에게 창녀가 되라고 하십니까?》

미라는 제법 흥분되여 날뛰였다.

《듣기 싫다. 때는 이미 늦었다. 너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모르지만 너는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날수 없어. 아버지를 위하는것이 곧 네자신을 위하는것이야!》

박춘식은 뻔뻔스럽게 미라를 꾸짖었다.

《나는 그런 철학은 몰라요!》

미라는 벌떡 일어나 휙 나오려 했다.

이때 문기척도 없이 스틸맨이 들이닥치였다.

그놈은 몹시 노기가 등등하였다.

《오오- 미쓰 박! 당신 어제 밤 한 일 매우 재미없습니다. 당신 나를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당신 나를 반대하면 당신 아버지 재미없습니다. 당신 정신채리시오! 알겠습니까?》

스틸맨은 미라를 뚫어지게 흘겨보는것이였다.

《대좌님이나 정신채리세요. 신문에 난것 모릅니까?》

미라는 뾰로통한 얼굴로 쏘아붙이였다.

《오오- 신문! 하하하… 오늘 밤안으로 신문기자 구금할수 있습니다. 좋지 못한 신문 페간시킬수 있습니다. 미군 반대하는 신문 겁나지 않습니다. 하하하…》

노기가 꼭두까지 뻗쳤던 스틸맨은 금방 칠면조처럼 껄껄 웃어대며 미라를 쏘아보더니 《미쓰 박! 당신 남평이 입원한 병원에 가지 마시오! 당신 치료비 내지 마시오. 남평이 상처 낫는대로 경찰에 구금할수 있습니다.》 하고 위협을 하였다.

미라는 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서있기만 하다가 휙 나오려 하였다.

스틸맨은 갑자기 미라를 막아서며 《미쓰 박! 가지 마시오! 당신 병원에 갑니까? 또 가면 재미없습니다. 당신 남평이 사랑합니까? 그런 반미분자 사랑하면 아름답지 못합니다. 유엔군사령부 당신 감금할수 있습니다. 당신 아버지 국회의원 위태합니다. 하하…》

스틸맨은 악마처럼 껄껄 웃으며 미라를 위협하였다.

이때 소리없이 문이 열리더니 이번엔 웰톤이 들어왔다.

그자는 매우 유쾌한 표정으로 미라에게 먼저 시선을 던지며 《오오- 미쓰 박! 잘 왔습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 있게 됩니다. 당신 갑자기 미국려행 가게 됩니다. 2~3일내로 나하고 비행기로 떠나기로 오늘 문교부에서 결정했습니다. 당신 미국려행 행복한 일 많이 있을것입니다. 하하하-》 하고 한바탕 웃더니 어느덧 스틸맨에게로 눈길을 옮기였다.

그자는 질투에 찬 날카로운 시선으로 스틸맨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스틸맨도 웰톤을 사납게 노려보더니 이윽고 미라에게 《미쓰 박! 당신 미국려행 갈수 없습니다. 유엔군사령부 당신 미국려행 중지시킬수 있습니다.》라고 내뱉았다.

스틸맨은 결국 미라를 가운데 놓고 웰톤에게 도전하기 시작한것이였다.

두 사나이는 서로 노려보았다. 금방 무서운 격투라도 벌어질것처럼 자못 형세가 험악해갔다.

미라는 이 틈에 슬쩍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말았다.

그는 그길로 차를 타고 곧바로 별장으로 나와버렸다.

이전 같으면 목욕을 하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한바탕 부르고나서 양주를 한잔 들이마시고 침실에 들어가는것이 그의 습관이였으나 오늘 그는 목욕도 피아노도 노래도 다 그만 집어치우고 양주만 한꺼번에 세잔이나 들이킨 다음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미라는 오늘 웰톤이 말한 미국려행도 웬 일인지 마음에 당기지 않았다.

신문기사에 자기의 이름이 뚜렷이 드러나 망신하게 된것도 그렇거니와 웰톤과 스틸맨을 다 괄세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자기에게 결국 창녀노릇을 강요하는 아버지가 오늘따라 증오스러웠다.

아버지의 보다 높은 부귀공명을 위하여 어제는 웰톤에게, 오늘은 스틸맨에게… 또 래일은 누구에게 교태를 부리며 자기 청춘을 짓밟혀야 한단 말인가?

미라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알콜기운은 상승되여 얼굴은 홧홧 달고 기분은 더 고조되였다.

그는 어느덧 어제 남평으로부터 자기 생활태도에 대한 랭혹한 비판을 받던 일이 불쑥 회상되였다.

무뚝뚝하고 랭정해보이나 름름하고 정직하고 리지적이고 예술가적량심과 기풍을 가진 남평! 스틸맨에게 끝까지 꺾이지 않던 대담하고 억센 남성다운 성격을 가진 남평!

미라는 어느덧 자기도 뜻하지 않은 사이에 남평에게 매혹되였고 전신이 그의 매력에 끌려 딴 세계로 들어가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아까 아버지 사무실에서 스틸맨이 독사같은 우멍눈으로 자기를 쏘아보며 위협하던 목소리가 귀전에 다시 울려왔기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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