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청룡황룡도》

5

 

찬수는 미라가 데리고 온 의사에게서 응급치료를 받고 그길로 바로 차에 옮겨져 동대문안 어느 외과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중상을 입고도 그 즉시 응급치료를 받지 못하여 심한 출혈은 계속되였고 그로 말미암아 마침내 몽롱한 의식속에서 입원실 병상에 누운 찬수는 곁에 누가 있는지조차 잘 알수 없었다.

그는 의식을 잃고 정신없이 하루밤을 보낸것이였다.

아침부터 하늘은 음산한 구름에 뒤덮여 병실을 더욱 침울하게 하였다.

찬수는 여전히 눈을 감은채 조용히 침상에 누워있었다.

얼마후 그는 어렴풋이 들리는 문소리, 발자국소리, 곁에 누가 와 서있는것만 같은 감각을 느끼자 눈을 스르르 떴다.

병실천정이 여전히 빙그르르 돌고있었다.

머리맡에 누군가가 와 서있는 모습이 눈에 띄였으나 그가 누구인지는 얼른 알수 없었다.

《좀 정신이 드세요?》

녀자의 목소리였다. 찬수는 그것이 간호부의 목소리거니 생각되였을뿐 구태여 달리는 생각하지 않았다.

《…》

찬수는 대답할 기운조차 없어 다시 눈을 스르르 감아버리였다.

《무얼 좀 잡수셔야죠?》

녀자의 목소리가 또 들리였다.

찬수는 시장기가 들자 눈을 다시 떴다. 찬수는 깜짝 놀랐다. 자기 곁에 서있는 녀자는 간호부가 아니라 딴 녀자였기때문이였다.

《미안합니다. 누구십니까?》

찬수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퍽 어지러우신가 보군요. 난 미라예요!》

찬수는 그 소리에 더욱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 녀자가 무엇때문에 아침부터 자기 병실에 나타났는지 찬수는 그 리유를 알수 없었다.

《…》

찬수는 입을 다물며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말았다.

《정말 남선생께 미안합니다. 이렇게 중상을 당하시게 된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미라가 가만히 말했다.

그러나 찬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윽고 눈을 스르르 뜨며 《나는 그런 말씀 듣고싶지 않습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하고 랭정하게 말했다.

《공연히 벽화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군요. 글쎄…》

《…》

《그러나 남선생의 치료문제, 또 퇴원하신 뒤 생활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념려마세요. 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습니다.》

미라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을 때 찬수는 갑자기 불쾌해졌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나는 당신네들에게서 그런 동정을 받을 하등의 리유도 없습니다.》

찬수의 어조는 몹시 무뚝뚝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되실줄 알아요. 그러나 그것은 내 의무라고 생각됐으니까요!》

미라는 잠간 말을 중단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앞으로 남선생이 훌륭한 화가로 출세할수 있는 모든 조건을 보장해드릴 용의를 가지고있다는것만 알아두세요!》

미라는 어느 틈에 의자에 덥석 앉았다.

찬수는 속으로 코웃음이 북받쳤으나 기운이 없어서 웃을수도 없었다.

《나두 쟝르는 다르지만 예술가라면 예술갑니다. 남선생의 눈으로 보면 내가 퇴페적이고 음탕한 미국식쟈즈음악에 물들었다고 할것이지만 그러나 내게도 약간의 예술가적고민이 없지 않습니다.》

《예술가적고민이 있다구요?》

찬수는 더욱 괴로운 웃음이 튀여나오려 했다.

《물론 반문하실줄 압니다. 내게 그 고민의 씨를 뿌려준것은 바로 남선생자신입니다!》

《뭐요?》

찬수는 깜짝 놀랐다. 미라에게서 그런 말이 돌발적으로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때문이였다.

《며칠전 남선생이 우리 별장에 벽화문제를 의논하러 오셨을 때 남선생은 너무도 름름하게 예술가적립장을 지키며 내가 말한 그림, 우리 아버지가 말한 그림 모두다 반대해나섰지요? 나는 그때 남선생의 예술가적풍모와 남성적인 기개에 놀랬습니다.…》

미라는 말을 끊고 찬수의 표정을 살피더니 다시 말을 계속했다.

《나는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적환경에서 남선생 같은 예술가가 과연 몇사람이나 있을가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남선생이 어제 미군장교의 권총에 맞아 부상은 입었지만 사실은 그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남선생이라고 생각해요. 남선생은 정말 용감하셨어요!》

미라는 계속 종알대였다. 찬수는 다시 현기증이 나서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너무 자꾸 말씀만 시켜서 미안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는 동안에 통증을 잊으시라고 그러는거예요! 호호호…》

미라는 이 순간 요염하게 웃었다.

잠간동안 고요한 침묵이 계속되였다.

그러나 미라는 다시 침묵을 깼다.

《나는 남선생두 아시다싶이 국회의원의 딸이고 한미무역사 사장의 딸입니다. 내 생활은 호화스럽습니다. 별장을 가지고… 피아노를 가지고… 거의 날마다 미국사람들과 접촉하고… 그러나 나는 이런 부귀영화가 내 일생동안 계속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내 일생은 역시 예술가로서 살아나가고싶어요!》

찬수는 미라의 말을 귀담아듣다가 《예술가로서 일생을 살고싶다구요?》 하고 불쑥 반문하였다.

미라는 잠시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에게는 찬수의 어조가 시종일관 무뚝뚝하고 자기를 너무나 비웃는듯이 들렸기때문이였다.

찬수는 이 순간 미라에게 한마디 찍어 말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였다.

《만일 미라씨가 예술가로서 일생을 살고싶다면 왜 지금과 같은 그런 생활을 합니까?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나는 미라씨를 처음부터 증오합니다. 부패한 미국식생활양식에 젖어 음란한 생활을 계속하는 당신이 예술가로서 살고싶다는 말은 곧이들리지 않습니다. 뿐만아니라 그것은 예술에 대한 모독으로도 될겝니다.》

찬수의 말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는 너무 지나친 말을 한것 같아 다시 부드럽게 어성을 낮추어 말했다.

《그러나 만일 진정으로 미라씨가 예술가로서 참다운 생활을 하고싶다면 현재의 그 썩어빠진 생활환경에서 용감히 뛰쳐나오십시오!》

찬수의 이 말은 미라에게 약간 만족감을 준것 같았다.

《만일 그렇다면 그땐 날 증오하시지 않으시죠? 호호호…》

미라는 요염하게 한바탕 웃었다.

《…》

찬수는 대답할 흥미가 없었으므로 입을 다물고 눈을 다시 스르르 감았다.

이때 병실문을 두드리며 지용세와 윤산이가 들어왔다.

지용세는 미라를 발견하자 한참동안 쏘아보더니 흥분된 음성으로 《당신네가 입원치료비만 부담하면 이 문제가 끝날줄 압니까? 미군장교놈을 별장에 끌어들여 이런 만행을 저지르게 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고 소리높여 말했다.

《책임을 지겠습니다. 념려마세요.》

미라는 선선히 말했다.

《뻔뻔스럽게 책임을 진다구? 힝! 사람을 다 죽여놓고서두 책임만 진다면 그만인가?》

지용세는 더욱 격분했다.

이때 병실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구인지 청년 두사람이 들이닥치였다.

《어서 오십시오.》

지용세는 그들에게 의자를 권했다. 그들은 신문기자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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