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청룡황룡도》

4

 

찬수는 극도로 치솟는 분격을 참을수 없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스틸맨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죄로 당신이 나를 총살하겠다는거요? 조선사람의 목숨은 파리목숨만 못하단 말요? 마리야녀학교 연회가 벌어지던 밤 깨끗하고 순진한 조선의 녀학생들을 강제로 끌고 가 수욕을 채우려는것을 제지했다고 해서 당신은 홍찬수에게 그 권총을 뽑아들고 란사했지만 그는 죽지 않고 살았소. 당신네 총알이 조선사람의 가슴을 함부로 뚫지는 못할것이요. …》

이 순간 박춘식도 미라도 윤산도 눈이 둥그래졌다.

스틸맨은 더욱 독살스런 표정으로 변하며 《까뗌! 우리 미군 당신같은 사람 총살할 권리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신 빨리 두손 들고 돌아서시오!》 하고 찬수에게 권총을 바싹 들이댔다.

《아니, 글쎄 대좌님! 정말 취하셨나보군요. 뭘 그러십니까? 전화를 건다는데…》

미라는 이마살을 찡그리며 어느덧 찬수앞을 막아섰다.

《미쓰 박! 당신 비키시오! 전화 걸 필요없습니다. 저 사람 총살해야 할 사람입니다. 저 사람 틀림없는 홍찬수 친굽니다. 용서할수 없습니다. 미쓰 박! 비키시오. 당신 비켜서지 않으면 당신두 권총에 맞습니다. 어서 비키시오!》

스틸맨은 성을 왈칵 내며 미라를 위협하였다.

《아이유 참, 이걸 어떡해? 아버지 글쎄 가만히 섰지만 말고 어서 좀 같이 나가세요. 암만해두 무슨 일이 생기겠어.》

미라는 당황하여 짜증을 내며 박춘식을 바라보았다.

《얘, 얘, 비켜나라! 비켜나!》

박춘식은 침묵을 깨고 겨우 퉁명스럽게 말했다.

《미라씨! 비키십시오. 나때문에 미라씨가 대신 부상당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찬수의 말소리는 대담하고 침착하였다.

《미쓰 박! 빨리 비키시오! 당신 얼른 비켜나지 않으면 그대로 쏘겠습니다!》

스틸맨은 또 미라를 위협했다.

《아이유 대좌님! 제발 우리 별장에서는 그만두세요. 기분나쁘지 않아요? 네? 내 소원이예요! 네?》

미라가 애원하며 무심코 스틸맨앞으로 두어걸음 다가섰을 때 스틸맨은 갑자기 한걸음 옆으로 비켜서면서 권총을 찬수에게 겨누어대고 팡, 팡 하고 두방을 쏘았다.

찬수는 그놈의 권총알을 피할 사이없이 몸에 맞고 응접실바닥에 쓰러지고말았다.

이 순간 윤산은 쓰러진 찬수를 그러안고 허둥지둥 상처를 찾기 시작했다.

피에 굶주린 승냥이가 사슴을 씹어삼켰을 때의 쾌감을 느끼듯이 스틸맨은 신이 나서 껄껄껄 한바탕 웃어대며 뽑았던 권총을 다시 허리에 차고 뒤짐을 진채 응접실안을 잠간동안 오락가락하더니 윤산을 날카롭게 쏘아보면서 《당신 그 사람 빨리빨리 치우시오! 우리 미군 반대하는 사람 얼마든지 총살할수 있습니다. 당신두 내 말 안 들으면 총살할수 있습니다. 빨리빨리 치우시오!》 하고 위협하였다.

윤산은 치가 떨렸으나 그놈이 또 권총을 쏠가 겁이 나서 찬수를 등에 업고 응접실밖으로 나갔다.

스틸맨은 또 한번 악마와 같이 껄껄 웃어대면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미스터 박! 어서 갑시다. 연회시간 늦었습니다.》 하고 박춘식의 등을 밀어 앞장에 세우고는 미라의 허리를 옆으로 끌어안은채 복도를 걸어나갔다.

《미쓰 박! 당신 기분 왜 좋지 못합니까? 내 기분 오늘 매우 유쾌합니다. 반미분자 처치할 때마다 유쾌합니다. 그런 분자 한국에 있을수 없습니다. 당신 그런 분자 친하면 안됩니다. 당신 아버지 국회의원 아닙니까?》

스틸맨은 미라를 강제로 끌고 현관을 나가 자기 차에 태웠다.

이윽고 두대의 승용차는 발동소리를 울리며 별장마당에서 사라져버렸다.

윤산은 찬수를 업고 허둥지둥 별장뒤 따로 떨어져있는 창고처럼 나지막하게 지은 별장지기네 집으로 들어갔다.

찬수의 몸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떨어졌다.

윤산은 찬수를 방아래목에 가만히 눕혀놓고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양복을 벗기며 상처를 찾으려 했다.

찬수는 왼쪽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던것이였다.

윤산은 얼른 응급치료를 하려 했으나 상처를 동여맬 헝겊조차 없었다.

별장지기로인과 하녀노릇을 하고있는 그의 딸이 당황히 서둘며 헝겊을 가져다 주었으나 그것으로는 커다란 상처를 동여맬수가 없었다.

《얘, 너 앞치마라도 찢어서 드려라. 할수없이 별장지기를 하자니까 이런 비통한 일을 다 당하는구나.》

령감이 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그의 딸은 앞치마를 벗어서 쪽쪽 찢어 붕대를 만들어 윤산에게 주었다.

윤산은 찬수의 상처를 여러겹 동여매였으나 피는 여전히 배여올랐다.

찬수는 입을 꼭 다문채 눈만 말똥말똥 똑바로 뜨고 분노를 참지 못하는 얼굴로 윤산을 바라보았다.

《윤형!》

찬수의 목소리는 몹시 떨리였다.

《그놈은 나를 죽일려구 권총을 쏘았지만… 그렇게 쉽게 그놈의 총알에 내가 죽어?》

찬수는 격분을 참지 못하여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 앉으려 하였다.

그러나 출혈이 심한 관계로 그의 얼굴이 해쓱해지며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남선생! 너무 흥분하지 마시구 가만히 누워계시오.》

윤산은 찬수를 다시 가만히 자리에 눕혔다.

그는 하녀를 앞세우고 전화실로 들어가 미술장치사로 전화를 걸었으나 지용세는 없었다.

윤산은 다시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걸고 응급치료를 요구했으나 시외가 되여 나오지 못하겠다고 하나같이 거절을 당하였다.

해는 이미 저물어 어둠이 산골짜기에 들어찼고 진눈까비는 더욱 심하게 바람과 섞여 휘몰아치고있었다.

찬수의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나와 동여맨 헝겊을 붉게 물들였고 그의 얼굴빛은 심한 출혈로 인하여 갈수록 피기가 없이 해쓱하게 변해갔다.

찬수는 차츰 의식이 몽롱해지는것만 같았다.

윤산은 초조하고 불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남선생! 내가 갔다오리다. 신작로에 나가서 택시라도 한놈 잡아타고 시내로 들어갑시다.》

윤산은 허둥지둥 옷을 주어입고 밖으로 나가 진눈까비 내리는 산골짜기를 따라 빨리 걸어갔다.

찬수는 때때로 감았던 눈을 뜨고 방안을 살펴봤다.

그러나 방안은 어두워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고 컴컴한 천장만 빙글빙글 돌아가고있었다. 그는 이미 현기증이 심해진것을 느낄수 있었다.

《가만히 안정을 하시우! 미국놈들이 극성스럽게 별장에 들랑거리더니만 기어이 그 못된 만행을 허구야마는구려!》

별장지기령감이 찬수의 머리맡을 지키며 비분에 찬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담배를 뻐끔뻐끔 빨고있었다.

윤산이가 나간 뒤 거의 두시간쯤 되여서 별장마당에는 차소리가 들리였다.

그러나 차에서 내린 사람은 택시를 잡으러 간 윤산이가 아니였다.

미라가 어떤 가방을 든 양복쟁이 하나와 간호부 한사람을 데리고 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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