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청룡황룡도》

3

 

찬수는 기묘한 바위와 큰 고목나무, 졸졸 흐르는 골짜기의 맑은 물줄기를 찾아 몇장의 속사를 하면서 돌아다니였다.

잔뜩 찌프렸던 날씨는 기어이 눈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송이는 진눈까비로 변하였다.

찬수는 다시 별장으로 돌아오고말았다.

윤산은 여전히 응접실에서 그림을 그리고있었다.

찬수는 오늘 웬 일인지 감흥이 없고 불쾌한 벽화를 계속 그리고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자기 기분대로 한다면 지금껏 그리던 그림도 당장 다 지워버리고 가고만싶었다.

그는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조선희나 백인자를 찾아서 학교이야기도 듣고싶었고 또 영옥이네가 이사간 곳과 또 그의 소식도 알고싶었다.

설령 그들을 만나지 못하면 한숙경의 주소라도 알아서 찾아가보고싶기도 했다.

만일 그들이 모두다 동맹휴학사건에 관련되였다면 자기는 응당 그대로 있을수 없다고 생각되였다.

비록 《집행유예》로 출옥은 했지만 어찌 그대로 모른체 하고 이따위 별장에서 밥벌이를 위한 벽화만을 그리고있을수 있단 말인가!

찬수의 마음은 초조해지고 걷잡을수 없이 설레이기만 했다.

그러나 찬수는 또다시 곰곰히 생각해봤다. 자기가 그림을 중단하고 돌아가버리면 갓 취직한 미술장치사에 큰 타격을 주는 결과밖에 될수 없고 또 지선생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것으로 될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잠간동안 더 깊이 생각하다가 기왕 그리던 그림이니 오늘까지 끝내고 손을 떼리라 결심하였다.

그는 다시 벽화에 달라붙어 붓을 들었다.

복도에까지 풍기는 들큰하고 고소하고 누릿한 음식냄새에 섞여 지속적으로 지껄이며 웃어대는 소리가 식당쪽에서 흘러나올 때마다 또다시 불쾌했다.

그는 거의 기계적으로 노란빛을 칠해놓고 황룡의 몸뚱이에 주황빛비늘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이윽고 식당쪽에서 술에 취한 스틸맨이 복도로 걸어나오고있었다.

그자는 찬수가 벽화를 그리는 복도를 지나 미국인전용변소에 갔다가 오는 길에 주춤하고 서서는 찬수가 붓을 놀리는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노꿋! 노꿋! 당신 미술갑니까? 그 그림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 그림 우리 미국사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그림 배암 아닙니까? 그 몸뚱이 무섭습니다. 당신 그 그림 그리지 마시오!》

스틸맨은 찬수의 등뒤에서 거치른 목소리로 떠들어대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식당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찬수는 불쾌감과 분격이 한꺼번에 치솟아올랐다.

도대체 이자는 박춘식과 미라와 어떤 관계를 가진자이기에 벽화에까지도 주제넘게 간섭을 하고 떠벌이는것인가?

찬수는 참을수 없는 모욕을 당한것이 생각할수록 분했다.

찬수는 얼른 발돋움에서 뛰여내려 응접실로 들어갔다.

그는 흥분된 기분을 걷잡지 못하여 얼른 작업복을 벗고 양복을 바꾸어입었다. 그리고는 자기 화구를 주섬주섬 챙기여 가방에 집어넣고 모자를 눌러썼다.

《윤형! 안 가시겠습니까?》

《아니, 어느새?》

윤산은 놀란 표정을 하며 찬수를 돌아다보았다.

그는 찬수의 태도가 심상치 않은것을 보고 다시 걱정스런 목소리로 《남선생! 무슨 기분 상한 일이 있었습니까?》 하고 물으며 발돋움에서 뛰여내리였다.

《윤형께 미리 말씀드리지만 나는 벽화를 그만두겠습니다. 애당초에 착수했던것이 잘못이였습니다.》

찬수의 표정은 심각하였고 분노의 불길이 치밀어오르고있었다.

《아니, 왜 갑자기 그러십니까?》

윤산과 찬수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복도쪽에서 갑자기 지껄이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응접실문이 열리며 스틸맨과 박춘식이가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든 찬수를 발견한 스틸맨은 갑자기 눈살을 찌프리며 《노꿋! 노꿋! 당신 왜 그림 그리지 않고 갑니까? 당신 내 말 매우 불쾌합니까? 당신 태도 좋지 못합니다. 당신 라체화 그릴줄 모릅니까? 라체화 그리지 못하는 사람 미술가될수 없습니다!》 하고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

찬수는 그놈의 수작이 너무도 유치하고 아니꼽고 불쾌해서 대꾸하고싶지가 않았다.

《아니 여보! 어찌 말이 없소? 미군장교님께 너무나 실례가 아니요?》

박춘식이가 퉁명스럽게 찬수를 꾸짖었다.

찬수는 여전히 입을 다문채 분격을 참고만 있었다.

《당신 미술학교 졸업했습니까?》

스틸맨은 또 날카롭게 물었다.

찬수는 그대로 참고만 있을수 없었다.

《그런 모욕적인 질문은 하지 마십시오. 내 그림이 벽화에 적당치 못할진대 그리지 않으면 그뿐입니다.》

찬수의 말소리는 무게있게 울려나왔다.

이 순간 스틸맨은 그 움푹 꺼진 두눈을 독살스럽게 뜨고 표독스런 음성으로 《까뗌! 당신 사상 매우 좋지 못합니다. 당신 우리 미군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당신 우리 미국사람 좋아하지 않는 그림 그릴 필요 무엇입니까? 당신 이름 무엇입니까? 당신 주소 어딥니까?》 하며 양복주머니속에서 수첩을 꺼내놓더니 만년필뚜껑을 비틀기 시작했다.

찬수는 이 순간 더 분했고 더 심한 모욕감에 부딪쳤다.

이미 이놈과 충돌을 하게 된바엔 조선사람의 긍지감을 꺾이여서는 안될것이며 조선사람이 미국놈에게 굽히지 않는다는 의기를 보여주어야 할것이며 또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살려야 할것이였다.

찬수는 《구태여 내 주소와 이름을 알 필요가 무엇입니까? 미군장교면 장교지 경찰까지 겸하지는 않았겠지요!》 하고 저력있는 어조로 점잖게 꾸짖었다.

《아니, 여보! 그게 무슨 당돌한 소리요. 정말 당신 사상 좋지 않군그래! 응?》

박춘식이가 성을 왈칵 내며 찬수를 흘겨보았다.

스틸맨은 더욱 노기가 가득찬 얼굴로 찬수를 쏘아보며 《당신 사상 매우 좋지 못합니다. 당신 그대로 둘수 없습니다. 당신 가지 못합니다. 당신 경찰에 구금하겠습니다. 당신 철저한 반미분자입니다.》

하고 고함을 치더니 《미스터 박! 빨리빨리 저 사람 경찰에 구금시키시오. 미쓰 박! 당신 빨리 경찰에 전화거시오!》 하고 강경한 어조로 소리쳤다.

《아이유, 스틸맨대좌님! 뭘 그렇게까지 해요. 대단한 일두 아닌걸 가지구… 래일부터 라체화로 바꾸어 그리면 되잖아요? 호호호…》

어느 틈에 스틸맨의 곁에 와있던 미라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그 자의 노기를 풀려구 애를 썼다.

찬수는 미라의 입을 통하여 이자가 바로 스틸맨이란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치가 떨리고 주먹이 불끈 쥐여졌다.

찬수는 날카로운 두눈으로 스틸맨을 쏘아보았다.

스틸맨도 독사같은 두눈으로 찬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까뗌! 당신 내 얼굴 보지 마시오. 당신 두눈 매우 아름답지 못합니다. 당신 무서운 빨갱이 아닙니까?》

《아이유, 스틸맨대좌님두! 자꾸 흥분하지 마세요. 저분은 그런분 아니예요. 내가 잘 아는분이예요.》

미라는 스틸맨에게 아양을 떨면서 어리광대를 놀았다.

《미쓰 박! 당신 거짓말마시오! 저 사람 철저한 반미분자입니다. 당신 왜 저 사람 좋아합니까? 당신 경찰에 빨리 전화걸지 않으면 저 사람 이 자리에서 총살하겠습니다. 미스터 박! 저 사람 총살하는데 반대마시오!》

스틸맨은 박춘식의 말을 듣기도 전에 어느덧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찬수를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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