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청룡황룡도》

1

 

박춘식의 별장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지도 벌써 사흘이 지난 어느날 정오였다.

뼁끼와 채색이 묻은 검정작업복을 입고 털실로 짠 작업모를 푹 눌러쓴 찬수는 복도 높은 벽에 발돋움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있었다.

오색채운이 구천을 뒤덮고 뢰성벽력이 천지를 흔들며 번개가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무시무시한 자연의 위협속에서 청룡, 황룡 한쌍이 서로 시새며 여의주를 빼앗아물고 제 먼저 득천하려는 내용의 그림 《청룡황룡도》를 그리는것이였다.

찬수는 이런 그림을 벽화로 그려보기는 처음이나 고전동양화에도 조예를 가지고있는 그로서는 현대인물화나 다른 정물화보다는 어느 정도 편안한 점이 있다고 느꼈다.

원래 《룡》이란것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실재의 동물이 아니라 다만 상상의 동물인것으로서 《못 본 룡은 잘 그려도 본 호랑이는 잘못 그린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모델이 없는 그림을 별로 그려보지 않았던 그로서 못 본 룡을 그린다는것은 한낱 붓장난에 지나지 않는것이라고 생각될수밖에 없었다.

찬수는 예술적감흥이 없는 이런 벽화를 그린다는것은 오직 밥먹기 위해서 품을 파는 일개 날품팔이와 같은 직업적인 화공으로서만 할수 있는 일이라고 느껴지며 자기의 오늘이 너무도 한심스럽고 또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감흥없는 그림을 그린다는것은 괴로운 일이였고 또 몸이 쉽게 피로해지기 십상이였다.

찬수는 채색을 칠하다가 갑자기 서글픈 감정에 휩싸이고 또 팔다리와 고개도 아파 그만 중단하고 발돋움에서 뛰여내려 응접실로 들어갔다.

응접실에서는 윤산이가 벽화를 그리고있었다.

그는 박춘식이가 요구한대로 라체화를 벽에 그리고있었다.

숲이 우거진 산골짜기 맑게 흐르는 물에서 목욕을 하는 젊은 녀인들의 라체모습을 그리는것이였다.

찬수는 괴로운 웃음을 참지 못한채 담배를 한대 피여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마음은 어느덧 시내로 달려갔다.

출옥이후 여러날이 지났건만 아직도 만나지 못한 영옥이며 선희며 인자의 소식이 궁금하였다. 그들중 누구든지 자기의 출옥을 알았을것이고 그렇다면 셋이 같이 모여서는 못 온다치더라도 누구나 한사람쯤은 자하문밖으로 자기를 찾아옴즉도 했건만 아무런 소식이 없는것이였다. 혹시 세사람이 한꺼번에 무슨 사고라도 생긴것이 아닐가?

그는 이런 생각이 들자 신문에 보도된 마리야녀학교의 동맹휴학사건에 그들이 정녕 관련이 되지나 않았나 불안스러워졌다.

뿐만아니라 일부 학부형들과 일부 사회인사도 관련되였다는 기사내용으로 보아 과연 누가 검거되였는지 궁금하여 자하문밖에서 하숙을 옮겨 들어오던 날 우선 먼저 자기가 알고있는 영옥이네 집을 찾아갔었으나 딴 사람의 문패가 달렸고 이웃사람에게 물어봐도 어디로 이사갔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헛걸음을 하였던것이였다.

그는 정신없이 창밖만 우두커니 내다보며 담배만 깊이 빨아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윽고 그는 형무소안의 차동무며 정돌이며 그밖의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걱정되였다.

그들에게서 부탁받은것들은 다했지만 빵이나 사과라도 몇번씩 차입해주어야 할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량심에 걸려 불안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 순간 갑자기 하녀가 찬수앞에 나타나며 《저, 잠간만 오시래요.》 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날? 누가?》

《아가씨께서요.》

《? …》

찬수는 이상스런 예감이 들었다.

그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녀를 따라 응접실을 나섰다.

하녀는 찬수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미라가 혼자 식탁의자에 앉아있었다.

《수고하시죠? 발돋움을 하시고 그리시기란 퍽 힘드시는 일이예요.》

미라는 제법 인사성있게 말하고는 찬수를 바라보며 방그레 웃었다.

《네, 뭐 괜찮습니다.》

찬수는 태연히 의젓하게 서서 말했다.

《자, 좀 앉으세요.》

미라는 찬수에게 앉기를 권했다. 그러나 찬수는 별로 앉을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그대로 서서 《네, 좋습니다. 그런데 무슨 말씀이… 계십니까? 그림에 대해서? …》 하고 미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네, 좀 앉으세요.》

미라는 또 찬수에게 앉기를 권했다.

너무도 의자가 화려하고 또 바닥이 깨끗하였으므로 작업복을 입은 자기로서는 그런 호화스러운 의자에 앉는것이 약간 거북해졌고 어울리지 않았다.

미라는 오늘 류달리 윤택이 흐르는 살빛달린옷을 입었고 그의 몸에서는 그전날과 같이 강한 향수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니, 왜 앉지 않으십니까? 좀 쉬면서 그리셔야지 얼른 그려버리실려구만 하면 싫증이 나지 않아요? 호호호…》

미라는 간드러지게 한바탕 웃으며 의자를 끌어다 찬수앞에 내밀었다.

《그럼, 실례합니다.》

찬수는 그제야 미라가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그는 여전히 무거운 표정을 짓고 미라의 태도를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무엇때문에 작업중에 있는 나를 식당으로 불러들였나? … 찬수는 리해하기 힘들었다.

이윽고 하녀가 커피와 양과자를 담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어서 커피를 드세요.》

찬수는 자기 혼자만 작업중에 불리워와서 이 녀자에게서 커피와 양과자를 대접받을 아무런 리유도 없다고 생각되였으므로 얼른 마시려들지 않았다.

《어서 드세요.》

미라가 또 방긋 웃어보이며 커피를 권했다.

《네.》

찬수는 대답은 했으나 마시지 않을 심산으로 자기 작업복에서 담배 한대를 꺼내여 성냥을 그어댔다.

《그런데 지금 그리시는 청룡황룡도가 언제쯤 끝날것 같아요?》

《글쎄요, 쉬 끝나겠죠. … 급하십니까?》

찬수는 정색을 하고 반문하였다.

《아니예요. 천천히 그리세요. 그런데 실례지만 동양화가 전문이십니까?》

《뭐, 별루 전문이 못됩니다.》

《천만에… 필치가 보통이 아니시던데요 뭘… 나두 그림을 아주 모르지는 않아요. 남평선생이라 하셨죠? 실례지만 언제 전람회에 입선되셨어요?》

미라는 은근히 찬수의 실력을 떠보려는것이였다.

《난, 그런 실력이 없습니다.》

찬수는 속으로 괴로운 웃음을 지으며 무뚝뚝하게 말해버렸다.

미라의 수작이 찬수에게는 몹시 건방져보였기때문이였다.

《미술단체에 관계하십니까?》

《난 그런 유명한 미술가가 못됩니다.》

찬수의 얼굴에는 괴로운 웃음이 떠올랐다.

《아이유, 자꾸 어찌 그런 겸손의 말씀만 하십니까? 미술장치사 사원들은 모두다 미술가협회에 가입한분이라던데…》

미라는 방그레 웃으며 찬수의 표정을 건너다보았다.

사실 미라의 그 말은 옳았다.

윤산과 최강은 두사람이 다 미술가협회의 회원이란 말을 들었다.

찬수는 마리야녀학교에 취직했을 때 김치선으로부터 한때 미술가협회에 가입하라는 권고를 들은 일이 있으나 차일피일하고 가입하지 않았었다.

찬수는 미술가협회의 회원되기가 싫었던것이였다.

조선사람의 고유한 민족문화전통을 무시하고 또 오늘날 이 땅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를 싫어하며 조선사람의 생활감정에 전혀 맞지 않는 미국식생활양식을 강요하기 위하여 꼬쓰모뽈리찌즘과 슐레알리즘(초현실주의)을 류포시키고있는 《한국》문교당국이 고삐를 쥔 그런 미술가단체에 가입한다는것은 자기자신을 시궁창으로 몰아넣는것밖에는 안된다고 느꼈기때문이다.

《그래, 전람회준비를 하시는중이십니까?》

《난 그런걸 생각할만 한 화가가 못됩니다.》

찬수는 다시 괴로운 웃음을 띠웠다.

《어찌 그리 자꾸 겸손의 말씀만 하십니까? 좀 이상스러운데요? 호호호…》

미라의 이 말은 찬수에게 아프게 들렸다.

미라는 다시 찬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남평선생께 미리 부탁을 하나 할게 있어요. 그 청룡황룡도를 다 그리시고나서 계속 여기서 그림 한장을 그려주세요!》

《무슨 그림입니까?》

《바루 나를 모델로 해서 적당히…》

미라는 이 순간 찬수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봤다.

《글쎄요, 사실은 인물화를 잘 그리지 못합니다.》

《아니, 화고료를 안 드릴가봐 그러세요? 화고료는 청구하시는대로 드려요! 너무 그리 겸손하시면 결국 손햅니다. 호호호…》

미라는 그것이 찬수의 겸손으로만 알았던 모양인지 만족한 얼굴로 깔깔대며 웃었다.

《더 다른 말씀은 없습니까?》

찬수는 더 앉아있기가 싫었으므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니, 커피는 기어이 안 드시구?》

《네, 일없습니다.》

찬수는 다시 응접실로 돌아와 담배를 피워물고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그는 미라에게 자기가 모욕당한것만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 입선을 했느냐는둥, 미술단체에 가입을 했느냐는둥, 전람회를 준비하느냐는둥, 끝으로 제 몸을 모델로 그려달라는 말까지 하는것으로 보아 자기를 한번 깔보고 롱락해보려는것이나 아닌가싶은 느낌까지 들었기때문이다.

《에이, 빌어먹을것!》

윤산이가 그림을 그리다가말고 붓을 던지며 자기도 담배를 피워물었다.

때마침 별장을 향하여 승용차 두대가 꼬리를 물고 솔밭사이길을 굽이돌아 천천히 기여올라오고있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