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을 하고

3

 

문화동 산등성이에는 게딱지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한데 붙어서 커다란 빈민부락을 이루고있었다.

지붕도 벽도 널판자쪽으로 이어대여 만들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미군의 종이상자쪽을 모아 벽을 둘러친 《하꼬방》들은 이름그대로 궤짝속에 들어앉은것이나 별차이 없었다.

평탄하고 교통이 사통오달하며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찬 이른바 도심지대는 아니라 하더라도, 높은 기와집이나 양옥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래도 허리를 펴고 드나들만 한 정도의 방 한칸이라도 가져보고싶은 갈망은 이 빈민부락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느꼈으리라고 생각될만큼 그들의 궤짝집은 답답하고도 불편해보였으며 또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영옥은 미아리고개에서도 이런 빈민주택들을 많이 보았고 마리야녀학교부근에서도 또 현저동, 마포, 룡산, 남산변두리 기타 많은 곳에서 적지 않게 보았으나 오늘처럼 강렬한 인상과 자극을 받기는 처음이였다.

김만국을 찾으면 알겠지만 자기네 집이 이사를 나온 곳이 이 근방이나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자 영옥은 지난날 도심지대에서 비교적 호화스런 주택을 가지고 잘 먹고 잘 살던 생활이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마치 기나긴 꿈을 꾸고났을 때처럼 몹시 허전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는 속절없이 자기네도 이러한 빈민부락에 와서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된걸 생각할 때 영옥은 새삼스럽게 오늘날 이 땅의 현실이 원망스럽고 증오스러웠다.

궤짝집 문앞에는 아래도리를 벗은 어린아이들이 배고픈 상을 하고 서서 울고있는 모양이 눈에 띄였다.

영옥은 갑자기 자기가 피신하고있던 우이동 외딴집의 어린 소녀 순옥이를 련상하였다.

애기어머니들은 모두다 얼굴들이 누렇게 부황이 났다. 늙은이들은 숫제 방에서 앓느라고 나오지도 않았다.

문짝은 하나같이 성한것이 없었다. 문이 비꼬여 맞지 않는것, 신문지쪽을 발랐으나 갈가리 찢어져 너덜거리는것, 또 어떤 집은 숫제 문짝이라고는 없고 가마니짝을 문짝대신 덮어씌운것들이 눈에 띄였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때여 밥을 끓여먹는지 부엌에는 나무 한개비 보이지 않았고 또 부엌이나 굴뚝이 전혀 없는 집들도 적지 않았다.

집들과 집들은 서로 처마를 잇대여있었고 또 마주 바싹 건너다보이는것도 있었다. 그들은 이웃집에서 숨쉬는 소리까지도 들릴만큼 서로 밀집해 사는것이였다.

어느 집에선가 《펑!》 하고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리였다. 그와 동시에 고소한 냄새가 바람결에 풍기였다.

아이들이 그 소리가 난쪽으로 우우 몰려갔다.

《이 망할자식들아! 참새떼처럼 우우 몰려오면 어떡하니? 다들 가라! 가!》

《펑》기계장수는 얼굴에 검정이 묻어 마치 검둥이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고함소리에 놀래여 쫓겨나오고말았다.

어떤 아이는 그래도 남아서서 《펑》기계에서 튕겨져나온 콩쪼각을 주어먹고있었다.

영옥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 한참동안 김만국의 집을 찾았다.

산등성과 골목길엔 지저분한 오물이 널려있고 녹쓴 깡통과 깨여져버린 사기그릇쪼각이며 목부러진 유리병들이 불결하게 흩어져있었다.

김만국은 좁은 궤짝방에서 얼굴이 누렇게 부어오른 그의 안해와 함께 성냥갑을 붙이고있다가 깜짝 놀라며 밖으로 나와 영옥이를 맞아주었다.

《요전에는 놀라셨지요?》

영옥이는 방그레 웃으며 그날 밤 만국이가 순경놈을 개천바닥에 처박아넣고 도망치던 일을 회상하였다.

《그런데 그동안 어디 계셨습니까? 댁에서 여간 걱정을 하지 않는데…》

《좌우간 우리 집이 어디로 이사왔어요? 이 근방이예요? 얼른 좀 가르쳐주세요!》

영옥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자, 갑시다.》

김만국은 앞장서서 걸었다.

《어쩌면 이렇게 멀리 이사를 나오셨을가?》

영옥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이사는 이런데로 나오신게 잘 나오신겁니다. 영옥씨 댁뿐만아니라 회사나 공장을 운영하다가 망한분들이 이 부락에두 많이 와 사니까요!》

김만국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저께 내가 댁에 마침 들렸다가 고리대금업자놈들이 경찰을 데리고 와서 강제로 댁 살림살이를 들어내고 딴 녀석을 이사시키는 꼴을 목격했습니다. 그놈들은 인정도 도덕도 모를뿐아니라 저희들이 만든 소위 법도 지키지 않는 놈들이죠. 차압을 하고 경매에 붙여도 명도할 때까지는 기일이 있는 법인데 이건 기일이구 뭐구 무시하고 막 강제로 몰아내니 그게 뭐겠습니까? 그게 바루 미국 날강도식입니다. …》

김만국은 어느 틈에 흥분되였다.

이윽고 만국은 영옥을 데리고 골목으로 내려가더니 어떤 조그만 외쪽 널판자대문이 달린 양철집으로 들어갔다.

방 두칸에 부엌 한칸이 달린 조그만 집이였다.

방문곁에 쌍지팽이가 세워져있었고 고무신짝이 한짝만 놓여있는것이 눈에 띄였을 때 영옥은 금방 눈물이 빙그르르 돌았다.

《어머니!》

영옥이가 목멘 소리로 부르며 뛰여들어가자 방문이 화닥닥 열리며 《아니, 영옥이냐?》 하고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외다리로 일어서서 그를 맞이했다.

《아이구, 글쎄, 이거 꿈이냐? 네가 이렇게 찾아올줄은 몰랐구나!》

어머니는 영옥을 끌어안고 한참동안 말을 못하고 흐느껴 울기만 했다.

《어머니!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영옥은 눈물을 감추며 어머니의 파리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야 고생을 해두 집에서 했지만 너는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얼마나 안타까왔니?》

어머니는 자기 저고리의 옷고름으로 영옥이의 량볼에 흐른 눈물줄기를 닦아주었다.

《어머니, 그런데 이사하시기에 얼마나 힘드셨어요? 글쎄…》

《힘들구 뭐구간에 우리 집은 이렇게 망했구나! 그 원쑤 미국놈들때문이지, 이게 다!》

어머니의 두눈은 번지르르해지며 눈물이 빙그르르 돌아 흘러내렸다.

《어머니! 너무 슬퍼마세요. 원쑤를 갚을 날이 있어요!》

《그저 이놈의 세상이 어서 망해야겠구나! 어서어서 그 원쑤놈들이 썩썩 물러갔으면 좀 좋겠니!》

《어머니, 너무 념려마세요. 그 원쑤놈들이 언제까지나 우리 나라에서 안 나가고 견딜라구요.》

영옥은 이렇게 말하여 어머니를 위로하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버님은 어디 나가셨어요?》

《오늘은 아침일찍 나가셨단다. 류달리 오늘은 네 걱정을 하시더니 네가 올라고 그랬구나!》

《아버지가 그동안 무척 더 늙으셨겠지요?》

《말해 뭘 하니, 아주 반쪽이 되셨단다.》

어머니는 영옥의 우아래옷을 살피며 말했다.

《얘, 어서 그 옷을 벗고 새것을 꺼내입어라. 그동안 오죽이나 추웠겠니!》

영옥은 그제야 옷을 바꾸어입을 생각이 났다.

영옥은 웃목을 바라보았다. 초라한 장농이 하나, 버들상자 둘, 함짝 하나, 보퉁이 몇개, 궤짝 한개… 이렇게 변해버린 자기 집 방안살림살이가 몹시 쓸쓸하고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옷가지도 차압을 당하셨다더니만 어떻게 간직해두셨어요?》

《생각다 못해 딱지붙은 옷장을 뜯고 뽑아냈느니라. 망하는 놈이 겁날게 있더냐! 어서 버들상자속에 있는 옷을 꺼내입어라!》

어머니의 말을 듣고 영옥은 웃목으로 올라와 버들상자를 열었다.

그속에는 영옥의 옷가지가 들어있었다.

영옥은 첫눈에 자기 외투를 발견하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우이동에서 그렇게도 바라고 기다리던 외투가 어머니의 손에 의하여 보관되여있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금방 두눈을 흐리게 하고도 남았다.

그는 갈아입을 옷들을 골라내다가 무심코 홍선생을 찾아서 자하문밖에 갈 때 입었던 하늘빛치마저고리를 발견했다. 또 다려주기로 하고가져왔던 홍선생의 와이샤쯔가 그대로 들어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영옥은 이 순간 갑자기 홍선생의 소식을 알고싶어 가슴이 걷잡을 사이없이 울렁거리고 안타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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