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을 하고

2

 

영옥은 한숙경선생의 집대문틈으로 집안을 잠간 살펴보았다. 집안은 씻은듯 고요하였다.

《한선생님! 한선생님!》

영옥은 대문을 흔들며 소리쳤다.

한참만에 식모가 뛰여나왔다.

《누구예요?》

《한선생님 뵈러 왔어요!》

《학부형이신가요?》

이 순간 영옥은 자기가 촌녀자로 변장한것을 생각하고 《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식모는 웬 일인지 좀 랭정한 태도로 《왜 그러세요? 지금 선생님이 안 계세요.》 하고 대문을 열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아주머니라도 뵙고 잠간 드릴 말씀이 있어요. 대문 좀 열어주세요.》

영옥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식모는 드디여 대문을 열어주었다.

《한선생님 벌써 출근하셨어요?》

《요새 집에 계시지 않아요.》

식모는 이상한 표정을 하면서 영옥의 얼굴을 살피였다.

《아니, 언제부터 안 계세요?》

영옥은 선뜻 이상한 예감이 떠올랐다.

《그런데 누구세요?》

영옥은 식모가 자기를 몰라보는것이 우습기도 했고 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를 모르시겠어요? 요전에 와서 자구 갔지요, 왜…》

영옥은 얼른 머리에 인 시래기보자기를 내려놓고 쓴 수건을 벗어보였다.

《오오라, 참. 옷을 그렇게 차리고 오니깐 어디 알수 있어요?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우.》

식모는 깜짝 놀라며 영옥을 방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언제 나가셨어요?》

《벌써 사흘째 됐어요. 글쎄 단 하루두 밖에서 안 주무시는 선생님인데 아무 기별두 없이 이틀밤이나 안 들어오시니 웬 일인지 몰라요.》

《학교에 전화를 해보셨나요?》

영옥은 심히 걱정이 되였고 불길한 예감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래, 어제 학교로 전화해봤더니 선생님은 안 계시고 다른 선생이 받으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이 이제 곧 집에 들어가실거라구만 하고서는 전화를 딱 끊어버리잖아요.》

식모는 불안에 잠긴 얼굴로 영옥을 바라보았다.

영옥은 암만 생각해봐도 한선생이 경찰의 취조를 받고있지나 않나 의심스러웠다.

정녕 그때 홍선생의 석방운동비때문에 다니던것이며 또 학부형들과 회의하던 사실들이 들통이 난것만 같아 영옥은 몹시 불안스럽고 걱정되였다.

혹시 그와 관련하여 학교에서 동맹휴학이라도 일어나지나 않았을가? 영옥은 이런데까지 과민하게 주의가 돌려졌다.

이때 대문틈으로 아침신문을 던지는 소리가 들리였다.

식모는 밖에 나가 신문을 집어다가 영옥에게 주었다.

영옥은 사회면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큰 기사로 《마리야녀학교에 또다시 맹휴소동》이라는 제목아래 《원인은 교원배척, 학원 모리화 반대 등》이라고 부제가 붙은 긴 기사가 게재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영옥은 갑자기 전신이 흥분되여올랐다.

그는 첫 대목부터 침착하게 읽을수가 없어서 대강대강 껑충 뛰여가며 읽어나갔다.

많은 학생들과 학부형들, 교원들이 검거되였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영옥은 그동안 산골짜기에 피신만 하고있던 자기가 너무도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해올랐다.

지난번에 자기가 주동인물의 하나로 되여있던 동맹휴학이 실패한 이후 다시 일어난 이 시위야말로 실패해서는 안될것이라고 걱정이 되였으나 그 와중에 뛰여들지 못하고 외토리가 된것을 생각했을 때 그는 안타까와 견딜수가 없었다.

이윽고 영옥은 식모와 작별을 하고 밖으로 휙 나왔다.

이미 시내에 들어왔으니 촌녀자의 복색이 도리여 부자연스럽고 눈에 띄기 쉽다고 생각한 그는 로파의 옷을 벗고 자기가 입었던 옷차림으로 나선것이였다.

그는 역시 좁은 골목과 뒤골목을 골라 살피며 통근자들과 학생들틈에 끼여 동대문까지 바삐 걸어왔다.

영옥은 동대문을 지나 자기 집이 있는 골목을 향하여 빨리 걸었다.

자기 집이 뾰주름히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그의 가슴은 더욱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집이 멀지 않은 지점에까지 와서 잠간 사방을 살피였다. 별로 이상이 없는것 같아보이자 그는 바삐 자기 집 대문앞을 향하여 걸어갔다.

그러나 웬 일인가? 대문은 밖으로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있었고 대문기둥우에는 자기 아버지의 문패대신에 딴 사람의 문패가 붙어있었다.

영옥은 실로 앞길이 캄캄하였다.

그동안 자기네 집이 이렇게 쉽게도 남의 손에 넘어가버릴줄은 몰랐던것이였다.

영옥은 두눈이 갑자기 흐릿해지며 서럽고 분한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올랐다.

그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면서 자기 집이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찾아갈 방도를 생각해보았다.

영옥은 자기네 세대가 속해있던 《국민반》 반장녀인을 찾아가보았다.

그는 영옥이 어머니와 평소에 친하게 지냈고 또 지난날 그의 집 신세를 진 일이 있는 녀자였다. 그러니 혹시 어머니가 이사를 떠나면서 이 녀자에게 무슨 부탁이라도 하고 갔을것만 같았던것이다.

반장녀인은 영옥이를 보자 깜짝 놀라면서 종이쪽지를 하나 내주었다.

《영옥아, 부득이 이사를 간다. 문화동 55반 김만국이를 찾아가서 물어라.》

어머니의 필적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우리 집이 언제 이사갔어요?》

《바루 그저께야.》

《어머님 다리는 어때요?》

《겨우 쌍지팽이 짚고 뒤간출입을 할라말라 하는 판에 그 못된 고리대금업자놈들에게 집을 빼앗기게 되고 원…》

그 녀자는 어두운 얼굴로 동정을 금치 못하였다.

영옥은 더 머물러있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리구 아무에게도 이 주소는 가르쳐주지 마세요. 네?》 하고 부탁하였다.

《아따, 념려마! 다 큰 처녀가 못된 놈들때문에 집에 있지도 못하고… 원… 그러나 이제 집에 가면 괜찮을거야. 그놈들이 어디로 이사갔는지 아나 뭐… 아직 퇴거두 안 떼여갔으니… 아예 퇴거는 떼가지 말구 그대로 두라구.》

《네, 감사합니다.》

영옥은 그 녀자와 헤여진 다음 거리로 나와 문화동쪽을 향하여 발길을 빨리 옮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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