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을 하고

1

 

우이동 산골짜기의 밤은 여우우는 소리와 함께 깊어만 갔다.

침침한 등잔불마저 꺼버리여 캄캄하기 짝이 없는 방안 한쪽구석에 눈을 감고 누워서 잠을 이루려 애썼으나 잠은 종시 오지 않고 정신만 새록새록해지는 영옥은 자기의 앞일이 생각할수록 막연하기만 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쓸쓸한 산골짜기 외딴집에 피신해있을수 없는 자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치밀어올라오자 영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그는 오늘 류달리도 초조하고 조바심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외딴집이라고는 하지만 돌연 예고없이 나타나 솔가리나무동을 로인에게 지워가지고 내려가던 동회서기와 부역을 시키러 오는 반장, 솔가리나무도 못하게 으르렁대러 오는 산림경찰들의 출입이 없지 않았고 그자들의 눈에 결국 띄우고만 영옥은 이제는 불안하고 초조해서 더 있을래야 있을수도 없었다.

그자들은 영옥을 발견할 때마다 수상한듯이 색안경을 끼고 파고들었다.

오늘도 아침일찍 동회서기녀석이 올라왔을 때 그놈은 영옥이를 노려보며 따지고 물었던것이였다.

《여보 늙은이! 저건 누구야?》

《그게 내 딸년이라우.》

《뭐? 늙은이가 언제 딸이 있었어?》

《미아리 살 때 시집을 보낸 딸인데 아, 글쎄 요새 못된 옴을 올라왔다우. 없는 친정에 오면 병이 낫는지 원…》

《뭐? 옴? 어서 보내. 재수없어, 우리 산골마을에 옴이 퍼지겠구만.》

《아이구 나리두… 외딴집에 와있는데 무슨 옴이 퍼집니까. 그렇지만 곧 보내겠수. 아무리 딸자식이지만 출가외인이라구 놔둬봤자 죽 한그릇이라두 손해나지 별수 있수!》

주인할머니가 능청스럽게도 수다를 부려 감쪽같이 그놈을 속여넘겨 무사하긴 했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이제는 더 이 집에 머물러있을수 없을것 같았다.

물론 자기 신변이 위험한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이 집 로인내외가 자기때문에 큰 화를 입게 될 일을 생각하면 너무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이였다.

영옥은 이제는 주인로파를 자기 집에 다시 심부름을 보낼수도 없게 되였다.

그것은 벌써 여러날째 주인로파가 병이 나서 앓아누워있었기때문이다.

이제는 결국 적극적인 모험을 할수밖에는 없다고 생각되였다.

밤은 얼마나 깊었는지 문짝이 희끄무레해올랐다.

영옥은 답답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방문을 가만히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제법 이지러진 달이 동쪽산우에서 떠올라왔다.

몹시 밝게 산골짜기를 비쳐주었다.

영옥은 사립문기둥에 우두커니 기대여서서 이지러진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달아! 너는 다 알겠지? 속시원하게 말하여주렴!》

영옥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숨지었다.

그의 눈앞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홍선생 그리고 한선생, 조선희, 백인자…

영옥은 그 많은 얼굴들이 자기 눈앞에 어른거려 견딜수 없었고 가슴이 설레여 참을수 없었다.

영옥은 당장 이 외딴집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가 집에도 가보고싶었고 또 한선생, 조선희, 백인자를 만나 홍선생의 소식도 알고싶었다. 아니, 바로 자하문밖으로 나가보면 홍선생이 출옥했는지 어찌되였는지 단번에 알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 어떻게 갈것인가? 시민증도 신분증도 없는 자기가 시외에서 시내까지 어떻게 무사히 들어갈수 있을것인가?

영옥은 곰곰히 생각하며 자기 머리로 지혜를 짜보았다.

그는 드디여 한가지 꾀를 생각했다.

그것은 주인로파의 옷을 빌려입고 그의 시민증을 가지고 변장한 차림새로 시내로 들어가는것이였다.

그러나 영옥은 그것이 도중에서 발각되면 차라리 그대로 들어가다 걸리는것보다 더 곤경을 당할것도 같아 어쨌으면 좋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찬바람이 골짜기에서 불어치기 시작했다.

영옥은 그제야 자기 몸이 추운것을 깨닫고 다시 힘없는 발길을 돌려 방문을 가만히 열었다.

《아니, 왜 잠을 안 자구 그러우? 걱정말래두! 내 나으면 어련히 갔다오지 않으리.》

로파는 앓아누웠으면서도 걱정없는 어조로 영옥을 위로해주었다.

《할머니! 정말 고마운 말씀이지만 이제는 더 댁에 있을수 없어요. 래일 새벽 집에 좀 가봐야겠어요.》

《아니, 집엘? 안돼, 안돼.》

《괜찮아요. 새벽녘에 여기서 떠나가서 미아리고개만 무사히 지나면 이른아침에야 뭐 다른게 있을라구요!》

《글쎄, 그렇지만 누가 알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구…》

주인로파는 은근히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영옥은 새벽녘이 되자 자기의 갈래머리를 풀어 한데 뭉쳐매고 로파의 저고리와 치마를 빌려입고 머리에 수건을 푹 썼다.

그리고는 로파에게 보자기를 하나 빌려 거기에 시래기엮은것 두어단을 싸서 머리에 이고 로파의 고무신까지 신은채 팔짱을 끼고 외딴집을 나섰다.

그는 로파의 시민증도 빌리려 하였으나 그것은 암만해도 도중에서 자기의 본색이 탄로날 증거가 될수 있으므로 아무것도 갖지 않고 그대로 대담하게 나선것이였다.

그는 산골짜기를 빨리 걸어 평지로 내려섰다.

새벽바람은 몹시 차거웠건만 영옥은 긴장되여 추운줄도 몰랐다.

그는 논길과 밭길로 헤매다가 한참만에야 큰 신작로로 나섰다.

미아리고개에 이르렀을 때는 훤하게 날이 밝아왔다.

영옥은 해가 뜨자 어쩐지 겁이 나고 초조해졌다.

미아리고개를 넘어 돈암교를 향하여 내려오던 그는 갑자기 발길이 주춤해지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말았다.

돈암교길목에 행인을 가로막고 시민증과 도민증을 조사하고있는자들이 서있었기때문이였다.

영옥은 다리를 건너갈수가 없었으므로 눈치를 살피다가 그녀석들의 눈이 미처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 틈을 리용하여 얼른 왼쪽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재빨리 걷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에 인 시래기보자기로 보나 쓴 수건과 입은 치마저고리로 보나 고무신으로 보나 모든것이 촌녀인과 흡사하였다.

영옥은 앞과 옆을 이리저리 살피며 좁은 뒤골목으로 빠져 신설동 한숙경선생의 집골목까지 다달았다.

영옥은 그제야 약간 마음이 놓였다.

우선 집에 가기 전에 먼저 한숙경선생을 만나보면 홍선생소식도 대강 알것만 같았고 또 곤난한 경우에는 자기를 찾아오라고 한 한선생인것만큼 그를 보면 놀라며 반가와하리라고 생각되였던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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