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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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에서 전차를 내린 찬수는 마치 다정한 사이나 되는것처럼 곁에 바싹 따라오는 녀급 따리야와 동행하게 되였다.

어두운 밤길, 북악산허리의 호젓한 신작로를 밤늦게 다니기가 불안스럽던 따리야에게는 찬수와 오늘 밤 동행하게 된것이 퍽 다행으로 생각되였다.

《정말 오늘 밤은 마음놓고 집에 가게 됐어요. 이젠 선생님이 장치사에 계신줄 알았으니깐 밤늦게 가실 때는 저하구 동행하세요, 네?》

따리야는 제법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글쎄요, 시간이 늘 그렇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을겝니다.》

찬수의 대답은 따리야에게 퍽 섭섭하게 들리였다.

《그야 일부러 기다리시라구 할수야 있어요? 마침 시간이 오늘처럼 되면 말씀이죠.》

따리야는 상냥스럽게 말하더니 갑자기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이 혹시 마리야녀학교 선생님으로 계시지 않았어요?》 하고 궁금한듯이 물었다.

찬수는 이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벌써 이 녀자는 자기의 일을 어느 정도 잘 알고있는것이 틀림없다고 느껴졌기때문이다.

《그건 어떻게 아십니까?》

《왜 그걸 몰라요. 마리야녀학교 선생님이구 미술가선생님이신분이 자하문밖에 한분 산다는것은 자하문밖에서는 다들 잘 아는걸요 뭘!》

찬수는 이 말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저두 사실은 선생님이 학교에 오시기 직전까지 마리야녀학교에 다녔어요!》

찬수는 또다시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니, 그럼 올봄에 졸업했습니까?》

《아이유, 선생님두… 졸업할 팔자면 캬바레에 다녀요?》

《그럼 퇴학을 했습니까?》

《퇴학을 했나요 뭐, 퇴학을 당했지요.》

《왜?》

《결국은 학비를 댈수가 없었어요.》

《…》

찬수는 어느 틈에 기분이 우울해지고말았다.

《그래 캬바레에 나온것은 결국 생활문제때문이요?》

《간단히 말하면 그래요. 제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나온 뒤 한달동안이나 직업을 구했어요. 한숙경선생님의 소개로 어떤 회사에 취직했었어요. 그러나 그 회사가 얼마 안 가서 망해버렸어요. 집안형편은 곤난하고 어떻게 할수 있어야죠. 나보다 한학년우에 다니다가 퇴학을 당하고 캬바레에 나간 아이의 권고도 있고 해서 어쩔수없이 그만 나갔어요. 집에는 아버님이 계시지만 실직자로 병들어계시구 학교에 다니는 어린 동생은 둘이나 되고…》

따리야는 캬바레에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된 딱한 사정을 설명하기에 애를 썼다.

《그래 한숙경선생이 캬바레에 나간 사실을 압니까?》

《모르실거예요. 아시면 물론 저를 욕하실거예요. 혹시 타락이나 했을가 하고… 그렇지만 캬바레에 다닌다구 다 타락하게 되겠어요?》

《…》

찬수는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알수 없어서 묵묵히 걷기만 했다.

《그러나 결국 잘못 생각했어요. 캬바레라구 그렇게 경기가 좋은건 아니예요. 당번 한번 돌아오자면 까마득해요. 조그만 캬바레에 녀급이 40명이나 되니까요. 40명가운데는 생활난으로 나온 가정부인도 10여명이나 돼요. 대학을 나왔다는 녀자도 5~6명이나 되고 나처럼 중도퇴학짜리는 절반은 될거예요. 정말 별별 녀자들이 다 있어요. 다 따져놓고보면 집안생활들이 곤난해서 어쩔수없이 나온 녀자들이 대부분이예요.》

따리야의 말에 찬수는 잠간동안 말이 없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리유여하를 불문하고 좋지 못한 직업입니다. 되도록 빨리 다른 직업을 구하십쇼.》

찬수는 이렇게 말했을뿐 그에게 별다른 직업을 소개해줄 사교적인 수완이 없는 자기라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낄수 있었다.

어느 틈에 그들은 자하문고개가 보이는 북악산 산허리 신작로로 굽이돌았다.

따리야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선생님이 형무소에서 고생하신것두 자하문밖에서는 잘 알고있어요. 자하문밖뿐아니라 서울시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만큼 신문에 여러번 났으니까요!》

찬수는 잠간동안 할 말이 없었다.

세상은 넓은듯 하면서도 이렇게 좁은것인가 생각되자 자기가 미술장치사에 취직하면서 《남평》이라고 변성명을 한것이 결국 얼마 안 가서 탄로될것만 같아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본명이 드러난다치더라도 겁날것은 조금도 없다고 생각되였으나 그래도 자기딴엔 예술가적량심을 가졌다고 자처하는 자기로서 예술을 결국 저속한 상품으로 팔지 않을수 없는 미술장치사에 취직하게 된 사실은 마치 이 처녀가 자기 본명을 감추고 따리야란 이름으로 캬바레에 취직하고있는것과 그 본질에 있어서 무엇이 다를것인가?

오늘날 이 땅의 현실은 자기의 예술적기량을 발휘해서 그림을 맘대로 그리지 못하게 할뿐만아니라 당장 기아선상에서 굶주려 죽게 만들고있지 않는가!

예쁘고 순진스럽고 상냥해보이는 이 처녀로 하여금 학원에서 축출하여 캬바레의 녀급으로까지 전락하도록 만든 이 현실이 새삼스럽게 증오스럽고 분격이 치솟자 찬수는 어느덧 따리야에 대한 일종의 동정심과 측은한 생각이 북받쳐올라왔다.

아울러 그는 그 언젠가 비밀리에 북의 라지오방송을 듣던 일이 회상되였다.

그것은 북에 있는 화가들의 행복한 생활이며 젊은 남녀학생들의 자유스러운 학창생활에 대한 보도였다.

북의 미술가들은 국가적우대를 받으며 창작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고있을뿐만아니라 이미 그들의 미술작품들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각국에 순회전시되여 세계화단을 놀라게 하고있다는 사실과 아울러 청년남녀학생들이 국가적배려에 의하여 자기 맘대로 학창생활을 할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사실들을 남에서 자기가 목격하고 체험하고있는 사실들과 대비해볼 때 찬수는 더욱 기가 막히고 울분이 치솟았다.

어찌 한 나라 한 민족에게 있어서 이처럼 판이한 두 세계가 있을수 있는것인가? 언제면 이 두 세계를 이룬 경계선이 무너지고 북과 같이 행복한 사회가 될수 있는것인가?

찬수의 사색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까지 도달하였다.

그들은 어느덧 자하문고개까지 왔다.

벌써 밤은 깊어 자하문밖은 씻은듯 고요했다.

이윽고 찬수는 자기의 하숙이 있는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모퉁이에서 발길을 주춤하였다.

《자, 그럼 난 이리로 가야 됩니다.》

《전 세검정이예요. 어서, 그럼 안녕히 들어가세요.》

따리야는 상냥스럽게 인사를 했다.

《아니, 만일 도중에 재미없으면 내가 더 데려다주지!》

찬수는 발길을 주춤한채 그대로 서서 소박하고 인정미 풍기는 어조로 말했다.

《아니예요,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세요.》

따리야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물러섰다.

찬수는 따리야와 헤여진 뒤 혼자서 터벅터벅 하숙으로 돌아왔다.

캄캄한 하숙방 문을 드르렁 열고 남포등에 불을 켰으나 방안은 몹시 쓸쓸하고 적막하였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안식처이며 창작실인것을 생각했을 때 비위에 맞지 않는 미술장치사의 편리를 위하여 시내로 하숙을 옮긴다는것이 무모한짓이나 아닌가싶기도 했다.

이윽고 안방에서 할머니가 미닫이를 열고 《아니, 저녁은 어떻게 하셨수?》 하고 친절히 묻는다.

《네, 먹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아까 요아래 순경녀석이 와서 선생님을 래일 당장 하숙에서 내보내라구 지랄을 하는구려. 선생님이 글쎄 무슨 죄가 있다구 그놈들이 그 지랄인지 몰라. 남이야 하숙을 하거나말거나 무슨 상관이 있어서 그 지랄들인지…》

할머니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찬수는 잠간동안 무엇을 생각하다가 《알겠습니다. 할머니에게 페를 끼치지 않도록 하죠.》 하고 명쾌히 말하였다.

《아니요, 선생님! 우리 집에서 나갈 생각을랑 마시우! 한집안식구처럼 정이 들었는데 선생님이 나가시면 서운해 어떡해!》

할머니는 걱정스럽게 말하더니 물러나갔다.

찬수는 책상을 주섬주섬 정리하고나서 속사첩을 꺼내놓고 밤이면 돌아와 그리던 그림들을 계속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형무소에서 나온 이후 그동안 많은 그림들을 속사첩에 그려넣었다.

서대문경찰서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나오던 영옥이의 형상이며 선희, 인자의 얼굴이며 한숙경, 지선생, 오변호사의 형상이며 형무소 감방생활에서 취재한 차동무, 정돌의 얼굴들이며 공판정내 방청석의 광경 그리고 공판정에서 검사놈과 맞서서 꺾이지 않던 자기의 자화상들을 그려넣었던것이였다.

그는 오늘 별장이 있는 산골에서 본 촌녀인들과 어린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이며 미아리고개의 빈민굴들에 대한 인상이 또렷이 남아있었으므로 속사첩을 번지고 붓을 달리여 그것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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