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 직

9

 

녀급들은 윤산과 최강의 곁에는 둘씩셋씩 포개여앉아서 애교를 떨며 종알거리였으나 찬수의 곁에 앉아 이야기를 하려드는 녀급은 하나도 없었다.

찬수는 그것이 섭섭하다거나 녀급들에게 어떤 모욕을 당하는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윽고 당번 녀급이 술과 안주를 내왔다.

녀급들은 와아 몰려들어 저희들이 먼저 들이마시고 안주를 먹기 시작했다.

《아니, 이거 어디서 거지떼가 왔나? 손님은 마시지두 않았는데 누가 다 마셨어?》

최강이가 쓴 소리를 했다.

《아니, 돈 잘 버는 미술가량반이 뭘 그렇게 고림보 소리를 허시유?》

당번 녀급이 눈웃음을 치며 애교를 떨더니 어느 틈에 또 술과 안주를 내왔다.

어떤 탁자에서는 술병들이 넘어져 술이 흐르고 안주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깨여지며 싸움이 벌어졌다.

그바람에 그 탁자에 앉았던 녀급들이 몰려나와 이 탁자 저 탁자로 흩어져가버렸다.

이윽고 찬수의 곁으로 어떤 녀급 하나가 옮겨와 앉았다.

두눈은 쌍까풀이 졌고 코날은 오뚝하고 입술은 얄팍하고 얼굴이 갸름한것이 모여앉은 녀급들가운데 제일 미끈하게 보였다.

그는 싸움이 벌어진 탁자에 앉았다가 피해나온 모양인지 잠시동안은 기분이 음울하였으나 이윽고 찬수의 얼굴을 옆으로 한참동안 자세히 살펴보더니 《선생님댁이 자하문밖 아니세요?》 하고 방그레 웃으며 물었다.

《네, 어떻게 아십니까?》

찬수는 무의식중 태연스럽게 말했으나 이 녀급이 자기의 최근 래력에 대하여 혹시 잘 알고있는 녀자나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저두 자하문밖에 살아요. 이따금 자하문고개에서 또 효자동 전차속에서 선생님을 많이 뵈웠어요. 아마 선생님은 기억이 없으시겠지요.》

녀급은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찬수는 사실 기억이 없었다. 자하문밖에서 마리야녀학교에 통근할 때 많은 남녀통근자들과 한전차에 탔고 갈 때 올 때 늘 자주 만난 사람이 없지도 않았지만 이 녀자의 인상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던것이다.

《있다가 댁에 가실 때 저하구 함께 가세요. 네?》

녀급이 이런 말을 하자 최강이가 갑자기 《얘, 얘, 따리야야! 있다 택시 태워줄테니 념려마!》 하고 호기를 뽐내였다.

찬수는 최강의 수작이 불쾌하였다.

《얘, 따리야야! 이리 좀 오너라. 할 말 있다!》

최강이는 찬수곁에 앉은 녀급을 불렀다.

그러나 따리야는 최강이곁으로 갈 생각은 않고 벌떡 일어나 카운터쪽으로 가버리고 어떤 딴 녀급 하나가 그 자리에 와서 앉았다.

《얘, 메리야! 이리 좀 오려무나!》

최강이는 또 찬수곁에 앉은 녀급을 불렀다.

그러나 메리 역시 들은둥만둥 다른 탁자로 옮겨가버리고말았다.

《아니, 너희들은 내 돈이 싫으냐?》

최강은 벌떡 일어나더니 카운터쪽으로 가서 따리야를 끌고 돌아와 자기 자리곁에 앉히였다.

《자, 가만히 앉아있어! 내 있다 택시 태워줄께!》

최강은 다시 호기를 부리며 술잔을 들어 홀짝 들이마시고는 윤산에게 권한다.

《자, 여보게 한잔 들게! 이 사람, 자넨 왜 갑자기 얌전해질려구 그러나? 하하하…》

최강은 너털웃음을 웃고나서 술병을 들어 찬수앞에 놓인 술잔에 찰찰 넘도록 따라주며 《자, 남선생! 어서 드시오. 어찌 기분이 명랑치못하신것 같군!》 하고 약간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찬수는 최강이가 하는 수작이 처음부터 눈에 거슬리였으나 이런 장소에서 내색을 보일수도 없어 꾹 참고만 있었다.

《여보게 윤군! 난 도대체 비위에 맞지 않아! 제란 놈이 무슨 큰 대가라고 우리헌테 빼느냐 말야! 되지 않게 들은 풍월은 있어서 리알리즘을 말하는 모양인데… 그게 못난 수작이란 말야! 슐레알리즘이 한국화단의 주류란걸 모르는 모양이야! 라체화와 춘화도를 싫어하면 볼일 다 봤단 말야! 하하하…》

최강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떠벌이였다.

찬수는 이 소리가 자기를 빗대놓고 한 소리라고 느껴지자 갑자기 흥분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당장 일어나 그 자리를 나와버리고도싶고 또 점잖게 꾸짖고도 싶었으나 이미 최강이가 술에 만취되였고 장소가 캬바레였으므로 흥분된 감정을 참을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였다.

최강은 또 윤산에게 술을 권하더니 고개를 비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떴다 하며 또다시 떠벌이였다.

《글쎄, 여보게 이 사람! 자네는 래일부터 벽화를 그리게 됐으니깐 흡족하겠지, 그러나 나는 뭐냐 말야? 도대체 용세가 틀렸어! 그리구싶다는 놈은 그만두라구 하구… 예술가적량심을 운운하며 쪼를 빼는 놈에게는 나가 그려달라구 애원하구… 그래 실력이 있으면 쥐뿔이나 얼마나 있다는거야?》

최강은 찬수가 입사함으로써 자기가 맡아할 일을 빼앗긴듯 한 일종의 직업적시기에서 기분이 상했을뿐아니라 또 미술리론에서도 반대의 립장이였으므로 그를 증오하기 시작한것이였다. 그래서 술김에 얼렁뚱땅하고 윤산을 통하여 측공법을 써서 찬수의 기를 꺾어 눌러보려 하는것이였다.

찬수는 몹시 불쾌했다. 최강이가 내는 술을 얻어먹고 앉아서 그자에게 모욕을 당한것이 더욱 화가 치밀어올라왔으므로 벌떡 일어나 나와버리고말았다.

찬수는 울분을 참지 못한채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서는 어린 숙직화공 하나가 혼자 남아서 속사첩에 무슨 그림인가 그리고있었다.

찬수는 자기 작업장인 2층으로 올라가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아, 선생님! 지금 댁에 가시렵니까?》

소년화공은 찬수를 보며 놀란 표정을 하였다.

《음, 가야겠네!》

《늦었는데 여기서 주무시구 내 스케치뿍(속사첩)이나 좀 봐주세요!》

소년화공은 자기 속사첩을 찬수에게 내보였다.

윤산과 최강이가 있건만 이 어린 화공의 눈엔 찬수의 실력이 제일 나아보였기때문인지 그에게서 지도를 받으려 하는것이였다.

찬수는 어린 화공의 간청을 물리칠수가 없어서 속사첩을 받아 한장한장 넘기며 들여다보았다.

이것저것 여러가지가 속사되여있었다. 그중에서 라체속사도 여러장 눈에 띄였다.

《그동안 누구에게 지도받았나?》

《지도받을데가 있나요. 윤선생이나 최선생헌테 더러 봐달라구 했지만…》

어린 화공은 말끝을 흐려버리고말았다.

비록 나이는 20살미만의 어린 화공이였으나 그의 속사첩을 보아서 앞으로 발전성이 있다고 생각된 찬수는 그를 소홀히 대할수는 없었다.

《그래, 그림공부는 언제부터 했어?》

《뭐, 했나요. 그저 학교다니면서 배운것뿐이죠.》

《학교는?》

《중학교에 다니다가 학비관계로 퇴학했어요.》

《여기에 온지는 오래됐나?》

《학교에서 퇴학하고 바루 간판점에 취직했었죠. 여기 온것은 1년밖에 안돼요.》

《그래 앞으로 미술가가 되고싶은 생각이 있지?》

《있으면 뭘 해요. 이런데서 간판쟁이노릇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되죠 뭐!》

어린 화공은 락망섞인 어조로 말했다.

《락망할 필요는 없어! 한번 결심했으면 꼭 성공할 때까지 눈부신 노력을 해야지.》

찬수는 어린 화공을 격려해주었다. 그는 이 어린 화공이 학비관계로 제대로 공부를 못하고 간판쟁이견습공이 된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자기가 그림을 배우기 위하여 일본에서 고학하던 일이 회상되였다.

이러한 불우한 소년을 잘 지도하고 격려하여 육성시킬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찬수는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이 소년과 같이 불우한 과거를 가진 자기와 같은 사람이라고 느끼여졌다.

찬수는 소년의 속사첩을 차근차근 뒤적이며 칭찬을 하면서도 여러가지로 친절하게 주의를 주었다.

《… 그런데 아직 배우는 사람이 이런 라체화에 흥미를 느껴서는 안돼. 예술이란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똑바루 반영해야 하는거야.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확고한 사상적립장에 서지 않으면 안되는거야. 지금 이남의 미술가들은 거의 대부분이 뭐가 뭔지 알수 없는 소위 초현실파의 그림을 그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라체화를 그려야만 화가로 행세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런 본을 따서는 안돼. 현실을 어디까지나 똑바루 보고 세밀히 보고 진실하게 그리는 법을 배워야 해! 물론 그것이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에 있어 어려운 일이야. 어쨌든 내가 자주 봐줄테니 열심히 배우라구… 응?》

찬수가 이렇게 말하고있을 때 윤산이와 최강이가 곤드레만드레가 되여 숙직실로 들어오고있었다.

《오오, 너 남선생헌테 스케치 지도받니? 오냐, 부지런히 배워야지… 그러나 여기는 학교는 아니다. 상업미술을 그려야 밥을 먹는단 말야! 라체화를 그려야 밥을 먹는단 말야! 알았니? 이녀석아! 하하하…》

최강이는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숙직실바닥에 쓰러져버리고 윤산이는 문턱에 쓰러져버리였다.

찬수는 고주가 된 그들과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으므로 자기 가방을 들고 밖으로 휙 나와버리였다.

《선생님! 함께 가세요.》

찬수의 등뒤에서 녀자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그는 아까 자하문밖에 산다는 녀급 따리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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