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녀학교

7

 

찬수에 대한 공격은 한참동안 맹렬히 전개되였다. 누구 하나 찬수편에 서서 찬수를 옹호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김치선은 계속 찬수를 공격하였다.

《에- 홍선생은 어째서 또 내가 특별히 전화로까지 지시를 했는데두 불구하고 오영애의 학부형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그 사람의 분격을 일으키게 했느냐 말이요? 이것은 결국 홍선생이 교장의 지시에 복종치 않고 자기의 딴 사상을 가지고 학부형을 선동한것으로밖에는 볼수 없는 일이요.》

김치선의 공격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성오도 성을 내며 또다시 입을 벌리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홍선생의 모든 행동이 우리 학교 교원으로서 적당치 않다고 인정되기때문에 사직할것을 본인에게 요청합니다. 다른 선생들, 의견 말하시오.》

윤성오는 모여앉은 간부교원들을 쭉 한번 둘러보았다.

《그렇습니다. 본인의 장래를 위해서도 그게 좋은 방법이죠.》

《우선 어제 밤 사태에 대해 학교로서의 위신을 세워야 할테니깐 그 방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두 동감입니다. 홍선생은 예술가로서는 몰라도 우리 학교의 교원으로서는 좀 부족합니다.》

지금까지 별로 말이 없이 우두커니 앉았던 두세명의 간부교원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윤성오의 뒤를 이어 이렇게 맞장구를 치고나섰다.

찬수는 이 순간 흥분된 감정을 참을수 없었다. 그는 너무도 심한 모욕을 당하였다고 느껴지자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좋습니다. 사직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사람이며 이 학교는 조선사람의 딸들을 가르치는 학교란것을 잊지 마십시오. 연회에서 술에 취해 나온 미군장교가 순진한 우리 녀학생을 끌어안아 차에 태워가려는것을 보고도, 아니 그 녀학생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어찌 가만히 있을수 있겠습니까? 나는 민족적량심에서, 교육자적량심에서 도저히 그대로 볼수 없었던것입니다. 나는 그 학생이 누구인가를 알려고 할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위험한 순간에 뛰여가서 끌어내리고난 뒤에야 비로소 그 학생이 영옥인것을 알게 된것이고 미군장교에 대한 폭행을 운운하지만, 사실은 내게 폭행을 가하려던 미군장교가 내가 피하는 바람에 제풀에 넘어졌고 또 내게 권총사격까지 한것입니다. 사건전말은 이런것입니다.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너무 외곡하지 마시고 영옥이에 대해서 내가 불순한 생각을 품었다는 중상적인 언사들은 취소해주십시오. 그것은 나의 불명예인 동시에 영옥이에 대한 불명예로도 되는것입니다.》

찬수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김치선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에- 그럼 긴급회의는 이것으로 그칩시다.》 하고 페회를 선언했고 모여앉았던 간부교원들은 모두 일어나 흩어져나가버리였다.

찬수는 더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잠간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밖으로 나오려 했다.

《홍선생, 잠간 좀 앉아계시오.》

김치선은 갑자기 친절한 어조로 찬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오늘 긴급회의를 내가 소집한것으로 오해는 마시오. 이 긴급회의는 리사회의 지시로 열린것이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 홍선생사이에 무슨 감정이 있겠소. 나는 홍선생이 사직하고 나가는데 대해서 누구보다도 섭섭하오. 부디 나에 대해서 오해는 마시오.》

찬수는 김치선의 등치고 배만지는 수작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찬수는 더 서서 김치선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였으므로 휙 밖으로 나와버렸다.

복도를 걷는 찬수의 두다리는 부들부들 떨리였고 두주먹은 자기도 모르게 불끈 쥐여졌다.

그는 본관을 나와 미술교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미술교실이였다.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담배를 피워문 찬수는 얼굴이 홧홧 달아올라왔으므로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였다. 초겨울의 찬 공기가 량볼을 스치건만 그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담배연기를 길게 빨았다가 다시 푸- 하고 내뿜었다.

운동장에서는 체육선생 한숙경이 학생들을 거느리고 륙상경기훈련을 하고있었다.

20여년동안이나 이 녀학교에 근무하면서도 간부교원축에 들지 못하는 한숙경에 대하여 찬수는 새삼스럽게 동정이 갔고 미더운 생각이 솟아올랐다.

만일 한숙경과 같이 옳은 립장에서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교원이 단 한사람이라도 간부교원회의에 참가했었더라면 오늘 회의에서 반드시 자기를 옹호해나섰을것이고 교장이하 간부교원들을 공박했을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교활한 교장 김치선은 한숙경을 제외시킨것이였다.

찬수는 그동안 여러차례 전 직원이 참가하는 직원회의 같은데서 늘 교장이나 교무주임과 의견이 대립되던 한숙경을 다시한번 회상하지 않을수 없었다.

바로 얼마전의 일이였다. 학교설립 60년 기념사업에 대한 토의가 벌어지던 직원회의석상에서 교장 김치선이 기념사업비를 학부형들에게 추가부담시킬데 대하여 력설하면서 가사실습비를 특별히 강조하여 지시했을 때 한숙경만은 반대해나섰던것이다.

뿐만아니라 기념음악회에 출연할 학생으로 선발된 아이들이 대부분 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람들의 딸들만으로 구성된데 대하여 한숙경은 반대의견을 말하면서 실력본위로 구성하자고 제기해나섰던것이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한숙경의 주장은 고군분투로 그쳐 참패를 당하고말았던것이였다.

김치선은 한숙경에 대해서 로골적인 박해를 가할수 없었고 또 배제할수도 없었다.

그것은 한숙경이가 많은 학부형들에게 지지를 받고있고 또 학생들의 교육에 다른 어느 교원보다도 열성적이여서 학생들이 그를 많이 따른탓에 결국 학생들을 움직이는 힘이 누구보다도 컸기때문이였다.

한숙경은 20여년간을 하루같이 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결근이라고는 거의 없었으며 아침엔 제일 일찍 출근했고 저녁때는 제일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였다.

찬수는 운동장에 선 한숙경을 한참 내다보다가 얼른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교실 책상우의 물건들을 주섬주섬 걷고 서랍에서 자기 물건들을 정리하여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그는 가방을 들고 다시 본관으로 돌아와 교원실로 들어갔다.

교원실에 있는 자기 책상마저 정리하려 함이였다.

넓은 교원실에는 아까 교장실에서 자기를 공격하고 중상하던 최보배가 혼자 앉아서 무엇인가 쓰고있다가 찬수가 책상을 정리하는 모양을 보자 본둥만둥 외면을 하면서 휙 밖으로 나가버리였다.

이때 누구인가 교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였다. 한숙경이였다.

《선생님, 전람회장은 다됐지요?》

《네.》

《도와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별말씀을…》

찬수는 태연하게 말하려 했으나 그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비장하게 울리였고 그가 가방안에 물건을 챙기는것이 한숙경이에게는 이상스럽게 보이였다.

《아니, 그런데 웬 일이세요? 어디 갑자기 편찮으세요? 안색이 좋지 않으시니…》

《…》

찬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으므로 잠간동안 아무 말이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있다가 가방을 들고 일어서서 모자를 쓰더니 무게있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한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아니 갑자기…》

《네, 난 방금 면직처분을 당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예요, 네?》

한숙경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흥분이 한꺼번에 흘렀다.

《나는 한선생님을 존경합니다. 끝까지 학생들의 편에 서주십시오!》

찬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안됩니다. 무엇때문에… 나갈려면 저희들이 나가야지, 힝!》

한숙경은 정의감과 분격에 불타오르는 얼굴로 찬수를 바라보며 어느 틈에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자, 또다시 만나뵐 때가 있겠죠. 부디 그때까지…》

찬수는 뜻깊은 말 한마디를 남기고 한숙경과 헤여져 교원실을 나와 복도를 뚜벅뚜벅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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