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 직

7

 

그들은 별장을 나와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차는 천천히 비탈길로 미끄러졌다.

소나무사이로 뾰주름히 보이는 펑퍼짐한 골짜기 외딴집쪽을 향하여 좁은 길이 한가닥 휘여져 돌아간것이 찬수의 시선을 류달리 끌었다.

바로 그 외딴집에 영옥이가 피신하고있건만 찬수는 그것을 알리 없었다.

여기저기 소나무사이에서 어린아이들과 수건쓴 아낙네들이 갈퀴로 락엽을 긁고있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어느 지점에선가 거리는 그렇게 가깝지 않았으나 차안에서도 넉넉히 보일만 한 거리에서 어떤 솔밭사이로 수건을 푹 눌러쓰고 몸에 잘 맞지 않는 다 해진 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인 하나가 솔가리를 긁다가 슬그머니 얼굴을 돌리며 돌아서는것이 눈에 띄였다.

그러나 찬수는 그저 무심코 그 녀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말았다.

그 녀인이 바로 영옥이였건만 찬수는 그것을 알리 없었고 차에 찬수가 탔건만 영옥이 또한 그것을 알리 없었다.

차는 어느덧 산모퉁이를 돌고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좌석등받이에 몸을 기대인 찬수는 오늘 이 별장이 있는 산골에서 판이한 두개의 세계를 발견하였다고 느껴졌다.

부화한 미국식생활양식에 젖어 용모와 음성까지 조선녀성과 같지 않을뿐아니라 색정적인 농화장에 사치스러운 달린옷을 입고 꾀꼬리처럼 노래만 하는 박춘식의 딸 미라의 세계와 그 반대로 몸에도 맞지 않는 다 해진 옷을 입고 땔나무를 긁는 소박한 촌녀인의 세계! 그것은 확실히 찬수의 눈에 판이한 두개의 세계로 보였던것이였다.

차가 평지로 내려설무렵 찬수는 감았던 눈을 스르르 떴다.

맨발을 벗은 녀인들, 살이 꾸역꾸역 나오는 다 해진 홑옷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솔가리나무동을 이고 지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박박 긁어가고 뜯어간 밭두덩과 논두둑에서 손을 홀홀 불며 갈퀴질을 하고있는 어린아이들을 보았을 때, 누런 시래기를 보퉁이에 싸서 머리에 이고 짝짝이 고무신을 끌면서 어린아이를 업고 지나가는 녀인들을 보았을 때 찬수의 기분은 오늘따라 더한층 우울해졌다.

마을앞 동회 정문앞으로 차가 지나칠 때 여러 어린아이들과 녀인들이 솔가리나무단을 표독스럽게 생긴 산림경찰에게 빼앗기고 우는 꼴을 본 찬수는 분격이 치솟아올라와 견딜수가 없었다.

차는 어느덧 미아리고개를 달리고있었다.

미아리고개에는 더 많은 궤짝집과 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너무나 말쑥하게도 땔나무가 한개비도 보이지 않는 부엌들이 들여다보였다.

누데기도 없어서 포대쪽으로 허리를 두른 녀자들이 궤짝집으로 들랑거리고있었다.

찬수는 선뜻 며칠전 자기가 형무소에서 차동무에게 부탁받은것을 전하려고 김만국을 찾아 문화동에 갔을 때 그곳 역시 이곳이나 마찬가지로 빈민굴이였던것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차는 어느 틈에 시가지로 들어와 달리였다.

이윽고 그들은 미술장치사로 돌아왔다.

찬수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오전에 그리다 놓아둔 풍경화를 계속 그리기 시작했다.

그 그림은 시내물이 잔잔히 흐르는 어떤 언덕배기에 두마리의 염소가 풀을 뜯고 수양버들이 멋들어지게 늘어진 시내가에서 로인 하나와 어린 소년이 나란히 앉아 한가로이 낚시질을 하는 그림이였다.

찬수는 자기가 그리는 이 그림이 어디서 주문을 맡아온 그림인지는 몰라도 이런 한가로운 풍경, 평화스러운 풍경은 아직 남조선현실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느라니 그것을 그리고있는 자기가 한심스럽게만 느껴졌다.

금방 별장에서 돌아오면서 차안에서 내다본 현실만 보더라도 자기가 그리고있는 이 그림은 얼마나 동떨어져있는것인가?

아무리 밥벌이를 하기 위하여 이런 곳에 취직은 했어도 그의 예술적량심으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그림을 그릴수가 없었다.

비록 이 그림에 자기의 본명이 아니라 남평이라는 변명한 서명을 한다치더라도 결국 예술가적량심을 속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감흥없는 그림을 계속 그릴수는 없다고 생각되였다.

찬수는 오늘 지용세가 주문맡은 벽화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붓을 던지고 담배 한대를 붙여물었다.

며칠전까지도 형무소안에서 차동무와 정돌이며 기타 많은 수감자들로부터 격려를 받던 자기, 공판정에서 수많은 학생들이며 학부형들의 지지와 성원속에서 그래도 자기딴엔 굳건히 검사놈과 맞서 싸우던 자기, 그러한 자기가 오늘 밥벌이를 위하여 이렇게까지 값없이 전락된것만 같아 부끄럽고 괴롭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영옥이와 선희며 인자며 한숙경선생이 자기가 이렇게까지 예술가의 량심을 떼여놓고 이런 밥벌이의 화공노릇을 하게 된것을 알게 된다면 이는 더 부끄럽고 창피한노릇이 아닌가?

앞으로 자기가 예술가라고 과연 고개를 버젓이 들고 그들을 떳떳이 대할수 있을것인가?

이런 생각에 기울어진 그는 마음이 더 답답해지고 침울해지기만 했다.

그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무심코 유리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로 유리창밖 처마를 마주댄 이웃집 2층실내가 또렷이 건너다보이였다.

20살전후의 젊은 녀자들이 우글우글 모여앉아 화장들을 하고있었다.

그곳은 바로 캬바레 《하와이》의 녀급대기실이며 화장실이였다.

찬수는 얼른 시선을 반대방향으로 돌리고말았다.

《홍선생!》

갑자기 자기 등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가방을 들고 아래층에서 올라온 지용세였다.

《내 방으로 좀 오십시오!》

지용세는 오늘따라 명랑해진 얼굴로 찬수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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