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 직

5

 

찬수는 다시 자기 작업장에 돌아와 그리던 화폭을 정리하고나서 작업복을 벗고 양복을 갈아입었다.

지용세는 찬수와 윤산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찬수는 이미 이런 곳에 취직한 이상 자기 비위에 맞는 그림만 그릴수는 없다고 생각되였으나 어떤자의 별장인지 벽화까지 그리려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상상해볼 때 어쩐지 기분이 좋지는 못했다.

결국 자기가 배운 미술이 유한계급의 호화로운 생활을 장식해주기 위한것인가고 생각되자 몹시 서글펐다.

지용세는 찬수와 윤산을 데리고 종로네거리에서 택시 한대를 잡아탔다.

《어딥니까?》

운전수가 물었다.

《우이동으로 갑시다.》

지용세가 방향을 알리자 택시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좌석등받이에 몸을 기댄 찬수는 좌우로 홱홱 지나치는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어느덧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번 벽화에 성공만 하면 우리 사가 앞으로 발전할수 있어. 시시한 간판그림 나부랭이 그려먹는것보다는 훨씬 보람있지.》

지용세는 찬수와 윤산을 격려해주었다.

그러나 찬수는 그 말이 그렇게 얼른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당장 생활이 절박한데서 어쩔수없이 화공으로라도 취직해온것이지만 아직 미술장치사의 장래발전에 대하여서까지 관심과 고려를 돌릴 여유는 갖지 못한 찬수였다.

그와 아울러 찬수는 일종의 자기 비애를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이미 자기는 코앞에 닥친 절박한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술가로서 전락의 길을 걷고있는것이 완연하다고 느껴졌기때문이다.

마리야녀학교 같은 부패한 교육기관에서 면직을 당했든 어쨌든간에 나왔고 또 별로 한 일은 없지만 반미분자로 몰려 형무소에까지 갔다왔고 많은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서 지지까지 받고있는 자기로서 또 경찰서 류치장과 형무소에서 많은 수감자들로부터 대담해지라는 격려를 받은 자기로서 자존심을 살리고 예술가적지위를 높일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할것이 아닌가?

그러나 찬수는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한것이 몹시 우울했다.

어느덧 택시는 미아리고개를 넘고 우이동으로 들어갔다.

택시는 한적하고 고요한 박춘식의 별장이 있는 산골짜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찌기 이런 곳에 와본 일이 없던 찬수는 택시안에서 내다보이는 자연풍경에 잠간동안 도취되였다.

이윽고 그들은 아담스러운 2층양옥집앞에서 택시를 세웠다.

마당에는 최신형고급자가용승용차가 한대 놓여있었고 집안에서는 둥당둥당 피아노소리와 함께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용세는 현관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이윽고 하녀가 나오자 지용세는 명함을 내주었다.

그들은 곧 하녀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들어갔다.

찬수는 일찌기 이런 호화스러운 응접실에 와본 일이 없었다.

마리야녀학교에 취직하던 날 교장 김치선의 방이 호화스럽다고 놀래였으나 이 응접실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것이였다.

과연 《국회》의원 박춘식이란 사람이 이렇게 화려한 별장까지 가지고있는가 생각되였을 때 찬수는 더욱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박춘식이에 대한 표상을 가지지 못한 찬수로서는 그 놀라움이 무리는 아니였다.

이윽고 안경을 낀 육중한 몸집을 가진 박춘식이가 응접실에 나타났다.

지용세는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윤산도 일어섰다. 찬수도 어쩔수없이 일어섰다.

《에- 수고들 했소, 어서들 앉아!》

박춘식은 반말을 하며 자기가 먼저 의자에 앉았다.

세사람도 따라서 의자에 앉았다.

《아주 한적하고 아담하고 좋은 장소에 지으셨습니다그려!》

지용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글쎄, 장소는 다들 좋다는데 나는 건물이 역시 마음에 흡족치 않아! 그래서 사실은 이 건물에다 좀 미술장치를 해야겠단 말야. 그래서 자네헌테 전화했던거야!》

박춘식은 담배를 꺼내여 세사람에게 권하고나서 다시 말을 계속 했다.

《그래, 자네들이 그림을 그리게 되나?》

박춘식은 찬수와 윤산을 바라보았다.

《네, 바루 이 두 화가가 그리게 됩니다. 과거 미술전람회에 입선된 사람들입니다.》

지용세가 소개하였다.

《음, 그야 실력없으면 대들지두 못하지. 그래 벽화를 그린 경험들이나 있는가?》

박춘식은 그들을 얕잡아보며 은근히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였다.

《그야 벽화에 경험이 없으면 오겠습니까? 간판과는 다른것이니까요.》

지용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찬수는 박춘식이가 사람을 깔보는것이 몹시 불쾌했지만 벽화에 경험이 없는 자기를 경험이 있다고 선전하는 지용세의 외교수완에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 자네들 생각에는 어떤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는가?》

박춘식은 세사람을 차례로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거야 령감께서 지정해주셔야죠.》

지용세도 빙긋이 웃었다.

《글쎄… 딴은 그렇지. 그래서 나두 좀 생각은 해봤는데… 사실은 미국량반들의 비위에 드는 그림이라야 돼.》

박춘식은 잠간 말을 끊었다가 다시 《금강산그림을 그릴수 있지? 아니야, 그건 재미가 좀 적어! 금강산이 지금 공산분자들의 손에 들어있으니 말야. 그저 사군자나 그릴가? 그러나 그건 또 너무 싱거워! 동물을 그리는것이 어떤가? 청룡, 황룡이 여의주를 서로 빼앗아물고 득천하려구 시새는 그림이 그럴법하데만… 그러나 미국사람들이 룡을 몰라. 미국사람들은 그저 춘화도나 라체화를 제일 좋아하는데… 그러나 원, 벽화에다 점잖지 못하게 그런걸 그릴수도 없고…》 하고 혼자서 중얼거리더니 어느덧 과단성을 보이며 《그러나 이 별장에 미국손님들이 많이 올테니깐 그 손님들의 비위를 맞출 그림을 그려야지!》 하고 분질러 말했다.

잠간동안 세사람은 묵묵히 앉아있었다.

《왜 말들 하지 않는가? 춘화도나 라체화를 그리기가 좀 거북해서 그렇겠지만 상관있나… 미국손님들을 표준해서 그리는것인데 그게 무슨 풍속괴란이 되진 않을거구… 하하하.》

박춘식은 껄껄 웃으며 어느덧 찬수에게로 시선을 옮기였다.

이 순간 찬수는 몹시 불쾌하였다.

미국놈에게 아첨하며 그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벽에다 춘화도와 라체화를 그려달라는 뻔뻔한 박춘식이가 너무도 비렬한 인간으로 보였기때문이다.

지용세는 찬수의 기분이 그러한것을 대강 눈치챘는지 《그런데 령감! 역시 별장벽화인만큼 점잖게 그리는게 어떻습니까? 가령 아까 말씀한 산수화나 사군자나 벽공을 향하여 득천하려는 청룡, 황룡이나…》 하고 말을 끊고는 빙긋이 웃으며 박춘식의 표정을 훑었다.

《아니야! 역시 내 하라는대로 그려주게!》

박춘식은 강경히 요구하고나서 벌떡 일어났다.

《자, 우선 실내를 한번 참고로 보지!》

지용세는 박춘식의 뒤를 따라섰다. 윤산도 찬수도 그뒤를 따랐다.

그들은 먼저 피아노소리가 나는 홀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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