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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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네거리 종각뒤에서 동쪽으로 뚫린 좁은 골목길에 캬바레, 빠, 선술집, 오뎅집, 내외주점, 랭면집, 다방, 복덕방, 전당포, 관상쟁이 간판들이 처마를 잇대여있는 풍경은 대낮부터 가히 볼만 한바가 없지 않았다.

벌써 낮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고리대금업자며 미군놈에게 이끌려 어디로엔가 따라가는 매춘부며 행인들의 우아래를 훑으며 바싹 붙어 따라가고 지나치는 소매치기며 아무에게나 찍자를 부리며 싸움하려 대드는 깡패, 부랑자, 사기군, 브로카(협잡을 기본으로 하는 장사군), 뚜쟁이들이 좁은 골목길을 오락가락하며 번잡스럽게 했다.

캬바레와 빠의 쓰레기통을 둘러싸고 어린 거지들이 울며 때리며 차며 싸움들을 한다.

그들은 서로 먼저 쓰레기통을 뒤적거려 귤껍질과 과일껍질을 골라 내려다가 싸움이 벌어진것이다.

큰 거지 한 녀석이 깡통을 들고 어디서 나타나더니 어린 거지들이 뒤적거려 찾아낸 귤껍질을 가로채여 덤벅덤벅 베여먹으며 슬금슬금 종각쪽으로 사라져버리는가 하면 해빛이 비치는 양지받이에는 머리가 어깨를 덮은 아편쟁이들이 펄썩 주저앉아서 옷자락을 뒤적거리며 이를 잡아죽이고있었다.

어떤 행인이 담배꽁초를 내버리고 지나가자 이를 잡던 그들은 서로 그것을 주어 빨으려고 뛰여간다.

먼저 주은자는 큰 승리나 한듯이 뻐끔뻐끔 빨아 연기를 삼키며 빙긋이 웃고는 제자리에 와앉는다.

아편쟁이들은 양지가 사라지자 다시 양지쪽을 찾아서 그옆으로 옮겨갔다.

려관거리로 통한 길모퉁이에 오색유리창을 끼운 캬바레 《하와이》가 있고 그곁으로는 처마를 나란히 하고 《현대미술장치사》란 간판이 붙은 2층목조건물이 눈에 띄였다.

이 건물 아래층은 문이 활짝 열렸고 마치 누구 집 차고나 비슷하게 넓은 세멘트바닥에는 채색과 뼁끼방울들이 떨어져 너저분했고 한쪽벽밑에는 채색그릇이며 뼁끼통들이 쭉 놓여있으며 또 한쪽벽밑에는 큰 간판들이며 화판들이 여러개 비스듬히 기대여져있었다.

리봉을 떼여버린 쪼골쪼골한 검정색중절모를 쓰고 뼁끼묻은 가죽잠바를 입은 30살가량 된 화공 하나가 길게 길러넘긴 머리에 검정실로 짠 그물모자를 쓰고 검정샤쯔에 파이프(물주리)를 문 화공 하나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각각 무슨 그림인지 화판을 세워놓고 붓을 움직이고있었다.

가죽잠바를 입은 화공은 최강이였고 검정샤쯔를 입은 화공은 윤산이였다.

《여보게 윤군!》

가죽잠바가 검정샤쯔를 불렀다.

《왜 그래?》

《그런데 새로 들어온 그 사람 말야! 어쩐지 좀 이상하지 않아?》

《왜? 뭐가?》

검정샤쯔가 궁금한듯이 되물었다.

《자기 성명두 똑똑히 말하지 않고 좀 거만하단 말야!》

《그야 우리보다 실력이 있어 그런게지!》

《아무리 실력이 있으면 뭘 해! 제나 내나 이런데 온 이상 무슨 화가로 행세하려구? 하하하…》

최강이가 너털웃음을 웃어제끼였다.

《좌우간 실력은 있어! 올라가보게. 그 사람은 그러니 소위 팔방미인이지. 동양화두 잘 그리더군! 8.15전에 일본서 입선된 사람이니 그만한 실력이 있겠지… 역시 예술이란 년조를 무시할수 없어!》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이런 상업미술방면으로 들어왔어? 예술가로서는 제나 나나 몰락이야!》

최강이가 중얼거렸다.

《어쨌든 우리 사로 봐서는 잘됐어. 단 한사람이라도 실력이 뛰여나야지, 어중이떠중이 엉터리들만 모아다두면 뭘 해!》

윤산이가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 멋도 모르고 이런데 들어왔지! 결국은 간판쟁이밖에 될게 없는데… 왜 그 사람 학교에라두 취직하지 않고 이런데 온담! 허기야 학교에 취직하는것이 그리 쉬운것 아니지만…》

최강이가 또 중얼거렸다.

《말말게. 학교이야긴… 미술교원노릇 하기두 여간 어려운게 아니야. 대구에서 온 내 친구 하나는 마리야녀학교에 취직했다가 단박 학생들의 배척을 받지 않았느냐 말야.》

윤산이가 말하자 최강이가 뒤를 이어 《아니, 저 사람두 그런 사람이나 아닌가?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배척을 받고 쫓겨나온…》 하고 의심스럽게 말했다.

《글쎄, 그러나 보아허니 학생들에게 배척받을 사람은 아니야. 아주 묵중하고 침착하고 예리해보이는것이 보통내기가 아니야.》

윤산이와 최강이가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고있을무렵 골목에서 작업장안으로 선뜻 들어오는 신사 하나가 있었다.

그는 40살가량 된 나이에 묵직해보이는 가방을 들었고 얼핏 보아 모자와 양복과 구두며 머리가 화가풍을 보이고있었다.

그는 이 미술장치사를 운영하는 운영위원장 지용세였다.

그는 아래층 작업장을 통과하여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그의 사무실이 있고 사무실곁에는 작업장이 있었다.

지용세는 그 작업장에서 그림을 그리고있는 어떤 화공 하나를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그 화공은 며칠전에 새로 채용한 화공 남평이였다.

남평이란 바로 홍찬수의 변명으로서 또 이곳에서는 그의 필명으로도 사용되군 하였다.

이곳 장치사에 망라된 동료들은 남평이의 래력을 알지 못했고 찬수 역시 자기 래력을 남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남평이 홍찬수란것을 아는 사람은 이 장치사의 책임자인 지용세 한사람뿐이였다.

지용세는 바로 홍찬수의 은사인 지성근선생과 그다지 멀지 않은 친척관계에 있었고 자기도 한때는 미술가가 되려는 큰 희망과 포부를 가졌었으나 학비관계로 뜻을 못 이루고말았지만 자기 취미를 살릴수 있는 직업이라고 할수 있는것이 바로 이 미술장치사였던것이다.

말이 위원장이지 그는 외교, 수금, 물자구입, 주문맡기 등 모든 잡무를 거의 혼자 맡아하는 살림군이였다.

홍찬수는 지용세앞에 나타났다.

그는 1년전 자기가 한때 간판그림을 그리러 다니던 시절에 입던 뼁끼묻은 작업복과 등산모같이 생긴 작업모를 썼다.

지용세는 다시 아래층에 있는 윤산을 불렀다.

《자, 어서들 앉으시오!》

지용세는 찬수와 윤산이 자기와 마주앉자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른게아니라 우리 긴급히 착수해야 할 일거리와 관련한 주문이 들어왔는데 누구보다도 두분이 주동이 돼서 책임을 지고 해주어야겠습니다.》

지용세는 먼저 이렇게 서두를 뗐다.

《무엇입니까?》

윤산이가 궁금한듯이 물었다.

《별장벽화와 내부장치!》

《그럼 해봅시다. 나 혼자보다도 남선생이 있으니까 든든합니다.》

윤산은 선선히 말했다.

찬수는 잠간동안 생각해보았다.

별장벽화는 자기로서 그리지 못할바는 아니지만 어쩐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난 별장벽화에는 경험이 없는데요.》

찬수는 겸손하게 말하며 지용세의 눈치를 엿보았다.

《그거 무슨 경험이 꼭 있어야만 그리는건 아니니깐…》

지용세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다시 《우리 사에서는 당신들 두사람이 아니면 벽화를 그릴만 한 실력가진 사람이 어디 있소? 그래도 벽환데 간판그림처럼 그릴수는 없거던. …》 하고 두사람을 격려하였다.

《그럼 그림은 어떤걸 요구하나요?》

찬수가 물었다.

《그래서 오늘 오후 작업할 현장도 볼겸, 주문주와 그림내용에 대한것도 이야기할겸 주문주를 만나기로 했으니까…》

지용세는 더 말을 계속하지 않고 전화기를 들더니 어디로엔가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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