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 직

3

 

지선생과 송동무의 방문은 찬수의 기분을 명랑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선생님! 어디로 사무실을 옮기셨습니까?》

찬수는 어떤 말끝에 지선생에게 물었다.

《아니, 그건 어떻게 아나?》

《아까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었지요.》

《그 집에서 나온지 벌써 오랠세. 건축설계가 무슨 세월이 있어야지, 공연히 비싼 세만 물수 있던가. 허는수없이 다른데루 옮겼네.》

《그럼 사모님은 지금두 시골에 그대로 계세요?》

찬수가 물었을 때 지선생의 얼굴빛은 어느덧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자네에겐 그때 알리지 않았지만 내 안해는 벌써 죽은지 오랠세!》

지선생의 목소리는 낮고 힘이 없이 떨렸다.

《네? 언제요?》

《벌써 1년전 일이네. 병으로 앓다가나 죽었으면 한이나 없겠네만…》

지선생은 갑자기 울분이 치솟아오르는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내 안해는 자기 고향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갔었네. 그런데 파주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그 마을에서두 생겼단 말일세. 내 처가집은 미군강도놈들에게 다 털리고 내 안해는 미군놈의 총에 맞아죽었네. 그놈들은 그 마을에 집단적으로 강도질을 하러 들어왔었네. 강도질뿐이 아니라 녀자들을 강탈까지 하고… 그놈들에게 죽은 사람이 어린아이, 젊은 녀자, 로인 모두 합해서 열두서너명이나 됐었네.》

지선생은 잠간 말을 끊고 긴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였다.

《전 그런걸 전혀 몰랐습니다. 정말 불구대천의 원쑤놈들입니다.》

찬수도 참을수 없는 분격을 느끼였다.

《그때 내 안해는 바로 자네 5촌아저씨가 경영하는 병원으로 응급치료를 받으러 업혀갔었으나 한시간도 못되여 죽고말았다네. 그때 자네 5촌도 큰 난을 겪은셈이지. 숱한 부상자들이 밀려갔었으니까…》

지선생은 그때 일이 회상되는듯 눈을 끄먹거리며 침통한 울분에 잠기였다.

찬수는 이 순간 고향마을의 불행이 눈앞에 떠올랐다.

자기 마을사람들이 미군놈들에게 습격을 받고 재물을 빼앗기며 총에 맞아죽어야 할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피에 굶주린 승냥이떼! 그 추악한 발톱과 이발에 찢기고 할퀴고 물리고 채이는 선량한 양의 무리!

찬수는 몸서리를 치며 이를 앙다물었다.

그리고는 무거운 침울속에 잠기여버렸다.

이윽고 그는 기분을 전환하려고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지금 선생님은 새로 가정을 가지구계세요?》

《이 사람아! 50이 넘어 60이 다된 사람이 무슨 그런 생각을 하겠나.》

지선생은 서글픈 표정우에 괴로운 웃음을 띠였다.

《그럼 지금 선생님은 하숙생활을 하세요?》

《그렇네, 미국놈때문에 내 가정은 파괴됐네. 이제는 나두 미국놈이 내 원쑤요, 조선사람의 원쑤란것을 똑똑히 알았네.》

지선생의 얼굴에는 다시 쓸쓸한 애수와 분격이 피여올랐다.

지선생은 기분을 가다듬어 다시 말을 이었다.

《오직 딸 하나 있는것 지금 고향에서 교원노릇을 하네만 그것도 큰 걱정거릴세…》

지선생의 이 말에 찬수는 선뜻 옛날 일이 회상되였다.

찬수가 소학교를 졸업할 때 지선생에게 어린 딸이 있었던것이 어렴풋이 기억되였다.

《벌써 나이가 스물셋일세. 과년한 딸자식을 가진 애비의 마음은 언제나 불안해.》

《그러시겠죠. 결혼기가 가까와졌군요.》

《그러나 어디 적당한 신랑감이 있던가. 똑똑한 청년은 대부분 징병을 기피해서 이리저리 피해다니니 말일세.》

지선생은 한탄섞인 어조로 말하고는 잠간동안 침묵을 지키였다.

찬수는 지선생의 그 말이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되였다.

《자네두 이젠 건강을 회복시켜서 취직을 하고 차차 결혼을 하게. 벌써 자네 나이두 얼만가?》

지선생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찬수는 그저 잠잠히 입을 다물고있었다.

취직과 결혼! 찬수는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 여유가 자기에게는 아직 있을수 없다고 생각되였다.

그것은 자기의 앞길에 그렇게 순탄하게 취직할 곳이 생기고 또 쉽사리 결혼상대자가 나타날것 같지 않았기때문이다.

《우선 먼저 취직을 하도록 하게. 며칠동안 몸을 잘 보양한 뒤에…》

《글쎄요, 취직할 곳이 금방 어디 생기겠습니까?》

《어쨌든 우선 살고봐야지. 자네도 형무소생활을 했으니 마음이 좀 달라졌겠지. 나두 8. 15직후의 경험이 좀 있네만…》

지선생은 8. 15직후에 자기 고향에서 창설된 인민위원회에 관계하다가 미군이 들어오면서 인민위원회를 해산하고 간부들을 투옥할 때 그 틈에 끼워 감옥생활을 약 반년가량 한 경험이 있었던것이였다.

찬수는 지선생의 그러한 경력을 어느 정도 알고있었다.

《자네나 나나 량심적으로 살아가세. 원쑤놈들을 당장 몰아내지야 못할망정 정신이야 똑바루 가지구 그놈들에게 꺾이지 말아야지. 다 이제 때가 있느니…》

지선생은 의미깊은 어조로 찬수를 격려해주었다.

《어쨌든 자네나 나나 우선 살아야 하네. 자네 같은 화가로서는 좀 창피할는지 모르나 공장에 들어가 로동하는셈 치고 미술장치사 같은데라두 들어가서 생활문제를 해결해야지 않겠나?》

지선생은 간곡한 어조로 찬수에게 말했다.

찬수는 미술장치사에 대해 모르지는 않았다.

미술장치사는 일부 몰락한 미술가 또는 간판화공들이 한데 모여 실내장치, 벽화, 간판화, 광고문도안, 초상화, 무대장치, 상품진렬장장식 등등… 기타 각 종목에 걸쳐 고객들의 주문에 응하여 영업을 하는 상업미술기관이였다.

찬수는 마리야녀학교에 취직하기 전 취직난으로 고생할 때에 어쩔수없이 간판쟁이, 자수도본쟁이노릇을 해서 생활비를 겨우 벌어쓴 일이 있었다.

이때 찬수는 자기가 상업미술에 발을 들여놓게 된것이 미술가로서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그 지향과는 어긋나는것만 같았기때문에 몹시 괴로웠고 불만족스러웠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 교원노릇이라도 하는편이 자기의 지향을 살리는 길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지선생을 찾아가 마리야녀학교의 취직소개장을 받았던것이였다.

지금 찬수에게는 그때 이상으로 더 절박한것이 취직문제인것이다.

찬수는 형무소안에서도 여러가지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일정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비록 출옥은 했으나 5년간 《집행유예》라는 멍에가 씌워지고 《빨갱이》니, 《반미분자》니 하는 딱지가 붙은 자기인것만큼 상대방이 마음놓고 채용할 곳은 없을것이고 더구나 기다리고있었다는듯이 반가이 맞아줄 곳은 한군데도 없을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선생의 권고대로 미술장치사 같은 상업미술기관에 취직을 한다면 그것은 지선생의 말과 같이 한개 로동자로 일품을 팔러 가는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되였다.

《별수없습니다, 홍선생! 이젠 놈들에게 요시찰인이 됐으니깐 화가로서 취직할 곳은 그곳뿐입니다.》

지금까지 잠자코 앉아서 침묵을 지키던 송동무도 이렇게 권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리구 홍선생! 이 집에서 하숙을 얼른 옮기셔야 합니다. <집행유예>란것은 언제 또 놈들이 덤벼들어 체포해갈는지 모르는거니까요. …》

송동무는 찬수에게 은근히 주의를 주었다.

《암, 시급히 래일이라두 시내로 옮겨야 하네.》

지선생도 그 의견에 찬성해나섰다.

찬수는 송동무가 자기보다 나이는 어린 사람이지만 이미 놈들과의 투쟁에서 단련되여 요령을 잘 아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를 이번에 알게 된것이 은근히 기뻤고 또 외로운 자기에게 앞으로 큰 힘이 될것만 같기도 했다.

더구나 자기에 대한 지선생의 모든 친절이 보통 있을수 없는 사제간의 의리와 정이라고 느끼여지면서 지나간 어린시절 지선생에게 배울 때의 일이 불현듯 회상되였다.

바로 자기가 고향마을에서 소학교를 졸업할무렵이였다. 그때 담임선생인 지선생은 자기를 사무실로 불러다가 이런 말을 하였다.

《찬수, 너 앞으로 미술가가 되겠다고 했지? 꼭 돼야 한다. 네가 중학에 시험쳐서 입학이 되더래도 너의 집이 가난해서 학비를 계속 당하지 못하여 혹시 중도퇴학을 하게 될 일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때가 있더래두 너는 네 장래를 비관해서는 안돼. 네가 한번 결심한것을 위해서 너는 고학을 해서라두 미술가가 되여야 한다. 나는 네가 훌륭한 미술가가 될 때까지 너를 잊지 않을것이다. …》

지선생은 그때 자기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격려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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