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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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이 지난 약간 이지러진 달빛은 찬수의 감방안을 쓸쓸하게 비쳐주었다.

《취침》명령이 내린지도 거의 한시간이나 되였을 때다. 감방안은 씻은듯 고요하였다.

《아니, 오늘 밤도 그대로 넘길텐가? 이상스러운데…》

찬수의 곁에 누운 차동무가 가만히 입을 열며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오늘 아니면 래일이겠지라오. … 언도해놓고 취소야 허겠능게라우…》

정돌이가 비스듬히 돌아누우며 소곤거리였다.

공판정에서 3년 구형을 받은지도 벌써 2주일 다되였고 판사로부터 5년간 《집행유예》언도를 받은것도 4~5일이나 지난 찬수에게는 하루하루 그대로 지나가는것이 은근히 불안스러웠다.

언도를 받던 날도 구형을 받던 날처럼 공판정에는 많은 학부형들과 학생들이 방청으로 왔었고 지선생과 한숙경과 오변호사의 얼굴도 눈에 띄였었다.

찬수는 자기에게 무죄석방을 언도하지 않고 5년간이나 《집행유예》란 멍에를 둘러씌운 판사의 언도에 불쾌하였으나 그것도 사실은 지선생과 한숙경, 오변호사를 비롯한 많은 학부형들이 배후에서 노력한 활동의 결과였기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때 아직도 공판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겨울을 넘길것만 같은 감방안 사람들에게 비하면 자기의 그동안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여졌다.

《홍선생! 어쨌든 출옥은 금명간에 될게요. 부디 나가거든 용감하게 싸우시오. 우리 같은 사람은 올겨울에 이 감방에서 손발이 얼어터지더래도 지냈지 별수없을게요.》

정돌의 곁에 누운 서점주인이 가만히 말했다.

판결언도를 받은 날부터 감방사람들은 출옥하게 될 자기에게 여러가지로 격려도 해주었고 또 이런것저런것 자잘부레한 부탁도 했다.

《그저 이번 홍선생이 출옥되거든 학부형들과 힘을 합해서 그 교활한 김치선이놈을 학교에서 쫓아내버리고 그 학교를 운영하는 리사회의 실권을 쥔 미국놈의 세력을 꺾도록 하시오!》

《허허… 그게 돼? 미국놈 세력을 꺾다니… 그놈들이 남조선에서 물러가야만 세력이 꺾이지 그대로 버티고 안 나가는데 무슨 재주로 꺾어?》

《아니요, 그럴수록 자주 문제를 일으켜서 싸워야 해! 조선사람이 억세다는것을 놈들에게 알려야 돼!》

《홍선생께 내가 부탁하고싶은것은 다른게 아니요. 홍선생은 미술가인만큼 미술작품활동을 통해서 미국놈을 반대해 싸워야지. 우리 로동자나 농민처럼 싸울수는 없을게요!》

《홍선생은 이제 학교에는 취직이 되기 힘들게요. 그러니까 무슨 미술과 관계있는 딴 직업을 얻으시오. …》

찬수는 그동안 며칠에 걸쳐서 감방사람들로부터 이렇게 간곡한 부탁을 받아왔다.

그중에서는 텁석부리 정돌이가 언제나 자기에게 접근해서 말을 정답게 해줄 때가 더 많았다.

《어쨌든 나가시거든 제일먼저 두부를 사 자시오. 감옥살이하다가 나가는 사람에게 두부가 제일이라오. 그리구 우리 고향에두 한번 가보시라우!》

정돌이는 오늘 밤도 가만히 찬수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이윽고 감방복도에서 뚜벅뚜벅 간수의 구두발소리가 들리였다.

《온다, 온다- 어서 일어나시라우.》

정돌이는 찬수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그러나 찬수는 그것이 자기를 출옥시키기 위하여 문을 열러 오는 간수의 발자국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벌써 여러날전부터 그 발자국에 속아왔기때문이였다.

《취침》명령이 내린 뒤에야 비로소 석방을 시키러 오는것은 《정거장방》에만 있는 풍속은 아니였다.

미결감에서 출옥하게 되는 경우에도 대개는 그러했던것이였다.

그것은 감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잠이 든 사이에 데려내감으로써 석방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자극이나 흥분을 주지 않기 위한 놈들의 교활한 감옥정책의 하나인것이였다.

그러나 수감자들은 그렇게 둔감하지는 않았다.

자기 방에 석방될 사람이 있으면 언도를 받은 날부터 손가락을 꼽아가며 석방될 날자를 따지는것이였고 그 날자에 이르면 《취침》명령이 내리더라도 잠들을 이루지 못하고 석방을 시키러 오는 간수의 발자국소리만 기다리는것이였다.

물론 석방되여나갈 본인이야 말할것도 없지만 자기들은 석방이 되지 못하더라도 한감방에 있던 사람중에 누구 하나 석방이 되게 되면 그들은 모두다 기뻐들 했다.

그것은 우선 수감자 하나라도 석방되여 세상에 나가는것이 좋고 또 나가는 사람에게 자기들이 이것저것 편지로는 할수 없는 부탁들을 마음놓고 할수 있는 기회이기때문이다.

이윽고 간수의 발자국소리가 찬수의 감방앞 가까이 왔다.

《6315번!》

간수가 웨치며 부르자 찬수는 벌떡 일어났다.

《어서 나와!》

찬수는 틀림없이 석방이 되는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자리에 누웠던 여러 수감자들이 거의다 잠을 깨여 고개를 쳐들며 상체를 일으켜앉았다.

그들은 찬수의 출옥에 대하여 모두 기쁜 표정으로 앉아서 전송하려는것이였다.

찬수는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입을 열었다.

《부디들 건강에 주의하십시오. 앞으로 다들 만나게 되겠지요!》

《부디 나가시거든 몸조리 잘하세요. 그리구 일많이 하시다가 우리 서로 기쁘게 만납시다.》

늘 자기에게 친근하던 차동무가 수감자들을 대표하는듯 뜻깊은 말로써 작별인사를 했다.

찬수는 그들이 며칠전부터 부탁해오던 여러가지것들을 새삼스럽게 다시한번 기억하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말했다.

《자, 그럼 몸들 조심하십시오. 말씀하신것들은 다 기억하고있습니다!》

간수가 덜컥 하고 열어놓은 감방문으로 자기의 소지품을 가지고 나서며 다시한번 감방안 사람들에게 묵례를 보낸 찬수는 간수의 뒤를 따라 복도로 걸어갔다.

찬수는 여러가지 수속절차를 겪고나서 한참만에야 형무소 문밖을 나섰다.

싸늘한 바람이 갑자기 무학재고개에서부터 불어 때리였다.

같이 출옥된 몇몇 사람들은 자기들을 마중나온 가족들과 친지들에 에워싸여 악수들을 나누고 자동차들을 타고 가기도 했으나 찬수를 마중나온 사람은 웬 일인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 석방날자가 련락이 잘 안된게지!)

찬수는 이렇게 생각하려 했으나 몹시 울적하고 섭섭하였다.

공판정에서 보던 여러 학부형들은 못 나온다 치더라도 지선생과 한숙경 그리고 영옥이, 선희, 인자중 누구든지 한두사람쯤은 나옴직한 일이 아닌가?

그는 휘청휘청 큰 거리로 나와 주춤하고 잠간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어디로 갈것인가?)

찬수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자기 하숙이 있는 자하문밖으로 나가는수밖에 별도리없다고 생각하였다.

더부룩한 머리, 시커멓게 자란 수염, 입고 자고 발길로 채이고 해서 이미 풀기가 다 죽고 괴죄죄하게 늘어진 모습을 해가지고 어디로 불쑥 찾아갈수도 없는노릇이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출옥을 우선 먼저 지선생과 오변호사에게 알리고싶은 마음이 불끈 솟아올랐으므로 어느 큰 상점으로 들어가 전화를 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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