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있는 산골

6

 

령감은 다시 담배를 뻑뻑 빨며 입을 열었다.

《저, 순옥이 에미일을 생각하면 앉았다가두 울화가 치받쳐 벌떡 일어나게 된다우.》

령감은 이렇게 서두를 떼고는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하자면 하두 기가 막혀서… 사실상 아가씨가 겪고있는건 약과요. … 우리가 미아리고개에서 살 때였소. 순옥이 에미는 그때 품삯도 잘 받지 못하는 놈의 담배공장에 다니였소. 하루는 와야 할 시간이 됐는데두 오질 않아 이상해서 혹시 도중에 미군놈의 찦차에라두 치여 죽지나 않았나 하고 내가 고개너머엘 가보잖았겠소. 아니나다를가 고개넘어 얼마 가지 않아서 어느 길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수군덕거리고있습디다그려. 들으니 젊은 녀자 두사람이 미군놈 총에 맞아죽었다구 하면서 가마니짝으로 덮어놨다기에 그만 아찔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가마니짝을 젖혀보니깐… 아, 기막힐 일 아니요. 그중에 하나가 바로 순옥이 에미가 아니겠소? 사람들은 말하기를 찦차를 탄 미군 두놈이 지나가는 녀자들을 가로막고 붙잡아 태우려는데 녀자들이 놀래서 피해가니까 그저 다짜고짜로 권총을 빼들고 쏴서 두사람 다 쓰러뜨리고 그대로 도망쳐버렸다는구려!》

령감의 이야기를 듣던 영옥은 몸서리가 쳐지며 분격이 치솟아올랐다.

이 순옥의 어머니가 당한 비참한 죽음에 비하면 지금 자기가 겪고있는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그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는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순옥의 일을 생각하느라니 눈앞이 흐려졌다.

《그래, 이 늙은 놈이 피를 흘리고 죽은 순옥이 에미를 등에 업고 돌아오잖았겠소. 저 어린 년이 그때 겨우 젖이 떨어질라말라 할 때였소. 죽은 에미를 방에 눕혀놓으니까 저년은 제 에미 품을 더듬어 젖을 먹으려구 달려듭디다그려! 만일 저년 애비가 있어서 그것을 직접 봤더라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이가 갈릴 일이겠소. 며느리가 그 지경으로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난 뒤에 우리는 더 거기서 살수가 없어서 생각다 못해 이 산골로 와서 이렇게 외딴데다 움막을 치고 살게 된거요. 산비탈에 강냉이와 감자를 조금 심어먹는것두 이제 와선 동회녀석들이 말썽을 피운다우. 아가씨두 보다싶이 락엽을 긁어다 때는것두 산순검놈 눈을 피해가며 하지 않소? 이렇게는 정말 더 살아갈수 없는 놈의 세상인줄 알면서도 그저 꾹 참고 눌려만 지내는구려. 그러니 언제나 원쑤를 갚겠소? 하루바삐 미국놈들을 몰아내야만 우리가 살지…》

령감은 담배대를 턱턱 털고는 마당에 널려있는 락엽을 마저 긁어들였다.

영옥은 밥이 되자 아궁이앞을 쓸어놓고 마당으로 나와 사립문밖을 내다보았다.

《원, 이 늙은이가 왜 이리 오질 않나?》

령감도 어느 틈에 아래마을로 뻗어나간 좁은 산길을 멀리 내다보았다.

아래마을까지는 거의 8리나 되였다.

중간에 한두채의 외딴집이 있을뿐 인가라고는 드문 이 골짜기에 저녁때만 되면 더구나 인적이 없이 고요하고 쓸쓸하였다.

영옥은 해가 저물어 어두워질수록 마음이 더욱 초조해지기만 했다.

자기 집에 심부름을 보낸 이 집 할머니가 돌아올 때가 넘었건만 안돌아오기때문이다.

영옥은 생각할수록 집안소식이 더욱 궁금하였고 홍선생의 판결언도가 어떻게 되였는지 갑갑증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어서 이 집 할머니가 돌아와야 소식을 알것인데 아침에 나간 할머니가 해가 지도록 오지 않는것이 암만해도 수상스럽고 불안했다.

영옥은 혹시 이 할머니도 오다가 자기 어머니처럼 미국놈의 찦차에 치였거나 순옥이 어머니처럼 미군놈의 총에 맞아 쓰러진것이나 아닌가? 집에 불쑥 들어갔다가 혹시 강태근이놈을 만나 끌려가 취조를 받는것이나 아닌가? 생각할수록 불안스럽고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견딜수가 없었다.

더구나 오늘 이 집 할머니가 집에서 쌀을 받아오지 못한다면 래일 아침부터는 이 집 식구와 함께 밀기울죽을 먹는수밖에 별도리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처량해진 자기 신세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령감은 물끄러미 사립문밖을 내다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아가씨, 얼른 집뒤로 돌아가 숨우.》 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영옥을 바라보았다.

영옥은 정신이 아찔해지며 갑자기 온몸이 떨리고 무슨 불길한 일이 자기 신변에 또 닥친것만 같아 허둥지둥 뒤란으로 들어가 솔가리나무동뒤에 숨었다.

《여보, 첨지 있소?》

어떤 사나이의 굵은 목소리가 들리였다.

《네, 누구요?》

《나요. 그런데 왜 세금을 안 내우? 세금을 안 내려거든 이 산골에 살지 말란 말이요!》

표독스런 목소리였다.

《글쎄, 누가 내기 싫어서 안 냅니까? 우선 사흘에 죽 한그릇 얻어먹기도 힘든데 뭘루 세금을 냅니까? 그저 제발 면제해주시구려!》

《뭐? 면제? 국민이면 세금을 내야지! 국민의 의무가 뭔지 알아? 첫째 세금내는거고, 둘째 징병나가는거구, 셋째 부역나가는거란 말야! 알았어? 첨지!》

《네, 그건 잘 압니다. 그 세가지중 두가지는 했습니다.》

《뭐? 두가질 뭘 해? 허긴…》

《아들놈이 벌써 5년전에 국군에 나갔고 또 오늘도 부역나가 했습니다.》

《그럼 왜 세금을 안 내? 솔가루 긁어다가 팔아서 뭘 해? 응? 동회비두 벌써 두달치나 밀렸단 말야!》

그놈의 목소리는 갈수록 거칠고 딱딱했다.

《글쎄, 이렇게 쫓기고쫓겨 산골짜기에 와서 움막을 치고 겨우 죽지 못해 사는 이 늙은 놈에게 무슨 세금이니 동회비니를 받으려고 하십니까? 그저 나리, 면제해줍쇼.》

령감이 사정을 했으나 그놈은 《그 쓸데없는 소리말구 래일안으로 당장 해다 바쳐! 만일 안해오면 이 산골에서 살지 못해! 여긴 대한민국이 아닌줄 알았어? 산골에 산다구 세금 안 내게…》 하고 톡 쏘아붙였다.

《아니, 나리! 누가 그래서 안 낸답니까? 정말 헐수, 헐수없이 살아가는 이 늙은 놈에게 글쎄…》

《잔말말구 래일 아침 당장 내란 말야. 솔가루나무는 몇동이나 해다놨어? 응? 나무도 해서는 안되는거야! 누가 이 별장지대에서 나무하랬느냐 말야! 어디 얼마나 해다놨어? 뒤란에 있지?》

영옥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암만해두 그놈이 뒤란으로 돌아와 솔가리나무동을 세여볼것만 같았다.

영옥은 얼른 어디로 다시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무동뒤에서 뛰여나왔다.

아니나다를가 그놈이 뒤란으로 돌아오는지 서쪽굴뚝모퉁이에서 발자국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영옥은 별안간 어디로 피했으면 좋을지 몰라 당황하였다.

그러나 어물어물하다가는 그놈에게 발견될것만 같아 얼른 반대방향의 부엌뒤 모퉁이로 돌아가 동정을 살피였다.

그놈은 영옥이가 숨어있던 솔가리나무동곁으로 다가와서 《음, 이거 두동이나 있구먼! 첨지, 이 두동 우리 집으로 져내려와!》 하고 령감에게 호령했다.

《글쎄 이번만은 안되겠쇠다. 한동은 팔아서 동회비 내고 한동은 팔아서 밀기울이라도 사다 죽이라두 끓여먹어야 하잖겠습니까?》

령감이 난색을 보이자 그놈은 고함을 꽥 지르며 말했다.

《아, 누가 첨지네 나무 거저 땐댔어? 돈을 줄테란 말야!》

《돈이요? 힝! 언제 동회나리들이 내 나무 갖다 때구 돈주었습니까? 내 인차 한동 해다드리리다. 어서 내려갑쇼.》

《그런 소리말구 래일 아침 꼭 져내려와! 기다릴테니, 만일 안 내려오면 또 올라올테니깐! 알았어? 첨지!》

그놈은 재차 이렇게 강요하고나서 마당쪽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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