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녀학교

6

 

수화기를 떼여놓고 숙직을 하고난 찬수는 여전히 머리가 뗑하고 얼떨떨했다.

더구나 숙직실 한쪽귀퉁이에 종이에 덮인채 그대로 놓여있는 두개의 음식쟁반이 눈에 띄우자 그는 기분이 또 불쾌해졌다.

찬수는 거리로 나와 아침을 사먹고 다시 학교로 들어갔다.

첫 시간 종이 요란스럽게 울었다.

그는 어제 채 끝내지 못한 전람회장을 꾸리려고 본관 강당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학생 하나가 급한 걸음으로 찬수앞에 나타나더니 가볍게 인사를 했다.

《저… 선생님! 지금 곧 교장실로 오시래요.》

《음.》

찬수는 좀 이상스런 예감이 들었으나 하던 일을 중지하고라도 가지 않을수 없었다.

교장실에는 교장이하 교무주임, 훈육주임, 사감, 가사선생 등 간부교원 7~8명이 쭉 모여앉아있었다.

《홍선생, 어서 앉으시오.》

교장 김치선은 안락의자에 버티고 앉아서 찬수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찬수는 이 순간 어떤 불길한 예감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빈 의자에 가만히 앉았다.

모여앉은 간부교원들은 모두다 긴장된 얼굴로 찬수를 흘끔흘끔 흘겨보는것이였다.

해일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한 순간과도 같이 잠시동안 납덩이같은 침묵이 흘렀다.

잠간 동안을 두었다가 김치선이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긴급회의를 시작합시다. 오늘 긴급회의는 별다른것이 아니라 간단히 말하자면 어제 밤 홍선생이 미군장교를 모욕하고 폭행을 가한 문제, 또 숙직중에 교장의 지시를 반대하고 어떤 선동적인 전화를 한 사실 등에 대해서 토의하고 그 대책을 취하자는게요.》

찬수는 돌발적인 교장의 발언에 참을수 없는 분격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억제하면서 먼저 일어나 말을 꺼내려고 했다.

김치선은 뱁새와 같이 작은 눈으로 찬수를 쏘아보면서 《홍선생은 가만히 앉아있소. 이 회의는 홍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인 회의가 아니니깐…》 하고 언권을 주지 않았다.

찬수는 기가 막히였다. 흥분된 기분을 도저히 억누를수 없었기때문에 그는 언권을 얻지 못했지만 불쑥 일어났다.

《교장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나는 어제 밤 미군장교를 모욕하지도 않았고 또 폭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증명하지 않습니까?》

평소에 별로 말이 없고 온순한 사람으로 정평이 났던 찬수에게서 전에 보지 못한 흥분된 표정을 본 간부교원들은 의외로 긴장되지 않을수 없었다.

이윽고 교무주임 윤성오가 입을 열었다.

그는 김치선과는 반대로 키도 크고 몸집도 뚱뚱한 40살가량 된 사나이다. 이마는 훌떡 벗겨지고 머리칼은 듬성듬성 나있었다. 코는 우뚝하고 넙적스름한 얼굴에는 개기름이 주르르 흘렀다. 어글어글하게 불거진 큰 눈에는 심술과 오기가 넘쳐흘렀다. 아래우에 사치스러운 하늘빛양복을 입은 그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고 앉은 그대로 입을 벌리기 시작한것이였다.

《홍선생의 어제 밤의 행동은 엄중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에 주둔하고있는 미군에 대한 모욕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 마리야녀학교 교원으로서는 할수 없는, 해서는 안될 탈선행동입니다. 이 얼마나 우리 학교의 위신저락입니까? 손님을 초대해다가 기껏 성대하게 연회를 잘했는데 홍선생이 결국 망쳐먹었다 그겁니다. 이 얼마나 분한노릇입니까? 왜 무슨 까닭에 다른 선생들은 가만히 있는데 홍선생만이 유독 뛰여들어 미군장교에게 폭행을 가하고 모욕을 주었는가? 이것은 로골적인 반미사상의 표현이며 당국교육정책에 대한 반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더구나 상대방이 유엔군사령부의 스틸맨대좌가 아닙니까? 나는 오늘 이 회의에서 홍선생의 사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성오는 입술을 씰룩거려가며 찬수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평을 가하려 하였다.

《… 난 홍선생이 손영옥이를 자동차에서 끌어내린것은 반미감정뿐만아니라 다른 또 복잡한 리유가 있지나 않는가 생각돼요. 난 어제도 직접 목격했지만 홍선생은 영옥이에 대하여 너무나 지나치게 개별지도를 하고있었어요. 어제 가사실습시간인데두 불구하고 영옥이만을 미술교실에 데려다놓고 그림을 그리게 한 사실같은것이라거나 또 어제 밤 박서방을 동반시켜서 집에 데려다준 사실이 다 그런것을 여실히 증명하는것이라고 생각해요.》

가사선생 최보배는 은근히 찬수를 중상하기 시작했다.

살이 쪄 축 늘어진 그의 두볼에는 심술과 변덕이 넘치고있었다.

찬수는 거의 질식상태에 빠지고말았다.

최보배가 자기를 중상하고나서는데는 이러저러한 리유가 없진 않았다.

최보배는 그동안 자기의 가사실습시간에 학생들이 만든 음식들을 《시식회》를 한다고 하면서 교직원들을 모아놓고 먹여가며 《평가》를 받아왔지만 한번도 정식으로 찬수를 《시식회》에 청하지 않았다.

그것은 찬수의 위치가 이 학교에서 그리 중하지 않은, 말하자면 말석교원축에 들었기때문이였다.

즉 《시식회》에 정식으로 초대되는 교원들은 언제나 교장이하 간부교원들이였고 그밖에 청하지도 않는데 비위좋게 덥석덥석 참석하는 쑥스런 교원들도 없진 않았지만 찬수는 언제나 《시식회》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고 따라서 최보배와 별로 접촉이 없었던것이였다.

최보배는 자기가 직접 청하지 않았기때문에 참석하지 않는다는것은 생각지도 않고 《시식회》에 한번도 오지 않는 찬수와 같은 교원들에 대하여 은근히 백안시해왔다. 그것은 자기의 가사교수에 대해서 비웃고 비평하지 않나 하는 자격지심에서였다.

실상은 최보배의 가사교수에 대하여 학부형들속에서 말썽이 없지도 않았고 교원들속에서도 의견들이 많았다.

그것은 주로 찬수와 같은 말석교원들가운데서 론의된것이였다.

《조선사람생활에 무슨 양료리가 필요해? 김치, 깍두기 담그는 법, 된장찌개 끓이는 법이나 똑똑히 가르쳐줄 일이지.》

이러한 이야기는 적극성을 띠지 못하고 그저 교원들간에 지나가는 말처럼 주고받는 정도에 그치고말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에 대해서 최보배는 그것이 자기의 가사교수에 대한 비평이며 쑥덕공론이라고 생각하고 찬수와 같은 교원들에 대하여 반감을 품어왔었고 따라서 직원회의때에는 약점을 노리다가 공격을 가하군 하였던것이다.

찬수는 최보배의 악의찬 중상을 그대로 듣고만 있을수 없었다.

《최선생의 말씀은 나에 대한 지나친 중상입니다. 어제 교실에서 영옥이가 그림을 그리고있었던것은 사실이나 그 그림은 전람회에 걸을 자기의 그림을 잠간 수정하는 정도였고 또 개별지도에 대해서 비난을 하시는데 그것은 내게 수긍이 안됩니다. 손영옥이는 앞으로 미술가로서 발전할수 있는 소질을 가진 학생이기때문에 특히 개별지도를 해온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교육적립장에서 비난을 받을 일입니까?》

찬수는 정색을 하고 반박해나섰다.

《아니, 홍선생! 우리 학교는 한두학생을 미술가로 만들기 위한 준비기관은 아니란 말이요. 영옥이에 대한 지나친 개별지도-그것은 결국 말하자면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된것이고 그 결과가 어제 밤에 나타난 탈선행동으로 표현된것이요.》

김치선은 최보배의 편을 들어 찬수를 공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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