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있는 산골

5

 

미라의 노래소리는 별장부근 골짜기에서 락엽을 긁던 촌녀자들의 귀를 놀라게 했다.

잔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별장아래 별로 멀지 않은 골짜기에서 바쁜듯이 갈퀴로 락엽을 긁던 처녀 하나가 깜짝 놀라며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처녀는 잔솔밭틈으로 내다보이는 별로 멀지 않은 양지쪽 바위밑 아늑한 곳에서 남녀 한쌍이 해괴한 꼴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발견하자 웬 일인지 얼굴이 화끈해지며 망측스런 생각과 불쾌한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는 때가 묻어 거무데데한 목수건으로 머리를 푹 눌러썼으나 갈래머리의 꼬리는 어깨아래로 뾰주름히 불거져나왔고 얼굴빛은 맑고 희며 살결이 류달리도 곱고 윤택이 있어 아름다왔다.

좀 커보이는 로파의 저고리를 입고 치마를 두르기는 했으나 치마자락사이로 내비치는 람색양복치마자락은 그로 하여금 도시처녀의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주지 못했다.

그뿐아니라 그의 손마디는 너무도 곱고 희였다.

그는 암만해도 이 부근의 산골마을에 사는 처녀로 볼수는 없었다.

그는 미라의 노래소리가 창녀의 노래소리처럼 들렸으므로 더 듣지 않고 긁어모은 락엽을 동을 지어 포대에 담았다.

처녀는 보아서는 안될것을 본것처럼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

누구인지는 잘 몰라도 확실히 그것은 조선녀자였고 사내놈은 미국놈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자 더욱 불쾌했다.

처녀는 마치 자기가 어떤 모욕이나 당한것처럼 이상스럽게 느껴져 허둥지둥 락엽포대를 등에 지고 골짜기아래로 내려갔다.
그 처녀는 딴 사람이 아니였다.

미군장교 스틸맨에게 쫓겨나와 피신해온 손영옥이였다.

영옥은 락엽포대를 등에 지고 단숨에 펑퍼짐한 골짜기로 들어섰다.

아늑한 골짜기에 외딴집 한채가 소나무가지사이로 뾰주름히 내비치였다.

영옥은 이 외딴집으로 락엽포대를 지고 들어갔다.

외딴집은 조그마한 오막살이였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는듯 몹시 고요하였다.

영옥은 락엽포대를 부엌으로 지고 가서 나무칸에 부리였다.

그리고 손으로 락엽을 끌어내놓았다.

솔방울과 관솔과 삭정이도 섞여있었다.

영옥은 자기 운명이 이렇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우이동 산골 이 외딴 오막살이로 피신하러 온것은 자기로서는 가장 현명했다고 생각되였지만 가난한 집에 와서 신세를 지는 이상 이 집살림에 도움을 주어야 하겠기에 오늘처럼 땔나무를 해다주는것이였다.

영옥은 지난여름에 이 우이동으로 자기 학급이 원족을 나왔을 때 이 골짜기에서 《보물찾기》를 하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게 되자 동무들과 함께 비를 피해 이 외딴집으로 몰려온 일이 있었다.

그때 이 집 할머니가 자기들에게 퍽 친절하게 대해주었기때문에 영옥은 이 골짜기와 이 집에 대하여 인상이 깊었던것이였다.

그는 이번에 자기가 피신하지 않으면 안될 운명에 처하게 되자 적당한 곳을 생각해보던 끝에 선뜻 바로 이 외딴집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부터 이 집으로 찾아와 사정이야기를 하고 숨어지내게 된것이였다.

영옥은 이 집으로 피신하려고 들어오던 날 이 골짜기에 자동차길이 새로 나고 2층양옥집이 한채 생긴것을 보고 놀랐으나 오늘처럼 그러한 남녀가 해괴한짓을 하기 위하여 지은 별장인줄은 전혀 몰랐던것이였다.

그는 이런 생각에 잠겨 물동이를 들고나와 사립문밖으로 갔다.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물을 동이에 길어들고 그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로파의 저고리여서 소매가 너덜거리고 치마자락도 끌리건만 이 집 할머니가 꼭 그대로 입고있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는 바람에 불편해도 벗어버릴수 없었다.

4~5살가량 된 어린 처녀아이가 방에서 갑자기 울며불며 뛰여나왔다. 금방 자다 깨여난 얼굴이였다.

《얘 순옥아, 울지 마! 응? 할머니 이제 곧 오신다, 응?》

영옥이가 달래였으나 처녀아이는 그대로 울기만 했다.

《내, 밥 해줄가? 배가 고파 우니? 응? 할머니가 너 줄 사탕 많이 사온댔어!》

영옥은 부리나케 손을 씻고 쌀을 내다가 밥을 안치였다. 그리고는 자기가 긁어온 락엽으로 불을 지폈다.

어린 처녀아이는 여전히 울고만 있었다.

영옥은 우는 아이를 덥석 안아다가 아궁이앞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지 말라고 또 달래였다.

이때 마당에 머리가 허옇게 센 령감이 나타났다.

그는 어깨에 메고 들어온 괭이를 헛간에다 내동댕이치고나서 부엌으로 들어왔다.

《아니 아가씨, 왜 방안에 가만히 있으래두 나와서 일하우, 응? 아무리 우리 집이 산골짜기 외딴집이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기가 쉽다고 자연 밖에 나와 일하면 남의 눈에 띄기가 쉽대두 그래.》

령감은 걱정스럽게 말하며 아궁이에서 담배불을 붙이였다.

《원, 땔나무까지 해왔소? 이젠 우리 집 살림살이까지 해주누만… 허허허.》

령감은 껄껄 웃으며 담배를 빨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여태까지 부역을 하셨어요?》

《어떡하오. 달구 치면 맞지 별수 있소? 힝! 별장인지 놀이턴지 지었으면 저희나 좋지 우리네헌테 무슨 상관이야? 이 겨울날 마을사람들을 강제로 불러내여 길을 닦이니…》

령감은 몹시 분한 표정을 하면서 구시렁거렸다.

그는 빨던 담배대를 쑥 뽑아들고는 《그 권세쓰는 놈들 보기 싫어 산골짜기로 와 살라니깐 흥, 뚱딴지같은 놈의 별장은 왜 지어가지구 만만한 백성들만 고생시키느냐 말야… 애당초에 깊숙이 두메로나 들어갈걸…》 하고 한탄조로 말하였다.

벌써 해는 산을 넘어 산그늘이 갑자기 골짜기를 뒤덮었다. 음산한 저녁바람이 나무가지를 흔들며 쏴 하고 지나치군 했다.

《아, 그런데 이 늙은이가 대체 어찌된 셈판이야? 중한 심부름을 가면 빨랑빨랑 와야지 또 주책없이 수다를 떠느라고 이렇게 늦지…》

령감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사립문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었던지 그는 마당에 널린 락엽과 삭정이를 거둬 부엌으로 들이였다.

《순옥아, 너 이젠 방에 들어가있어라. 얼굴보니깐 많이 울었구나. 에미, 애비없이 크는 년이 청승맞게 울기만 하면 어떡해, 응?》

령감은 어린 처녀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런데 할아버지, 순옥이 아버지는 편지두 없어요?》

《편지가 다 뭐요. 정전되던 해 강제징병으로 끌려간 놈이 벌써 5년째 소식이 없으니 그 자식이 죽은 자식이지 살았겠소? 혹시 남들처럼 북에라도 갔으면 오죽 좋으련만… 그런 주변머리두 못되니 만일 죽었으면 개죽음이지 뭐야…》

령감은 지나간 일이 회상되는지 한숨을 후우 내쉬였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제 형놈은 똑똑했소. 인민군대가 서울을 해방시켰을 때 미군놈들을 몰아내겠다고 떳떳하게 의용군으로 나갔소. 그놈은 정녕 살았을게요. 암, 살아있구말구… 가끔 그 자식이 꿈에 뵈거던… 인민군대복장을 하고 아버지 하고 부르면서 사립문밖에 선연하게 나타난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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