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있는 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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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만취되여나온 세 사나이는 취흥을 못이기여 별장 앞마당으로 나와 거닐다가 뒤산으로 기여올라갔다.

제법 기울어진 저녁해빛이였으나 단풍나무가 숲을 이룬 산기슭을 다양하게 비치고있었다.

박춘식은 바시락바시락 락엽을 짓밟으며 김치선과 함께 바위등쪽을 향하여 걸어올라갔다.

《아, 그런데 웰톤씨는 어디로 갔어?》

박춘식은 발길을 주춤하고 서서 고개를 돌리며 뒤를 살펴봤다.

웰톤은 미라의 손을 이끌고 반대방향인 건너편 산기슭을 향하여 걸어가며 무슨 이야기인지 소곤거리고있었다.

박춘식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버리고 빙긋이 속으로 웃었다.

웰톤이 자기 딸 미라를 귀여워할뿐아니라 미라 역시 웰톤을 잘 따르는 사실에 대하여 그는 은근히 속으로 기쁘게 생각하고있었다.

웰톤과 미라사이가 깊어지면 질수록 자기의 《한미무역사》 사장자리가 굳건해질것이며 따라서 《국회》의원으로서의 지위도 더 보장될것이며 닥쳐오는 민의원선거에도 틀림없이 재선될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래, 박사장! 웰톤씨가 따님을 여간 사랑하는게 아니로군! 당신은 행복하외다.》

김치선이가 빙긋이 웃으며 부러운듯이 말했다.

《허, 교장선생두 그런 소릴 하시우? 사랑을 받으면 미라가 받지 내게 무슨 상관있소. 허허허…》

박춘식은 너털웃음을 웃어보였으나 내심은 그렇지도 않았다.

웰톤이 미라에게 뜻을 두고 접근하기 시작한다는것을 눈치챘을 때부터 박춘식은 은근히 딸이 대견스럽게 생각되였다.

사실 그는 미라의 용모나 육체미로 보아서, 또 어쨌든 《한국》에서는 녀자로서 최고대학인 리화녀대를 졸업한 지식수준으로 보아서, 또 현재 악단의 인기를 독점하고있는 성악가로서의 사회적지위를 가지고있는것으로 보아서 현재 이 땅에서 사는 청년층가운데서는 자기 딸과 상대가 될만 한 사위감을 찾아내기가 힘들것이라고 생각되였던것이다.

비록 자기는 현재 미라보다도 한살이나 어린 젊은 기생첩을 데리고 살지만 미라를 나이많은 《국회》의원이나 또는 《정부》고관에게 시집보내여 첩살이를 시키느니보다는 차라리 미군장교나 그렇지 않으면 웰톤과 같은 권력과 금력을 가진 미국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는편이 미라의 장래를 위해서나 또 현재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는데 현명한 방책이라고 생각되였다.

김치선은 박춘식이가 은근히 만족해하는 눈치를 채고는 바싹 다가붙어 간사하게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여보, 박사장! 저기 좀 보시구려, 얼마나 다정한가! 보아허니 웰톤씨와 따님과의 사이가 보통이 아니구려. 허허허… 단단히 한턱 내셔야겠소. 얼마나 영광스럽소!》

《아 교장선생, 너무 그리 롱을 마슈. 하하하.》

박춘식은 껄껄 웃었다. 그는 웰톤과 미라와의 사이에 대한 김치선의 해석에 대하여 구태여 부정적태도를 취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교장선생, 사실 내가 교장선생을 한번 만나 꼭 부탁하고싶은 일이 있었는데…》

박춘식은 슬그머니 화제를 딴 곳으로 돌리였다.

《에- 다름아니라 아직 기일은 넉넉하지만 래년 봄 선거를 앞두고 정견연설을 미리 준비해야겠는데 그거 교장선생이 원고를 좀 만들어주시우. 내 사례는 톡톡이 할테니…》

《그야 박사장이 할 일이지 남이 어떻게 하겠소. 그러나 박사장이 바빠서 그러신다면야 내 작성해드리리다.》

김치선은 박춘식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새살거리며 아첨했다.

《정말 꼭 좀 해주시우. 다른데는 부탁하지 않겠소. 원, 그놈의 원고값이 너무도 엄청나게 비싸서 어디 웬만한 놈이야 정견연설을 하겠습디까? 하하하…》

《그거 뭐 따지고보면 비싼게 아니외다. 싼게 비지떡이라고 껄렁한 원고를 사가지고 정견연설을 하면 유권자들이 어디 넘어가야지…》

김치선은 제법 정치적견해나 서있는듯이 뇌까리였다.

《그러니깐 내가 교장선생께 부탁하는거 아니요. 아까 웰톤씨도 말했지만 이번에 한미무역사주권을 나누어드리는 문제는 내가 적극 추진할테니깐 그건 념려말고… 원래 웰톤씨는 언약을 하고도 시일이 지나면 뚝 잡아떼는분이니깐 내가 바싹 서둘겠쇠다.》

박춘식은 은근히 자기가 호의를 베풀겠다고 암시를 주었다.

김치선은 이미 웰톤이 언약한 주권분양에 대한 문제를 박춘식이가 교묘하게도 생색을 내면서 자기를 리용하는데 써먹으려는것이 빤드름하게 짐작되였으나 역시 모르는체 하고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것이 앞으로 자기에게 유리할것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러면 앞으로 웰톤과의 접촉에서 어려운 문제와 부딪치더라도 응당 박춘식이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말해줄것이며 또 해결해줄것이라고만 생각되였다.

《그리구 교장선생, 당신두 웬만하면 출마해보지. 버젓한 자유당원이 일생을 녀학교 교장노릇만 하시겠소? 사람이란 때가 있는 법인데 당신이 만일 정계로 진출할 생각이 있다면 이번이 적당한 기회일것이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든든한 유엔군사령부에 스틸맨대좌가 있고 또 당신이나 나를 신임하고있는 웰톤씨가 있으니까…》

박춘식은 간곡하게 김치선에게 권고했다.

김치선은 어느덧 귀가 솔깃했다.

사실 김치선은 자기도 한번 《국회》의원이 되여 정계에 출마해보고싶은 야욕이 없지는 않았으나 박춘식이와 같이 금력은 가지지 못한 자기로서는 용기를 낼수가 없었던것이다.

《아니요, 속담에 남이 장에 간다하니 거름지고 나선다는 격으로 지금 내 처지에 무슨 출마를 하겠소. 그저 가늘게 먹고 가늘게 싸는게 낫지.》

김치선은 서글프게 웃었다.

《아니, 선거비용때문에 그러시오? 그거라면 내가 해결해주지, 응? 어떻소?》

박춘식은 호기를 뽐내였다.

김치선은 그저 방글방글 웃고만 있었다.

《아니 여보, 교장선생 같은이가 출마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소. 문제는 무언가 하면 유권자들앞에서 연설 한마디 그럴듯하게 잘만 하면 되는건데… 아, 교장선생이야 20여년을 교단에서 말을 팔아 먹고 살았으니 문제없지! 그렇잖소? 허허허…》

박춘식은 류달리 명랑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어느덧 어조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좌우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시오. 내 적극 원조할테니… 문제는 나허구 한구에서 출마만 맙시다그려. 하하하… 그리고 내가 부탁한 연설원고는 곧 좀 써주시오. 나같이 기억력이 좋지 못한 사람은 미리 몇달전부터 암송해두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연설하다가 중간에 말이 막히여 개망신하게 되니깐 말이지. 하하하…》

《네, 념려마십쇼.》

김치선이가 쾌히 승낙하는 태도를 보이자 박춘식은 만족한 표정으로 점잖아지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에, 참 그리구 내가 벌써부터 늘 생각하고있었는데 실행을 못한 일이 있쇠다. 다른게아니구 래일 회사로 사람 하나 보내시오. 바쁜 교장선생께 어찌 공일을 시키겠소. 내 최근에 수입해들여온 고급물품 좀 보내드리리다.》

《아니, 뭘 그런 말씀을 하시오. 그렇잖으면 안해드릴 처지요? 하하하…》

김치선은 류달리 만족한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이때 별안간 건너편 비탈쪽에서 꾀꼬리소리같은 미라의 노래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리였다.

박춘식은 자기 딸 미라가 웰톤의 품에 비스듬히 안겨 노래를 부르고있는것이 소나무가지사이로 눈에 띄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김치선과 함께 별장마당으로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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