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있는 산골

2

 

《자, 이젠 내부를 좀 구경하실가요? 아직 설비가 완전히 갖추어지지는 않았지만…》

박춘식은 웰톤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벌렸다.

《오우, 좋습니다. 그럼 구경합시다.》

웰톤이 일어나자 김치선도 따라 일어섰다.

박춘식은 먼저 응접실곁 회의실을 겸한 연회실로 안내했다.

마루바닥에는 역시 자주빛주단이 쭉 깔리고 고급탁자들과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이 넓은 마루끝엔 조그만 무대까지 설치되여있었고 무대에는 호화스러운 연록색비로도장막이 드리워있었다. 무대밑에는 큰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오우, 매우 좋습니다. 명월관 특별실보다 훌륭합니다.》

웰톤은 만족한 표정을 보이면서 사면 벽을 휙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마살을 찡그리며 《미스터 박! 당신 생각 부족합니다. 벽과 천정에 어찌 그림 하나 없습니까? 매우 섭섭합니다. 그림 그리시오.》 하고 박춘식을 건너다보았다.

《네, 네, 미처 생각이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곧 그리겠습니다.》

박춘식은 당황하여 대답하였다.

웰톤과 김치선은 다시 침실과 주방, 목욕탕과 식당 등의 설비를 보고 박춘식을 칭찬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 네 면이 유리창으로 된 넓은 방을 보고서는 더욱 좋다고 절찬했다.

그러나 웰톤은 《W.C.》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갑자기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며 불쾌한 표정으로 박춘식에게 말했다.

《미스터 박! 당신 이 별장에 우리 미국사람 놀러 올것 생각없었습니까? 이 별장에 우리 미국사람 초대받아왔을 때 매우 불편하고 기분좋지 않습니다. 미국사람 사용할 변소 따로 만드시오! 알겠습니까?》

웰톤의 사나운 표정을 보자 박춘식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네, 네, 그렇잖아두 지금 다시 설계를 해서 곧 따로 짓게 되여있습니다.》

박춘식은 고분고분해졌다. 확실히 자기네 별장설계를 잘못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중앙청》 같은데도 미군정시대부터 미국인변소와 조선인변소가 따로 구별되여있는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자기의 별장을 설계할 때 미국인변소를 따로 짓는 문제는 사실 깜박 잊고있었던것이였다.

박춘식은 변소문제때문에 웰톤의 기분을 상하게 한것이 몹시 미안했다.

물론 이 별장은 자기가 사장으로 있는 《한미무역사》의 재산으로 지은것은 아니였다.

이 별장으로 말하면 순전히 그가 대주주로 실권을 쥐고있는 고리대금회사인 《한국산업사》와 《대한공익사》들에서 얻은 리윤의 일부로 세운것이였다.

때문에 따지고보면 별장내부설계에 대하여 웰톤이 이러니저러니 간섭할 리유도 없었다. 하지만 박춘식은 웰톤의 불만에 내색을 하거나 항거하는 기색을 보일수가 없었다.

그것은 웰톤이 《한미무역사》의 실권을 가지고있는 대주주일뿐아니라 박춘식의 몫으로 되여있는 《한미무역사》주권의 3분의 1이상은 웰톤의 주권을 조건부로 양도받은것이기때문이였다.

그래도 《국회》의원이며 《한미무역사》 사장이라는 간판을 가졌으면 이 《한국》에서는 일류명사축에 속하는 인물이 아닌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웰톤은 사소한 변소문제를 가지고 민족적경멸과 모욕을 가함으로써 조선사람을 야만으로, 렬등민족으로 규정해버리고 아메리카인종은 일등가는 문명인이란것을 로골적으로 표시한것이였다.

이윽고 그들은 다시 응접실로 돌아왔다.

미라가 커피와 양과자쟁반을 들고 뒤를 따라 들어왔다.

웰톤은 불쾌했던 인상이 어느 틈에 풀어지고 양과자를 씹고 커피를 마시면서 다시 박춘식을 건너다보았다.

《미스터 박! 당신 이 별장 돈많이 들였습니다. 당신 국회의원 아니면 이 별장 지을수 없고 또 우리 무역사 사장 아니면 이 별장 가질수 없습니다. 당신 그거 똑똑히 아시오!》

웰톤의 이 말에 박춘식은 좀 불쾌했으나 실은 옳은 말이였기때문에 내색을 보일수도 없었다.

《당신 이런 훌륭한 별장 가질수 있는것 우리 미국군대 한국에 주둔하고있기때문입니다. 당신 우리 미국위해 더욱 충실하시오. 한미무역사 위해 더욱 일 잘하시오!》

웰톤은 씽긋이 웃는 낯으로 말끝을 맺었다.

박춘식은 순간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웰톤이 오늘 갑자기 별장구경을 나오겠다고 서두른것이 성악련습을 하고있는 자기 딸 미라를 만나보려는데만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에게 이러한 《훈시》 비슷한것을 주려고 나온것이 아닐가 싶었던것이다.

무엇때문에 웰톤이 오늘 자기를 하인다루듯 인격적모욕을 주어가며 어린아이에게 설교하듯 떠벌이는것인가? 박춘식은 자못 불쾌했고 또 불안스러웠으나 그저 눈치만 살필뿐 잠잠히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만 있을수도 없는지라 《그야 웰톤선생께서 그런 말씀이 없더래도 잘 알고있습니다. 모두가 다 미군덕택이죠! 허허허…》 하고 만족한듯이 미소를 띠였다.

《오우, 좋습니다. 당신 우리 무역사 더 좀 잘해야겠습니다. 지금보다 리윤 갑절 올릴수 없습니까?》

웰톤의 돌발적인 질문에 박춘식은 갑자기 당황하였다.

그러나 그는 웰톤앞에서 사장으로서 체면을 차리지 못하면 신임을 받지 못할것은 물론 무능하게 보이여 눈밖에 나게 될것이라는 생각에 《네! 올릴수 있습니다.》라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오케이, 오케이, 한국국민들의 미국상품구매력 지금보다 갑절 올려야 합니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좋지 못한 한국상품 일소해야 합니다.》

웰톤은 미소를 띠우고 박춘식의 표정을 노려보았다.

《그건 이미 일소되여가고있으니까요. 어디 무슨 국내산업이 하나나 성한게 있습니까? 대부분 페업을 했으니까요.》

《오케이, 오케이, 미스터 박! 당신 공로많습니다. 중소상공업자들 많이 없어진것 당신 관계하는 한국산업, 대한공익의 공로큽니다. 그러나 미스터 박! 이제는 당신 관계하는 한국산업, 대한공익 이제부터 별로 할일없습니다. 당신 그 두개 회사 정리해서 우리 한미무역사에 투자할 생각없습니까?》

웰톤의 이 말에 박춘식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현재 《한미무역사》의 사장으로 자기가 가지고있는 주권은 웰톤의 주권보다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웰톤에게서 양도받은 자기 주권의 3분의 1에 해당한 주권을 웰톤이 다시 찾아가는 날에는 자기는 그 회사의 취체역이 될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웰톤이 자기를 위해서 투자를 하라고 한 말인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재산을 《한미무역사》가 슬그머니 삼켜버리려는 엉큼한 수작인지 알수 없어 그는 잠간동안 머리속이 얼떨떨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글쎄요, 투자가 필요하면 해야죠.》

박춘식은 자연 풀이 죽어 웰톤의 눈치만 살피며 말했다.

어떤 때는 가장 친절한 언사를 써가며 자기 살이라도 베여먹일듯이 굴며 자기만을 신임하는체 하다가도 또 어떤 때는 아무 리유없이 랭정하고 불쾌한 태도로 마치 하인다루듯 인격적모욕을 주는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이 칠면조와도 같이 변덕많은 웰톤의 비위를 맞추어나가기란 박춘식으로서도 매우 괴롭고 힘든 일이 아닐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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