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 락

4

 

손종모는 와락 달려들어 차압딱지를 뜯어버리고 옷장문을 열어 영옥이의 외투와 겨울옷을 꺼내여 싸보내고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나중에 반드시 범죄행위로 몰리여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리라는 생각에 차마 차압딱지를 떼여버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손종모는 결국 로파를 그대로 돌려보낼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옥이의 편지에는 이 로파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묻지 말랬으나 어찌 딸의 소식을 안 이상 자세한것을 묻지 않을수 있는가?

《그래, 로인이 사시는데는 어디시우?》

손종모는 궁금한 표정으로 로파를 바라보았다.

《글쎄 댁따님이 이야기말랬는데… 그저 서울시내는 아니구 그렇다구 해서 별루 먼곳도 아니란것만 알아두시구려.》

로파는 이렇게 말하며 빙긋이 웃기만 하였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돼서 그애가 로인댁에 가있게 됐습니까?》

손종모는 궁금하여 파고 물었다.

《벌써 닷새전인가보외다. 웬 생전 처음 보는 처녀 하나가 저녁때 우리 집에 왔습디다그려. 그래 어디 가는 길인데 좀 쉬여가자구 그러기에 그러라구 했지요. 그런데 그날 밤 우리 집에서 자고 그 이튿날 갈줄 알았더니 가지는 않죠. 그래 좀 수상스러웠지만 이야기를 듣고보니 어디 다른데루 가라고 할수 있습디까? 나두 딸자식을 키우는 사람이…》

로파는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쨌든 고맙쇠다. 당분간 더 좀 댁에 있게 해주시오. 내 인사는 하리다.》

《원, 별말씀을… 사람의 집에 사람이 찾아왔는데 인사는 무슨 인삽니까. 아예 그런 말은 마슈. 그리구 따님이 부탁한거나 얼른 주시우. 오래 앉아있지 말고 속히 나오라구 부탁이 간절합디다그려. 혹시 형사녀석들에게 들킬 념려가 있다구 하면서…》

로파의 말을 듣자 아닌게아니라 그렇기도 했다. 언제 그놈들이 불쑥 나타날는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손종모는 집안사정을 대강 알리는 편지를 몇줄 쓰고 마누라가 시키는대로 쌀뒤주에서 쌀을 한말 떠내여 자루에 담아주었다.

로파는 쌀을 받지 않으려고 사양하였다.

《원, 내가 심부름온것이 마치 쌀이나 가질러 온것 같쇠다그려.》

《그런 말씀마시구 가지구 가시구려. 그리구 며칠뒤에 다시한번 오시구려. 외투와 옷은 사정이 있어서 못 보냅니다. …》

손종모의 편지를 받아 치마허리속에 단단히 간직한 로파는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럼 가겠쇠다. 따님걱정은 조금두 마시구 어서 마나님병이나 잘 치료하시구려.》

로파가 쌀자루를 이고 마당으로 내려서려 했을 때 대문이 삐드득 열리며 선뜻 나타나는자가 있었다. 그자는 바로 형사 강태근이였다.

손종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미국제중절모를 빼딱하게 쓰고 담배를 문채 가죽잠바를 입고 마당에 들어선 강태근은 로파를 우아래로 뚫어지게 살피였다.

로파는 벌써 눈치를 채였던지 《그럼, 주인님! 나머지는 언제 주시려우? 원, 댁처럼 외상값받기가 힘이 들어서야 어느 미친년이 보따리장사를 한단 말요! 그래 명주 두필값을 이런 댁에서 두달석달 끌다가 이제야 겨우… 그것도 돈으로 못 주고… 어쨌든 이번 그믐날 또 오겠으니 그땐 나머지를 다 물어주시오. 헛걸음 않도록…》 하고 로파는 천연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성이 시퍼렇게 난 표정으로 대문간으로 나갔다.

《여보, 늙은이!》

강태근이가 표독스럽게 로파를 불렀다. 그놈의 눈엔 이 로파가 퍽 수상하게 보였던 모양이였다.

로파는 발길을 멈추고 돌아섰다.

《왜 부르시우? 서방님이 아마 이 댁 아드님이신가? 아드님이시거든 아드님이 내시구려. 이 늙은이를 그믐에 또 오게 하지 말구… 제발 좀 그렇게 해주시구려. 아, 부모의 손에서 나오는 돈이나 아드님 손에서 나오는 돈이나 다 주머니돈이 쌈지돈이라구 마찬가지지 뭡니까?》

로파는 그럴듯하게 둘러대며 떠벌였다.

《원, 내 재수없군. 여보, 어서 가우.》

강태근은 성을 왈칵 내며 소리쳤다.

약삭바른 고양이 밤눈이 어둡다고 그놈은 감쪽같이 로파의 기지에 넘어가고만것이였다.

로파가 대문을 열고 나간 뒤에야 손종모는 비로소 속으로 숨을 내쉬며 오그라들었던 가슴을 폈다.

《그래 그동안 딸헌테서 온 편지 좀 내놓시우!》

강태근은 마루로 올라와 응접의자에 절퍽 주저앉으면서 손종모를 흘겨보았다.

《편지요? 그런 말 하려거든 아예 오지 마시우. 자식이 아니라 원쑤요!》

손종모는 강경하게 쏘았다.

《자식이 아니라 원쑤라구요? 하하… 그러면 왜 학부형회에 참가했소?》

《학부형회에 참가하다니? 금시초문이요. 너무 그리 건넘겨짚지 마시우.》

손종모는 불쾌한 표정을 보이였다.

그는 오늘만은 아무것도 겁날것이 없었다. 이미 집안은 다 망하고 자식들은 모두다 행방불명이 된 오늘날 겁날것이 무엇인가싶었다.

《아, 그게 정말이요? 학부형회에 손상이 괴수라던데 뭘 시치미를 따시우. 교장이하 간부교원배척문제, 학생들의 미군숙사방문반대, 정학생복교문제 등등… 학부형회에서는 손상두 열렬히 발언했다던데 모른다니 웬 말이요?》

강태근이는 싱글벙글 비웃으며 손종모를 노려보았다.

《난 이미 학부형이 아니요. 그런 말은 마시우!》

손종모는 이렇게 잘라말했으나 사실상 자기가 학부형이 아닌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명확하게 알수 없었다.

김치선이에게 영옥이의 제적문제를 말해둔것만큼 자기는 이미 학부형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던것이였다.

그러나 김치선을 반대하는 회의라면 학부형회고 또 다른 회의고간에 자기로서는 반드시 참석해야 할것만 같았다.

아울러 학부형들이 그런 문제를 토의하면서 아직까지는 그래도 학부형으로 등록되여있을 자기에게 참가해달라는 통지조차 없는것을 생각하면 그는 좀 섭섭한 생각도 들었으나 응당한 대접이 아닐가싶었다.

그도 그럴것이 영옥이가 집을 나가던 바로 그날 밤 초저녁에 자기 집을 찾아왔던 한숙경, 오종호, 지씨 등 사람들에게 학부형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랭담한 태도를 취했던것이였다. 그는 어느덧 그때의 일이 후회되였다.

《좌우간 마리야녀학교가 지금 엉망진창이 됐는데 이게 다 따지고보면 손상 따님때문이란것을 알아야 됩니다.》

강태근은 손종모에게 큰 책임을 떠넘기려는 태도로 말했다.

《어찌 내 딸년때문이란 말요? 내 딸년이 무슨 죄가 있소?》

손종모는 퉁명스럽게 따졌다.

《그게 다 영옥이의 반미사상에서 생긴 일이 아니고 뭡니까. 손상은 어쨌든 아들딸은 잘 뒀소. 이담에 누가 알우? 북한빨갱이들 말대루 평화통일이 되는 날에는 덕을 볼는지…》

강태근은 빈정거리며 담배를 피워물고 벌떡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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