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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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 옷걸이와 양복장과 응접세트며 기타 영준이와 영옥의 책상과 의자, 영옥이의 옷장이며 경대를 비롯한 자자부레한 가구등속에까지도 차압딱지가 붙어있는것을 볼 때마다 손종모는 울화가 치받쳐 견딜수가 없었다.

공장내의 사무실 집기들이며 재봉기계중 30여대는 《종로재봉기계회사》에서 월세를 내여다 사용했는데 공장이 문을 닫자 그날로 모두 회사에서 회수해가버리고 자기의 소유만 10여대가 남아있었으나 이것마저 차압딱지를 붙이고 간것이였다.

비록 기계는 일본제요 다 낡았으나 이러한 기계라도 자기가 시장에서 사들이려면 한대에 20여만환을 주지 않고는 만져보지도 못할 물건들이였다. 하지만 이것을 시장에 내다가 처분하자면 그 절반값도 받지 못할 시세였기때문에 곤난한 환경에 처해있으면서도 이것만은 처분하지 않았던것이였다. 또 군수공장으로 조업을 시작하자면 자기 소유의 재봉기계를 우선 10여대라도 확보해두지 않을수 없었던것이였다.

이러한 자기의 유일한 영업도구까지도 모조리 집어삼키기 위하여 차압딱지를 붙이고 간 《한국산업사》의 몰인정하고 《상업도덕》에 어긋나는 처사는 생각할수록 괘씸하였으나 오늘날 자기에게는 그들을 대항해서 싸워이길 아무런 배경도 실력도 없는것이였다.

사실 고리대금회사로 자타가 공인하고있을뿐아니라 당국의 금융기관들과 밀접히 결탁되여있는 《한국산업사》는 《한미무역사》 사장인 박춘식이가 대주주로 있는 고리대금기관의 하나였다. 그런것만큼 손종모는 처음 이곳에다 자기 부동산을 저당잡힐 때 만일의 경우엔 박춘식이를 직접 찾아가 사정해보려는 일종의 안이하고 어리석은 생각까지 가지고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박춘식이를 찾아가 간청한들 들을리 없고 또 때는 이미 늦었다고 후회하지 않을수 없었다.

손종모는 먼저번에 옛날의 교분관계만 생각하고 박춘식이를 찾아갔다가 의외로 푸대접을 받았을뿐아니라 창피하게 인격적모욕까지 당하고 돌아온 이후로는 그자를 다시 찾아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뿐만아니라 손종모는 박춘식이가 자기와 같은 중소상공업자들의 부동산을 저당잡아놓고 고리대금을 융자해준 이후 망하기만 기다리고있다가 제때에 재산을 차압하고 경매에 붙이여 휘몰아 삼키는자라는것을 모르지도 않았다.

그렇기때문에 손종모는 자기 하나 망하는데 대하여 박춘식이가 손톱만 한 동정은커녕 거들떠보지도 않을것이라는 빤한 생각에 마음속으로 울분이 왈칵 솟구쳤다.

이런 분위기에 사로잡힌 손종모는 마누라와 영옥이에게 볼낯이 없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글쎄, 내가 뭐라구 합디까? 군수공장인지 뭔지 할 생각을 안했다면 망해두 이렇게 망하지는 않을것을…》

마누라는 앓아누워있으면서도 령감에게 오금을 걸었다.

《다 이게 팔자야! 잔소리말우!》

손종모는 할 말이 없으니까 그저 이렇게 마누라에게 퉁명을 부리였다.

《팔자가 무슨 놈의 팔자란 말요. 그날 그녀석들 료리 처먹이려고 돈만 가지고 가지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다리병신이 되지는 않았을걸!》

마누라는 또 잔소리를 했다.

《글쎄 기왕 그렇게 된걸 뭘 자꾸 되씹구되씹구 허우?》

《당신이 내 말은 그만두고 자식들의 말을 조금이라도 귀담아들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게요! 이제는 허는수없이 벌거숭이 알거지가 됐지 뭐유!》

마누라는 한탄조로 말하며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리고는 다시 《영옥이란 년은 대체 어디 가있을가? 오죽이나 집에 들어오고싶겠소. …》 하고 고개를 벽쪽으로 돌리였다.

과년한 딸의 행방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두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손종모는 영옥이가 그날 밤 집을 나가버렸기때문에 일이 뒤틀린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라 《그년은 자식이 아니라 우리 집안 원쑤요! 생각지두 마우!》 하고 도리여 마누라에게 핀잔을 주었다.

《어찌 당신은 자식을 원쑤라고 합니까? 그 자식을 어떻게 키웠다구! 생각해보시구려. 난 집안이 망했으면 망했지 자식신세를 망치고싶진 않아요. 그년이 정말 그런 위험을 모면하려구 재빨리 잘 나갔지 뭡니까?》

딸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은 무뚝뚝한 손종모의 마음을 어느 틈에 슬그머니 흔들어놓고말았다.

벌써 5~6일간이나 집을 나간채 소식이 전혀 없는 영옥의 신변이 불안스럽고 걱정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만일 영옥이가 그날 밤 제때에 집을 뛰쳐나가지 않았던들 그 미군장교놈에게 반미분자로 몰리여 끌려갔을것이고 또 그날 밤 모면을 했다 치더라도 집에 들어와있었으면 거의 날마다 한두번씩 그애의 행방을 알려고 들락거리는 형사놈에게 끌려가 구금을 당했을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된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자식과 달라 과년한 딸자식이 하루이틀도 아니요 5~6일을… 아니 앞으로 얼마나 더 될지 모르는 세월을 누구의 집에서 자고 먹으며 피신해있을수 있겠는가?

손종모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만한 곳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 대문이 열리며 누구인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처음 보는 헙수룩한 웬 로파 하나가 들어오고있었다.

《이 댁이 손주사댁입니까?》

《네, 누구십니까?》

손종모는 웬 로파인지 의심스러웠고 호기심도 났다.

《아유, 댁을 찾느라구 이 근방에 와서 얼마나 헤맸는지 원, 찾고보니깐 아주 쉬운걸 그랬군요!》

로파는 주인이 올라오란 말도 없었으나 마루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건너방과 안방의 동정을 살피더니 사람이 없는것을 알자 치마속에서 무엇인가 부시럭거리며 편지 같은것을 꺼내여 손종모에게 내주었다.

손종모는 깜짝 놀랐다. 그 편지겉면에 《아버님앞》이라고 쓴 영옥의 필적이 얼른 눈에 띄였기때문이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곧 편지를 뜯었다.

《아버님! 그동안 얼마나 걱정하고계십니까? 어머님의 병환은 그동안 얼마나 차도가 계십니까? 당장이라도 집에 들어가 어머님의 간호, 아버님의 진지시중을 해드려야 할것이오나 저를 잡으러 들락거리는 놈들때문에 어떻게 집에 안심하고 들어가겠습니까?

아버님! 왜 이 딸이 오래비와 마찬가지로 집을 버리고 피신해나와야 할 처지에 이르렀습니까? 이것은 과연 누구때문입니까? 아버님! 군수공장일이 저때문에 틀려져도 너무 걱정마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혹시 식모를 구해두셨는지요? 저는 이곳에 안전하게 피신하고있습니다. 아버님! 궁금하시겠지만 이 할머니에게 자세한 말을 너무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구 저의 외투와 옷 몇가지를 이 할머니편에 꼭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외투안에는 시민증과 시계가 들어있습니다. 시계도 꼭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손종모는 편지를 다 읽고나서 잠간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마누라에게 그 편지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얼른 건너방으로 들어가 외투와 옷 몇가지를 싸보내려 했지만 이내 굳어지고말았다. 영옥의 외투와 옷가지들이 들어있는 옷장에 철썩 붙어있는 차압딱지가 새삼스럽게 눈에 띄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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