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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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 내가 결국 어리석은 놈이였소. 숫제 망하면 그대로나 망하지, 무슨 군수공장을 한다구…》

손종모의 목소리는 흥분되여있었다.

《글쎄 락심마시우. 혹시 또 잘되는수도 있습넨다. 세상일이란 안되다가도 되는수가 있으니깐… 하하하…》

김치선은 껄껄 웃으며 얼렁뚱땅하려들었다.

《나는 이제 그 일이 다시 되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어찌 다된 일이 이렇게 틀어지는 법이 있습니까? 교장선생,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래 한 나라 군부에서 하는 일이 미군장교 일개인의 전화 한마디로 좌지우지된다는게 이게 될말입니까? 나는 이렇게 될줄 알았더라면 교장선생의 말을 듣지 않았을것이고 내 가재도구를 팔아서 뢰물을 바치지도 않았을것입니다. …》

손종모는 침통한 어조로 말하고는 잠간동안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구 실상은 이미 퇴학한거나 마찬가지지만 영옥이란 년을 학적부에서 제적해주시오. 반미분자로 몰려 행방불명이 된 년이 언제 나타나 다시 학교에 다니겠소. 차라리 출학당하기 전에 미리 자퇴하는게 마땅할것이오!》

손종모의 음성은 심각하게 울렸다.

《아, 글쎄 손선생! 너무 비관마십쇼!》

김치선은 조금도 민망해하는 기색이 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손종모를 바라보았다.

손종모는 그와 더 담화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밖으로 휙 나와버렸다.

실로 그는 두눈앞이 캄캄하였다. 맥이 풀린 두다리로 휘청휘청 걸으며 그는 집으로 향하였다.

자기 집 골목에 들어서자 공장대문앞에는 간판쟁이가 와서 이미 붙어있던 간판을 떼고 새로 써온 간판을 달고있었다.

《륙군본부 지정공장 동아피복사》라고 크게 쓴 간판이였다.

손종모는 이 간판을 며칠전에 간판집에다 주문했고 되는대로 가지고 와서 달아달라고 부탁했던것이였다.

《아, 안녕합쇼. 어디 갔다오십니까? 아주 간판을 새로 거니 척 어울립니다그려. 사람이란 얼굴이 잘나야 되듯이 집도 간판이 좋아야 돋뵈게 되는군요. …》

간판쟁이는 자기네 간판기술을 자랑하였으나 손종모는 벌써 이 간판과는 인연이 없는터라 간판을 바라볼 생각도 않고 고개를 수그린채 대문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집안에 들어서자 로동자들이 아직 남아서 자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손종모는 재삼 그들을 대하기가 미안했다.

《다들 돌아가시구려. 물품인수를 못했쇠다.》

손종모가 락심한 표정으로 들어오는것을 본 로동자들은 일이 틀어진것을 확신하고는 실망에 젖어들었다.

《주인어른 간판값 주십쇼!》

간판쟁이는 영문도 모르고 대금을 요구했다.

손종모는 창피한대로 두말없이 양복을 뒤져 돈을 꺼내주었다.

간판쟁이가 나가고난 뒤 손종모는 대문간으로 나가서 간판을 떼여들고 들어와 광문을 열고 아무렇게나 팽개쳐버렸다.

이때 밖에서 《손주사 겝쇼?》 하는 소리와 함께 별안간 양복쟁이 서너명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앞장서서 들어오는자는 중절모를 쓰고 외투를 입었다.

그자는 외투단추를 끌러놓고 얼굴이 불그레한것이 낮술에 취해있는것 같았고 뒤따라 들어온 사람은 미군잠바에 당꼬바지를 입고 가방을 들고있었다.

또 계속해서 회색두루마기를 입은 늙수그레한 건물매매 거간군들이 3~4명이나 따라들어왔다.

앞장서서 들어오는 중절모는 고리대금회사인 《한국산업사》 지배인 최가였고 당꼬바지를 입은자들은 재판소에서 나온 집달리들이 틀림없었다.

《안녕합쇼, 손주사!》

《어서 오슈.》

손종모는 최가를 마루로 안내했다.

《그래 손주사! 오늘 내가 손주사를 찾아온 목적을 아시겠소?》

《알겠쇠다.》

손종모는 이미 자기에게 닥친 운명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래 어떻게 하시려우? 오늘이 반제기한이 3개월이나 초과한 날이외다. 오늘은 우리 피차간에 끝내고맙시다!》

최가는 랭정한 표정으로 손종모를 노려보았다.

손종모는 6개월전에 3개월기한으로 자기 주택과 공장건물을 최가가 지배인으로 있는 《한국산업사》에 저당잡히고 월리 2할변으로 200만환을 융자했던것이였다.

그동안 손종모는 원금은 건드려보지도 못하면서도 매월 리자 40만환씩은 꼭꼭 갚아왔던것인데 지난달 한달을 갚지 못했다는 리유로 최가가 오늘 재산차압을 하려고 온것이 분명하였다.

《결국 한달 리자 못 물었다구 이렇게 막보러 오셨소? 허허허.》

손종모는 서글프게 한바탕 웃었다.

《아니, 손주사! 그게 무슨 말씀이요? 막보다니? 아, 그동안 석달씩이나 기한을 봐주었으면 고마운줄은 모르고…》

최가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바깥을 내다본다.

《흥! 고맙쇠다. 그래 석달씩이나 봐주었다 하지만 그러면 리자는 한푼도 안 받고 봐주었소?》

손종모는 흥분되지 않을수 없었다.

《아, 봐주구말구! 상대방이 손주사가 아니였더면 여태까지 놔둘게 뭐요. 우선 애당초에 매도증서를 받고 대금했을 일이지…》

《흥, 고맙소. 아무리 원, 고리대금회사이기로니 세상에 이럴수야 있소?》

손종모는 담배를 피워물고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최가를 따라들어왔던자들은 제 맘대로 집안팎을 이구석저구석 기웃거리고 살펴보면서 저희들끼리 건물을 평가하느라구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공장내부에까지 들어갔다나왔다 하였다.

손종모는 두눈에서 쌍심지가 불끈 솟았다.

《힝, 여보 최주사! 돈 200만환에 손종모를 이렇게 괄세하기요? 너무 그러지들 마슈.》

《괄세는 뭘 괄세라구 그러시오. 우리 서로 계약대로 하자는거지.》

《맘대루 하시우. 당신네 회사에 저당된 부동산이니 내게 무슨 권리가 있소?》

《아니, 그렇게 말구 똑똑히 말하시오. 오늘안으로 원리 합계 다 지불하시려우? 어떡하시려우?》

최가는 은근히 위협해나섰다.

《다 망한 놈이 지불할게 뭐가 있겠소. 이제는 내 모가지밖에 없소.》

손종모는 약이 올라 배짱을 내밀었다.

최가는 손종모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였던지 뜰아래로 내려갔다.

뒤를 따라온자들은 최가를 둘러싸고 저마끔 서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자들은 손종모의 주택과 공장건물에 대한 경매처분에 가격을 매기려고 온 《한국산업사》와 결탁되여있는자들이였다.

그자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공장안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가 돌아치더니 얼마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손주사! 건물가격이 100만환이상 더 올라가지 않소! 부득이 동산도 차압해야겠소!》

최가는 느물거리며 울분에 차있는 손종모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뭣이 어쨌다구? 그래 내 집이 아무리 원, 그래 100만환짜리밖에 안된단 말이요? 멀쩡한 불한당놈들 같으니라구. …》

손종모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주먹을 불끈 쥐였다.

벌써부터 집달리 두놈은 용지를 들고 오락가락하며 동산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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