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은 또다시

6

 

영옥은 오늘 밤 한선생의 집에 이렇게 학부형들이 많이 와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뿐만아니라 그들이 홍선생의 석방을 위하여 한선생의 집으로 모여든것도 영옥이에게는 퍽 이상하고 신기하게 생각되지 않을수 없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키우는데 있어서 학부형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한선생이였다. 그런것만큼 연회사건이후에 나타난 홍찬수의 면직처분, 동맹휴학, 학생검거, 홍찬수의 투옥, 미군장교구락부에 학생제공 등등… 일련의 비상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학부형들은 짝을 지어 혹은 혼자서 학교로 가지 않고 한선생의 집으로 직접 찾아와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또 자기네 의견들을 말하기도 했다.

오늘 밤 모인 학부형들은 홍찬수의 무죄석방을 요구한 진정서에 서명날인한 많은 사람들중의 일부였다.

영옥은 건너방에 가만히 앉아서 안방에서 도란거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한선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옥은 귀를 기울였으나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학생은 왜 그동안 한번두 안 왔수?》

식모가 불쑥 물었다.

《올새가 어디 있어야죠. 어머니가 입원을 하시고 해서…》

《요즘은 학생들두 많이 오고 학부형들도 그칠 사이없이 오신다우.

난 학생이 그동안 잘 안 오기에 웬 일인가 했지.》

식모는 좀 수다스러운편이였다.

영옥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동안 한번도 이렇게 한선생의 집에 찾아온 일도 없었고 또 다른 학부형들과도 아무런 래왕이 없었던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마루 하나를 사이에 둔 안방에서는 6~7명의 학부형들이 한선생과 함께 모여앉아있었다.

그들은 거의다 홍찬수의 공판정에 나갔던 학부형들이였다.

초저녁에 손종모를 방문하고 온 오변호사와 지선생도 이들속에 끼워있었다.

《에- 이젠 마지막문제로 넘어갑시다.》

《가만있수! 마지막문제로 넘어가기 전에 지금까지 이야기한것들을 다시한번 따지고 넘어가야겠쇠다.》

어떤 할머니 하나가 말을 꺼냈다.

《그럽시다. 따지고보면 간단합니다. 첫째, 홍선생석방운동비를 자기가 책임진대로 거두어서 모레까지 오변호사에게 낼것. 둘째, 새로 진정서를 작성해서 신문사에 보내여 사회여론에 호소할것… 그렇습니다.》

젊은 학부형 하나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럼 마지막문제로 넘어갑시다. 마지막문제는 학교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과년한 학생들을 미군장교구락부에 매주 토요일마다 20여명씩 강제로 끌고 가서 그놈들의 노리개감으로 제공하고있다는 사실을 일반 학부형들에게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폭로하여 교장 김치선이하 간부교원들을 배척하기 위한 학부형회를 개최하자는 문제입니다.》

《암, 회의를 개최해야지. 그러나 먼저번 사건에도 학부형회를 개최 못하게 경찰이 간섭했는데 이번에는 집회가 잘될가?》

한 학부형이 말했다.

《되든 안되든 해보고 봅시다. 집회를 못하게 한다면 신문지상에 성명서를 내여 사회여론에 호소합시다.》

오변호사가 말했다.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한선생댁에 모인것을 남이 알아서는 안됩니다. 비밀집회로 몰릴수 있습니다.》

오변호사는 학부형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걱정들 마십시오. 우리 집에 오신것을 비밀집회라고 할 놈은 없습니다. 아, 학부형이 선생을 방문하는것이나 선생이 학부형을 초대하는것을 비밀집회라고 하는 놈은 대갈통을 깨놓지요.》

한선생은 세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 이제는 방안이 루추하지만 우리 집에서 주무셔야지 가시지는 못하십니다.》 하며 방안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깔아주고는 건너방으로 갔다.

영옥은 그때까지 그대로 앉아 한선생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래 영옥이, 오느라고 고생하지 않았니? 통행금지시간에는 다니지 말아야 돼! 요새 또 무슨 삐라사건이 있어서 비상경계를 한다나부더라.》

한숙경은 영옥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듯 걱정스럽게 말했다.

영옥이는 무슨 이야기부터 했으면 좋을지 몰라 잠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김치선이와 스틸맨에게 쫓기여 피해오다가 경찰의 끄나불들에게 걸려서 고생한 이야기를 대강 말했을 때 한숙경은 놀라며 흥분된 목소리로 위로해주었다.

《얘, 잘 피해왔다. 가만있거라. 학부형회에서 폭로해야지.》

《학부형회에서 폭로하는건 나중의 문제구 우선 당장 급해요. 어디 집에 안심하고있을수 있어야죠. 또 병원에도 불안해서 못 있겠어요.》

영옥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디 연구해보기루 하구, 어서 자자.》

한숙경은 영옥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영옥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는 어머니가 병원에서 얼마나 걱정을 하고있을가 하고 생각하니 몹시 안타까왔다.

지금쯤은 벌써 미음을 쑤어 들고가 어머니에게 권했을 시간이건만 오늘은 종일토록 어머니가 굶게 되리라고 생각하니 불안하고 걱정이 되여 견딜수가 없었다.

그러나 얼른 집으로 돌아가 미음을 쑤어가지고 병원에 갈수도 없고 또 병원으로 먼저 불쑥 들어갈수도 없었다.

집에나 병원에는 반드시 어떤 놈이 와서 자기를 잡으려고 노리고있는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한선생네 집에 처박혀있을수도 없었다.

그것은 우선 학부형들과 학생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한선생네 집이 피신처로서 적당한 곳이 아니기때문이였다.

이사람저사람의 입에서 소문이 퍼져 한선생네 집에 자기가 숨어있다는것이 학교에라도 알려지게 되면 무엇보다도 한선생에게 해가 미칠것이고… 그렇게 되는 날이면 홍선생의 석방운동이나 또 앞으로 학부형들이 하고저 하는 일에 큰 지장을 가져오게 될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던것이다.

영옥은 이 생각에 벌떡 일어섰다.

《아니, 너 왜 그러니? 가려구 그러니?》

한선생이 놀라며 물었다.

《네, 가겠어요. 병원과 집에 전화를 해봐야겠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얼마나 걱정하실는지 몰라요.》

《음! 그래, 그럼 조심해라. 위험할것 같으면 언제든지 오너라, 응?》

《네.》

영옥은 대답은 했으나 다시 또 한선생네 집을 찾아오고싶지는 않았다.

이윽고 그는 거리로 나왔다.

어느 점포로 들어가 전화를 빌렸다. 그는 먼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누구시오?》

영옥은 깜짝 놀랐다.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라 틀림없이 자기 집에 가끔 오는 동대문경찰서 형사 강태근이의 음성이 분명했던것이다.

그놈이 어제 밤 미군장교놈의 명령을 받고 자기를 체포하려고 와있는것이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옥은 자기의 음성이 알려지지 않게 수화기를 그대로 놓아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거리를 잠시 걸었으나 이내 발길을 멈추고말았다.

이미 악몽의 하루밤은 지나 날은 밝았지만 또다시 캄캄한 밤과도 같이 영옥의 앞길은 어두웠고 어떤 천길만길이나 되는 절벽끝에 다달은것만 같았다.

과연 어디로 피신을 해야만 하는가. …

영옥은 앞길이 막연하였으나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좁은 골목으로 걸어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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