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녀학교

5

 

찬수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는 본관 교실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찬수는 잠간동안 발길을 주춤하고 서서 그 근방을 자세히 살펴봤다.

아니나다를가 구석진 곳에 우아래 하얀 옷을 입은 녀학생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흐느껴울고있었다.

《누구야?》

찬수는 가만히 소리쳤다. 녀학생은 벌떡 일어나 찬수에게 인사를 했다.

찬수는 녀학생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아, 영옥이야? 왜 집에 안 가고있어? 어서 가라구!》

《아까 선생님 놀래셨지요? 그런 짐승같은 놈들이 어디 있어요. 권총을 막 쏘아대니…》

영옥은 눈물어린 목소리로 찬수를 바라보았다.

《자, 어서 옷을 바꿔입고 집에 가야지. 밤이 늦었어.》

찬수는 영옥이를 데리고 본관안으로 들어섰다.

치마저고리를 벗고 교복을 바꿔입기 위하여 재봉실로 들어간 영옥은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최선생의 강요로 진한 화장을 하여 입술에는 쥐잡아 먹고난 고양이주둥이처럼 새빨간 칠까지 한 자기의 얼굴은 흡사 카페녀급이나 기생같이 보이였다. 게다가 장교놈이 강제로 먹인 술에 취해 두눈은 시뻘겋게 보이였고 얼굴에는 눈물이 흘러 얼룩이 졌다.

영옥은 갑자기 진저리가 쳐지며 소름이 돋았다.

연회가 끝날무렵 얼른 빠져나오려 하였으나 미군장교놈이 짐승같이 달려들어 자기 몸을 덥석 안고 운동장으로 뛰여나오며 그 더러운 주둥이로 자기의 얼굴을 문지르려 하던 순간의 악몽이 떠올랐던것이다.

영옥은 눈을 감고 머리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도 력력한 그 순간의 기억을 잊어버리려 함이였다. 그리고 그는 얼른 교복을 바꾸어입고 숙직실곁 수도로 가서 꼭지를 틀어놓고 세면을 했다.

얼굴을 씻어 본얼굴로 돌아왔으리라고는 생각되였으나 아직도 가시지 않은 술기운에 그는 량볼이 홧홧 달고있었다.

영옥은 찬수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숙직실문을 가만히 열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쳐들고 찬수에게 자기 얼굴을 내보이기가 몹시 부끄러웠다.

《선생님, 안녕히 주무세요.》

영옥은 고개를 얼른 들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려 했다.

《음, 혼자 가지 말고 박로인하고 같이 가. 별일이야 없겠지만 밤거리엔 부랑자가 많으니깐…》

찬수는 박로인을 대동해서 영옥을 집으로 돌려보내였다.

숙직실안은 또다시 고요해졌으나 소강당쪽에서는 학생들이 떠들썩하는 소리, 코노래 부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들은 연회장의 뒤설겆이를 하고있는 모양이였다.

찬수는 박로인이 영옥이를 큰길까지 바래다주고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고 잠을 자지 않고 신문만 뒤적거리였다.

어디서인지 전화가 따르릉 왔다. 어느 학부형에게서 온 전화였다.

《연회가 끝났습니까?》

《네.》

《언제쯤 끝이 났습니까?》

《벌써 한시간전에 끝났습니다.》

《네? 한시간전에요? 그럼 학생들은 다 보내셨습니까?》

《네.》

찬수는 이렇게 대답은 했으나 선뜻 머리에 미군장교들이 일부 학생들을 강제로 태워간 사실이 떠오르며 이 학부형은 그런 학생의 학부형이나 아닌가 생각되였다.

《아니, 그럼 어떻게 된셈입니까? 아직도 우리 집 아이가 들어오지 않으니… 미안하지만 혹시 학교안에 남아있지나 않나 좀 알아봐주실수 없습니까?》

학부형의 목소리는 안타깝고 초조했다.

《네, 알아봐드리죠. 학생이름이 뭡니까?》

《네, 졸업반 2조 오영애입니다.》

《잠간만 좀 기다리십시오.》

찬수는 수화기를 떼여놓고 기숙사쪽으로 바삐 걸어가보았다. 그러나 오영애는 벌써 가고 없었다. 뒤설겆이를 하고있는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오영애는 미군찌프차가 태워갔다는것이다.

찬수는 바삐 돌아와 수화기를 들고 사실을 말했다.

《뭣이요? 미군찌프차에?》

학부형은 불쾌한 목소리로 깜짝 놀라면서 전화를 딱 끊어버렸다.

찬수도 좀 불쾌해졌으나 학부형으로서 당연히 흥분되고 놀랄 사실인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가 지난 뒤였다. 또 전화가 따르릉 울리였다. 수화기를 든 찬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수화기에서는 란잡스러운 캬바레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듯 한 저속한 쟈즈음악이 울려나왔던것이다.

《홍선생이요?》

《네.》

《나 교장이요. 아까 놀랬지? 군인기분에 그럴수도 있는것이니깐 과히 노여워마시오. 사실은 오늘 밤 연회에 홍선생도 참석하기로 되였던것인데 홍선생이 숙직당번이 돼서 유감스럽게 됐구려.》

수화기에서 울려나오는 김치선의 목소리는 제법 부드러웠는데 그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오늘 밤 일부 학부형들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소? 앞으로 전화가 반드시 올게요. 오거든 연회가 좀 늦게 파했기때문에 일부 학생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기숙사에다 재울 작정이라고 말하시오. 그래야 학부형들이 안심하지 않겠소? 꼭 그렇게 말해주시오!》

《네.》

찬수는 교장의 지시를 들으며 기계적으로 대답은 했으나 갑자기 분격이 치받쳐올랐고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과연 교장지시대로 학부형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대답을 해야 옳을가? 그렇지 않으면 아까 오영애의 학부형에게처럼 사실대로 알려주어야 옳을가? 찬수는 자기 머리로써는 얼른 판단할수 없었다.

그러나 과년한 딸들이 밤이 이슥토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것이 궁금하고 불안스러워서 전화를 걸어오는 학부형들을 어떻게 교장의 말대로 거짓말로 속여넘길수 있으며 또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그들에게 사실대로 미군장교들이 자기 차에 태워가지고 갔다고 솔직하게 말할수 있을것인가?

찬수는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괴로웠다. 전화가 아예 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또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따르릉… 하고 요란스럽게 울려왔다.

찬수는 생각하던 끝에 수화기를 떼여놓고말았다.

이때 갑자기 숙직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앞치마를 걸친 녀학생 둘이 손에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쟁반우에는 흰종이가 덮여있었다.

《선생님, 이거 잡수세요.》

두 녀학생은 쟁반을 찬수앞에 내밀고 종이를 벗기였다.

연회에서 먹다남은듯 한 과자와 료리들이 담겨져있었다.

《아니야. 나 이거 별생각 없으니 도루 가져가지.》

찬수는 기분이 그다지 좋지 못했으나 내색을 하지는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찬수의 기분을 어느 정도 짐작했는지 《이거 선생님 드리려구 우리가 따로 담아두었댔어요. 기분나쁘게 생각마시고 잡수세요.》 하고 한 녀학생이 방긋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무슨 기분 나쁜게 아니야. 원래 난 양식이나 양과자를 좋아하지 않아.》

찬수는 태연하게 말하며 굳이 사양하였다.

이때 박로인이 들어왔다. 그는 무엇인가 신문지로 싼 뭉테기를 손에 들었다.

《아니, 학생들두 딱하지. 선생님께 무얼 갖다드릴 맘이 있으면 일찌감치 한상 갖다드려야지 뒤설겆이 다하고나서 가져오는걸 누가 잡술거라구 그래? 어서 학생들이나 가져다 먹으라구.》

박로인이 날카롭게 한마디 쏘아붙이였다.

《아이참, 이게 무슨 찌꺼긴줄 아세요?》

학생 하나는 성을 왈칵 내며 나가버리고 한 학생은 어름어름하다가 열적은듯이 슬그머니 나가버리였다.

박로인은 학생들이 가져온 쟁반 두개를 한쪽귀퉁이로 몰아놓고 자기가 들고 온 신문지를 펼쳐놓았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군고구마였다.

《자, 선생님! 우리 이거나 듭시다.》

박로인은 차잔에 차를 따라서 찬수에게 권했다.

찬수는 빙그레 웃으며 군고구마 한개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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