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은 또다시

5

 

영옥은 어둡고 좁은 골목을 지나 다시 큰 거리로 끌려나왔다.

이윽고 그는 순경이 총을 메고 버티고 서있는 파출소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사무실에는 정복을 입은 순경녀석들과 미군잠바를 입은자들이 우글거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영옥이를 쏘아보았다.

《야- 비진다네.》(야- 미인이군.)

한놈이 일본말로 주어섬기자 《사이상, 오늘 밤 수지 맞았군!》 하고 다른 놈이 불쑥 나서며 싱글벙글 웃는다.

《사이상! 그런데 이게 어디 밀가루야? 돈암교부근에 있는 밀가루 아니야?》

또 한놈이 영옥의 얼굴을 뚫어지게 흘겨보았다.

영옥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으나 어쩔수없이 못 들은듯 입을 다물고 서있을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이윽고 잠바를 입은 한놈이 벌떡 일어나더니 영옥의 팔목을 잡아끌고 사무실로 통한 뒤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책상이 하나, 의자가 두세개 놓여있었고 방구석에 목총과 긴 격검대, 야구방망이도 놓여있었다.

《너, 똑바루 말해! 밀가루냐? 빨갱이냐? 밀가루면 놔줄거구 빨갱이면 알지?》

그놈은 영옥이의 표정을 날카롭게 쏘아보면서 잠바주머니에서 양담배갑을 꺼내여놓고 담배를 피워문다.

《그런 말씀은 삼가하세요! 나는 우리 어머니가 위급해서 심부름을 가는 길이예요. 어서 놔주세요!》

영옥은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놈은 들은체만체 하고 《통행금지시간에 통행하면 어떻게 된다는것 알지? 어서 벌금내라! 벌금 못 내면 류치장으로 가야지.》 하고 퉁명스럽게 영옥을 쏘아보았다.

《글쎄 누가 통행금지시간에 다니고싶은 사람이 있겠어요. 우리 어머니가 위독해서 그래요. 어서 놔주세요. …》

영옥은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때 별안간 문짝이 화닥닥 열리며 한놈이 청년 하나를 데리고 들어섰다.

순간 영옥은 깜짝 놀랐다. 그 청년은 바로 김만국이였던것이다.

영옥은 한편 반가운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이런 장소에서 그를 아는체 할수는 없었다.

만국이도 영옥이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보였으나 어느덧 모르는체 하고말았다.

《어디를 가는거야?》

《집에 갑니다.》

《어디를 갔다오는거야?》

《의정부에 갔다옵니다.》

《이 자식아! 거짓말마! 너 돈암동에다 삐라 몇장이나 붙이고 오는 길이냐?》

《그런 말씀마시오. 식량을 구하러 갔다오는 길입니다.》

《그럼 이 자식아! 빨랑빨랑 집에 가지 왜 벽에 붙은 삐라를 읽고있었니?》

《누가 삐란줄 알았나요? 혹시 취직광고나 아닌가 하고 무심히 들여다봤죠!》

《이 자식아! 뭐? 취직광고?》

그놈은 다짜고짜로 김만국의 뺨을 철썩 갈겼다.

그리고는 만국이가 들고 들어온 조그만 보퉁이를 가로채여 끄르기 시작했다. 보리쌀이 두어되, 밀기울이 서너되가량 들어있었다.

《이건 어디서 났어?》

《의정부에 있는 일가집에서 가져오는겁니다.》

《통행금지시간에 통행하면 어찌된다는것 몰라?》

《바삐 온다는게 먼길이 돼서 늦었습니다.》

《돈 내!》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보퉁이라도 털어내놔!》

김만국은 어처구니가 없어 서글프게 웃었다.

《왜 못 내놓겠단 말인가? 내놓기 싫으면 류치장신세 져야지.》

그놈은 은근히 김만국을 위협하더니 벌떡 일어나며 《자, 가자!》 하고 그의 등을 밀고 다시 문밖으로 나가려 했다.

《여보게, 이것두 같이 넘기지그래?》

영옥이를 취조하던 놈이 소리쳤다.

《아니, 여보세요, 내가 무슨 죄가 있다구 경찰서로 넘길려구 그래요? 어머니가 위독해서 심부름가는것도 죄예요?》

영옥이는 악이 올라 쏘아붙이였다.

《잔소리말라! 너 암만해도 태도가 수상해. 요즘 빨갱이들이 또 슬금슬금 대가리를 쳐들고 일어난다더니만… 어서 따라가란 말야!》

그놈은 영옥의 등을 떠밀어 김만국을 끌고 가려는 놈에게 내맡기였다.

《어서 나와!》

김만국을 끌고 가려던 놈은 카빈총을 메고 서서 영옥과 만국을 앞장세운 다음 성북경찰서쪽으로 향하였다.

어느 개천가를 지나치게 되였을 때였다.

김만국은 캑 하고 가래침을 뱉는체 하며 약간 옆으로 빠져 주춤거리다가 어느 틈에 카빈총을 멘 놈을 개천바닥으로 홱 밀쳐버렸다.

그놈은 두어길이나 낮은 개천바닥으로 공중제비로 나떨어지고말았다.

오물이 흐르는 진창바닥에 처박혀 얼굴이며 전신이 감탕투성이가 된 그놈은 좀처럼 기여나오지 못하고말았다.

《어서 빨리 갑시다!》

김만국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옥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그는 만국이를 따라갈수도 없어서 한숙경의 집골목을 향하여 걸음을 빨리 옮기였다.

마치 그놈이 개천바닥에서 기여올라와 자기뒤를 쫓아오는것만 같았다.

영옥은 떨리는 걸음으로 무사히 한숙경선생의 집앞에 이르렀다.

《선생님! 선생님!》

영옥은 안으로 잠긴 대문을 요란스럽게 흔들었다.

《누구야?》

한숙경선생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저예요! 얼른 대문 좀 열어주세요!》

《응, 영옥이냐?》

한숙경은 놀란 음성으로 얼른 뛰여나와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래, 너 벌써 돈이 준비되였니?》

한숙경은 영옥이가 약속한 자금을 가져온줄만 알고 반가이 맞아들이였다.

영옥은 뜰우로 올라서다가 깜짝 놀랐다.

여러 컬레의 신발이 놓여있었기때문이였다.

《자, 건너방으로 가자구나.》

한숙경은 영옥을 데리고 건너방으로 들어갔다.

건너방에는 식모가 혼자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있었다.

《안방에는 학부형들이 오셨다. 모두 홍선생님때문에 걱정하는 학부형들이다.》

한숙경은 먼저 영옥을 안심시키려는듯 조용히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좀 앉아있거라. 내 하던 이야기를 마저하고 와야겠다.》 하고 안방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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