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은 또다시

4

 

영옥은 우물쭈물하고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교놈이 김치선이를 앞장에 세워가지고 병원에까지 찾아오는것은 틀림없이 자기를 끌고 가려 함이 분명했기때문이였다.

《어머니! 나 밖에 잠간 갔다올게요.》

영옥은 초조한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말하고는 재빨리 복도로 나왔다.

아래층 현관을 통하여 2층으로 올라오고있는 그들의 발자국소리가 또렷이 가까와졌다.

영옥은 그자들의 눈에 띄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얼른 어디로 피하려 하였으나 당장 피할 곳이라고는 이웃방 입원실밖에 없었다.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남의 입원실로 문기척을 할 사이도 없이 불쑥 문을 열고 뛰여들어가고말았다.

《실례합니다. 전 바루 이웃방 입원실에 있어요. 방금 손님이 와서 그러는데 잠간만 이 방에 있게 해주세요.》

영옥은 태연스럽게 말하느라고 했으나 초조한 태도는 감출수가 없었다.

방안의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와 간병원은 웬 영문인지 몰라 눈이 둥그래지며 잠시동안 그를 수상하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김치선이와 장교놈이 영옥의 어머니 입원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였다.

영옥은 이 틈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얼른 그 방을 나와 쏜살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무작정 어둑컴컴한 병원뒤 비탈진 언덕으로 올라갔다.

컴컴한 병원 후원은 아카시아나무가지가 서로 얽히여 영옥이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기도 했고 또 얼굴을 긁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어느 큰 나무등걸아래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이윽고 영옥은 자기가 앉아있는 곳도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입원실내에서 자기를 찾다가 실패하고 그대로 간다치더라도 병원 숙직원의 눈에 띄우면 수상한 인물로 혐의를 받을것이 틀림없었기때문에 영옥은 슬그머니 일어나 다시 등성이로 올라가서 좁은 비탈길을 따라 걸어내려갔다.

이때 갑자기 통행금지시간을 알리는 고동소리가 고막을 찢을듯이 울리였다.

영옥은 어디로 갈가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오늘 밤 자기 집처럼 찾아갈 곳이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조선희나 백인자의 집으로 갈가? 그러나 그곳은 거리도 멀고 또 자기를 오해하고있을수 있는 그들에게 무슨 낯으로 찾아갈것인가?

그러면 어디로 갈가? 그는 역시 자기 집이나 병원으로 들어가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옥은 곧 자기의 그 생각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자들이 병원에 와서까지도 실패했기때문에 반드시 경찰에 의뢰하여 자기를 체포해갈것은 명확한 일이 아닌가?

영옥은 이런 생각에 걸음이 절로 주춤해지고 멈추어져 움직일수가 없었다.

그는 실로 오도가도 못할 처지에 놓이고만것이였다.

조선희나 백인자의 집에라도 갈수밖에… 그러나 자기 몸에는 전차비도 없지 않은가?

선뜻 생각나는 곳이 있었다.

그것은 한숙경선생의 집이였다.

우선 오늘 밤 그 집에 피신하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한숙경선생의 집도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지는 않았다.

동대문을 지나 창신동으로 들어서서 신설동으로 빠져나가자면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만 했다.

영옥은 용단을 내리고 뒤골목으로 피해가다가 한참만에 넓은 거리에 이르렀다. 이제는 피해갈수도 없고 반드시 거리를 가로질러야만 했다.

거리에는 사람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이따금 따꿍 따꿍 하고 카빈총소리가 바로 가까운 곳에서 또 먼 거리에서 들리였다.

먼지를 일으키며 무장한 미군병사들을 태운 미군용차들이 휙휙 지나쳤다.

조선녀자를 싣고 달리는 미군놈의 찌프차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였다.

영옥은 차들이 지나칠 때마다 남의 집 처마밑에 바싹 들어가 어둠속에 숨군 했다.

그는 미군놈의 차들이 뜸한 틈을 타서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돈암동쪽으로부터 그가 걷는 넓은 거리를 향하여 《북벌의 노래》를 부르며 행진해오는 《국군》병사들의 대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들은 영옥이가 가는 길목앞을 지나갔다.

그는 이전과 같이 어느 처마와 처마사이의 어둠속으로 들어가 몸을 감추었다.

미군이 쓰다버린 전투모를 쓰고 미군이 신다버린 군화를 신고… 미군의 군복우에 미군의 총을 둘러멘 《국군》대렬은 영옥의 눈에 새삼스럽게 증오스러웠다.

그들은 거의다 신병이였다. 그들은 우이동방면으로 끌려가 전쟁연습을 하고 오는지 몹시 피곤해보였다.

앞에 선 장교 한놈이 고함을 꽥 지르며 《용기를 내라! 왜 노래가 자꾸 속으로 기여들어가?》 하고 호통을 치자 신병대렬은 갑자기 목소리가 굵어졌다.

영옥은 귀에 익은 그들의 노래가락의 한구절을 듣자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자기 오빠 영준이가 만일 강제징병에 끌려갔더라면 저렇게 끌려다니며 저런 노래를 불러야 할것이 아닌가? 미군놈들은 왜 저렇게 남조선청년들을 제놈들의 대포밥으로 리용하려 하는가?

영옥은 이런 생각을 하며 큰 거리를 얼른 건너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이 순간 갑자기 어두운 골목안에서 《누구야? 섯!》 하고 고함을 꽥 지르는 소리가 들리였다.

영옥은 깜짝 놀라며 발길을 주춤했다.

《손들어라!》

미군잠바를 입고 보총을 쥔 녀석이 영옥의 앞가슴에 총을 겨누며 뛰여나왔다.

영옥은 두손을 들고 가만히 서있었다. 그의 가슴은 몹시 떨리기 시작했다.

《어딜 가는거야? 통행금지시간에…》

그놈은 표독스럽게 소리를 꽥 질렀다.

《바루 이 안골목에 갑니다. 우리 아주머니댁이 거기 있어요. …》

《아주머니댁? 어디 살아? 직업이 뭐야? 시민증 내라!》

다음순간 영옥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시민증을 외투 속주머니에 넣어두고 외출할 때만 외투를 입군 했는데 오늘 밤은 집에서 장교놈을 피해 나오다보니 미처 외투를 입지 못했던것이다.

《아유 어떡해요. 지금 급히 오느라구 외투안에 넣어둔채 못 입고왔어요. 우리 어머니가 병원에서 위독해서 지금 이 안골목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소식전하러 가는 길이예요.》

영옥은 태연스럽게 둘러댔다. 그러나 그녀석은 의심스럽다는듯이 《잔소리말구 나 따라와!》 하고는 영옥의 등을 밀어 큰 거리로 내세웠다.

《정말 얼른 가야 해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됐어요. 어서 놔주세요, 네?》

영옥은 울상을 하며 애원하였으나 그놈은 랭정하게 총대를 겨누며 그를 앞세운 다음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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