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은 또다시

2

 

한숙경과 지선생, 오변호사는 결국 손종모에게서 실패를 당하고 물러갔다.

그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왔었지만 손종모의 집안사정도 사정이라 어쩔수없이 더 강요하지 못하고 어두운 얼굴로 돌아가버린것이였다.

《영옥아!》

《네!》

《이리 좀 오너라!》

영옥의 귀에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렸다.

그는 부엌에서 미음을 쑤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너, 래일 퇴학원서 내고 학교 아주 그만둬라. 너두 학교에 다니기 싫어하는 판에 잘됐다. 그까짓 놈의 학교 안 다니면 나보구 어떤 놈이 와서 학부형이라고 치근덕거리지 않겠지.》

아버지는 몹시 기분이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아까 그분들이 아버지를 찾아오신게 귀찮아그러세요? 그건 아버님이 잘못 생각하신거예요.》

영옥은 뾰로통한 얼굴로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였다.

사실 그는 그동안 학교에 다니고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탓에 아버지의 그 말이 한편으로 따져보면 귀에 솔깃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 동기가 홍선생의 석방운동비를 내기가 싫은데 있다는것을 알고서는 너무도 무정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아버님은 글쎄 쓸데없는데는 큰돈을 물쓰듯 퍽퍽 쓰시면서 왜 써야만 할데는 적은 돈을 가지구두 벌벌 떠세요?》

영옥은 어느덧 아버지를 공격해나섰다.

《무엇이 어째?》

아버지가 고함을 치며 화를 낸다.

《아버님체면두 좀 생각하셔야죠.》

《이 계집애야! 지금 세상에 무슨 놈의 체면을 차리란 말이냐?》

《그래서 학부형들이 진정서에 도장을 찍으라는데두 아버지는 안 찍으셨어요?》

《흥! 이제 두고봐라. 진정서에 도장찍은 사람들 뒤가 편할줄 아니?》

《아버님은 쓸데없이 너무 소심하세요!》

《소심해서 그런게 아니야. 나두 다 생각이 있어 그런다. 우리 공장이 이제 며칠안에 간판을 다시 걸고 일을 시작할텐데… 아무리 너때문에 그렇게 됐다지만 도장을 찍어준다, 무슨 석방운동비를 내준다 해봐라. 그게 다 나중에 재미없단 말야!》

아버지의 음성은 좀 낮아졌다.

《전 군수피복공장을 다시 차리는데 반대예요. 일전에 김만국씨 같은 사람두 그거 안될거라구 반대하구 갔어요. 그 사람이 공장속을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닐거예요. 공연히 헛수고만 하시지 말라구 했어요. …》

《글쎄 얘, 네따위가 뭘 안다구 그러니, 응? 아버지 하는 일에 참견하고 나서게…》

《전 아버님이 암만해도 또 교장에게 속으신것만 같아서 그래요.》

《얘, 이 계집애야! 애비를 바보로 여겨두 분수가 있지, 그래 공연히 남에게 속아넘어갈줄 아니? 이젠 다 됐단 말이야! 래일모레면 창고에 가서 물자를 인수해오기로 됐단 말야!》

아버지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쳤다.

《왜 하필 군수피복으로 하세요? 그게 뭐 오래갈줄 아세요?》

《그래두 지금 당장 해먹을건 군수공장밖엔 없다. 민간산업을 해보겠다는 놈은 우선 나부터두 미친놈이야… 이제는 서울시내뿐아니라 시골에까지두 민수공장이란 거의다 망해버렸다는것을 알아라.》

《그렇다구 군수공장을 하세요? 세상은 요즘 아주 달라졌어요. 미국놈이 남조선에서 오래 배겨날듯싶어요? 딴 사람들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영옥이가 이렇게 간곡하게 말하자 《뭐? 뭐? 어째?》 하고 아버지는 두눈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

《아버님! 지금 쏘련에서는 대륙간탄도로케트가 나오고 인공지구위성이 떠돌고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얘, 이 철딱서니없는 계집아이야, 그게 정말인줄 아니? 그게 다 헛선전이라더라.》

아버지는 도리여 영옥을 핀잔주었다.

《아유 아버님두… 헛선전이 뭐예요. 요즘 병원에서두 의사들이니 간호부니 할것없이 야단들이예요. 미국에서는 지금 큰 소동이 일어났대요. … 미국의 과학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구요. … 이제 두고보세요. 군수피복공장이 생명이 길줄 아세요?》

영옥은 서슴지 않고 아버지를 설득시키려 했다.

《너, 도대체 어디서 그런 소리 듣고 그러니? 어리석은 소리 함부로 말아! 그래 남조선에서 미군이 그렇게 쉽게 물러갈줄 아니?》

아버지는 여전히 영옥이와 맞섰다.

《물러 안 가고 배겨나나요. 이젠 미국놈들이 전쟁을 일으킬수 없으니 더 있어봤자 별수 없을터이니까 부득이 손을 떼고 물러갈수밖에 있어요?》

《얘, 그렇게나 되면 오죽 좋겠니! 그렇지만 미국놈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우리 나라에서 물러가지 않는다. 공연히 너 쓸데없는 소리 함부로 말고 가만히 있기나 해!》

아버지는 허둥지둥 두루마기를 입고 뜰로 내려섰다.

《아버님이 병원에서 주무시겠어요?》

《나 오늘 밤은 병원에 갈 사이없다.》

《그럼 어떡해요? 열쇠 채워놓고 갈가요?》

《잔소리말구 나 올 때까지 집에 있거라. 곧 다녀올테니깐…》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밖으로 휙 나가버리였다.

영옥은 대문을 안으로 잠그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한숙경선생에게 약속한것이 불쑥 생각났으나 암만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가서 의논을 해볼가? 그러나 병석에 누운 어머니가 무슨 힘으로 변통할수 있을것인가?

영옥은 이것저것 생각다가 그래두 혹시나 하여 반침문과 벽장문을 열어봤다.

벽장에도 반침에도 그럴듯한것은 별로 없었다.

어머니가 입원한 뒤 곧바로 아버지가 자기 혼자서 알토란이는 모조리 뽑아내다 처분해버린줄을 알면서도 그는 맥풀린 눈으로 장농문짝을 제끼고 안을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장농안에서 값나갈것은 모조리 없어진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이렇게 어머니없는 사이에 의복들과 례장옷감들을 털어내여 처분한 사실을 어머니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놀랄것인가?

영옥은 생각할수록 아버지의 처사가 못마땅스러웠다.

그는 다시 생각다 못해 자기의 의복들과 소지품을 주어모아봤다.

손목시계, 만년필, 구두, 교복, 나들이치마저고리, 달린옷, 양복저고리와 치마 등까지도 꺼내여 한보퉁이를 꼭꼭 쌌다.

영옥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얼른 나가 처분해서 돈을 만들리라 생각하고 밖으로 나와 대문에 자물쇠를 채운 다음 가까운 전당포로 갔다.

그러나 전당포에서는 영옥이의 물건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어쩔수없이 좀 먼데 있는 전당포를 찾아갔으나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고물상으로 돌아다녀봤다. 그러나 고물상에서도 그것을 사지 않았다.

전당포나 고물상까지도 자금난과 불경기로 인하여 파리를 날리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옥은 어쩔수없이 힘없는 발길로 집에 돌아오고말았다.

그는 보퉁이를 끌러 옷가지들을 다시 옷장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와 미음을 데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대문을 흔드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돌아왔다.

아버지는 또 무슨 일에서 실패를 당했는지 울분에 잠긴 표정으로 마루우에 올라섰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서 갑자기 대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손선생 계시오?》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였다.

아버지가 대문간으로 나가는데 마당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옥은 소스라쳐 놀라고말았다.

교장 김치선이와 그뒤로 미군장교 스틸맨이 짐승처럼 휘청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오고있었기때문이였다.

영옥은 갑자기 불쾌감과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다.

대체 무엇때문에 김치선이가 미군장교놈까지 데리고 이 밤중에 자기 집을 찾아오는것인가? 영옥은 가슴이 떨리고 몸서리가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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