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은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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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한 전등불빛아래 흰 이불을 덮고 병원침대우에 홀로 쓸쓸하게 누워있던 영옥이 어머니는 감았던 눈을 스르르 뜨고 눈앞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영옥이가 걱정스런 얼굴로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얘, 영옥아! 이제는 내가 영영 다리병신이 됐지?》

어머니의 목소리는 힘없이 떨리였고 어느 틈엔지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있었다.

영옥은 이 순간 자기도 눈굽이 쩌릿해지며 슬픈 생각이 갈마들었다.

《너무 걱정마세요. 두다리를 다 잘라내고두 사는 사람이 있는걸 생각하셔야죠.》

《그렇지만 그 몹쓸 미군놈들때문에 팔자에 없는 다리병신이 될줄을 누가 알았니, 글쎄!》

어머니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오늘 낮에 골절이 된 다리를 수술하였던것이였다.

《어머니, 뭘 좀 잡수셔야죠.》

영옥은 어머니의 상체를 가만히 일으켜주고 집에서 끓여온 미음을 빈그릇에 따랐다. 미음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여올랐다.

병원과 집사이의 거리가 별로 멀지 않은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가 영옥은 하루 세끼 집에 가서 미음을 쑤어오거나 죽을 끓여왔고 집은 아버지와 교대로 지켜오는중이였다.

영옥은 어머니에게 미음을 마시게 한 다음 다시 등어리를 받쳐 눕히고 빈그릇들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일어섰다.

《얘, 너 오늘 밤부터는 미음도 그만두고 오지 말려무나. 이젠 잘라냈으니 뭐 그리 더 아프겠니. 아마 잠이 들면 날이 새겠지.》

어머니는 영옥이가 집에 가서 또 미음을 쑤어가지고 올가봐 걱정스럽게 말했다.

《념려마세요. 내 얼른 갔다와요.》

영옥은 입원실문을 닫고 복도로 걸어나왔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뽀뿌라나무가 초생달빛아래 가는 가지의 그림자를 땅우에 던져주었다.

영옥은 나무가지그늘을 밟다가 어느덧 주춤하고 서서 초생달을 바라보았다.

초생달은 서대문형무소앞 서쪽하늘에 걸려있었다.

영옥은 느닷없이 철창속에 갇힌 홍선생의 파리한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려 마음이 무거웠다.

어제 공판정에서 실로 짧은 순간 시선이 마주치긴 했으나 과연 홍선생은 자기가 공판정에 와있는것을 알고나 돌아갔는지? 궁금하고 안타까와 견딜수가 없었다.

《선생님! 정말 죄송스러워요. 모두가 저때문이예요. …》

영옥의 입에서는 무심코 이런 소리가 튕겨져나왔다.

변호사를 대여 홍선생의 석방운동을 벌리려던 자기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어머니의 중상으로 말미암아 수포로 돌아갔다. 더구나 어머니가 입원하면서부터 그 간호때문에 단 한번도 홍선생을 면회하러 가지 못한 영옥은 새삼스럽게 큰죄나 지은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는 어제 공판정에서 홍선생과 시선이 마주치던 순간 차라리 어린아이처럼 《홍선생님!》 하고 불러라도 보았던들 이렇듯 마음이 답답하지 않을것 같았다.

영옥은 컴컴한 골목길을 지나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선 영옥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녀자의 구두 한컬레와 남자구두 두컬레가 안방 뜰앞에 놓여있었고 안방에서는 도란도란 이야기소리가 들리였다.

영옥은 얼른 마루로 올라서서 조금 열려진 안방문틈으로 방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순간 깜짝 놀랐다. 어제 공판정에서 만난 한숙경선생과 그곁에 앉았던 점잖아보이던 로신사며 또 홍선생을 변론해주던 오변호사가 자기 아버지를 바라보며 무슨 이야기인지 긴요하게 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에- 말씀은 다 옳은 말씀이외다. 내 딸년때문에 사건이 생겼고… 또 내 딸년이 걸머질 죄를 홍씨가 대신 걸머졌다는 문제는 내 립장으로서는 시야라비야라 할수는 없쇠다. 문제는 여러분이 홍씨의 석방운동을 위해서 노력하시는데 나도 학부형의 립장에서 성의를 표시해야만 옳겠지만 지금 내 집안형편이 아주 말이 아니라는거외다. 공장은 문을 닫고 마누라는 입원했고 빚쟁이는 날마다 와서 등쌀을 피우고… 이러니 결국 여러분이 나를 찾아오지 않은것만 못하게 됐습니다. …》

손종모의 힘없는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고있었다.

《그거야 정 사정이 그러시다면 할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번 이 사건에는 학부형중에 누구보다도 댁에서 먼저 나서서 성의를 보이셔야 될 문제입니다. 우리가 부패한 사회에 살고있는만큼 어떻게 합니까? 돈의 힘으로 사람이 죽고사는 판인데야…》

지선생이 점잖게 말했다.

영옥은 이 사람들이 홍선생의 석방운동을 위해 자기 아버지를 찾아왔다는것을 깨닫자 그대로 문밖에서 엿듣고만 있을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의 어떤 요구를 랭정하게 거절하는듯 한 아버지의 태도가 그는 몹시 안타까왔다.

영옥은 방문밖에서 가볍게 기침을 하고나서 《한선생님!》 하고 불렀다.

《음, 너 왔구나!》

한숙경은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다.

《선생님… 제 방으로 좀 가세요!》

영옥은 한숙경을 데리고 건너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오늘 낮에 기어이 수술을 하셨다지? 얼마나 괴로워하실가? 응?》

한숙경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 홍선생님을 석방시키자면 돈이 필요하죠? 이제…》

《글쎄말이다. 판사헌테만 먹여서도 안된단다. 검사두 그만큼 먹여야 된대. 검사헌테 안 먹이면 판사가 무죄언도를 해도 부대공소를 해서 못 나오게 한다니깐… 그러니깐 지금 학부형들이 날 앞장세워가지고 돌아다니는거란다. 다만 얼마씩이라도 거두어서 얼른 꾹돈을 먹여놔야 곧 석방이 될수 있다거던…》

한숙경의 말을 듣자 영옥은 더욱 가슴이 답답하였다.

《그런데 선생님, 어떡해요? 우리 집은 이 지경이 됐으니…》

영옥은 단돈 한푼도 내주지 않을것만 같은 아버지의 태도가 너무도 랭정하게 느껴지고 섭섭했으나 자기 힘으로는 아무런 방책도 생각나지 않았다.

집안형편이 옹색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정말 아버지가 학부형의 립장에서 홍선생의 석방을 원하고 바란다면 어떻게 주선해서라도 얼마간 돈을 만들어내야만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영옥은 암만 생각을 해봐도 아버지의 태도가 잘 리해되지 않았다.

《선생님! 아버지헌테서는 바라지도 마세요. 내 어떻게 해서든지 2~3일안으로 얼마간 주선해볼테예요. 우리 아버지는 지금 공장일, 어머니병때문에 아무 정신도 없어요.》

영옥은 이런 말로 아버지체면을 대신 세우려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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