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일기

8

 

공판은 끝났다. 찬수의 손목에는 다시 쇠고랑이 채워졌고 그는 간수에게 끌려 법정을 나왔다.

방청석에 모여앉았던 사람들은 밖으로 우르르 나와서서 《비둘기장》으로 걸어가는 처량한 찬수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고있었다.

찬수는 법정문밖 좌우에 늘어선 방청객들에게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리며 태연스럽게 눈인사를 보냈다.

그는 한숙경선생과 조선희, 백인자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백인자곁에 같이 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고있는 영옥이를 발견했던것이다.

찬수는 어느덧 자기도 두눈이 뜨끔해지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는 영옥이와 시선이 마주치기는 했으나 그것은 지극히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찬수는 그것이 혹시 자기의 착각이나 아닌가 하여 잠간 발길을 멈추고 다시 고개를 돌려 영옥을 보려 하였다. 하지만 고개를 더 돌릴수 없을만큼 간수녀석이 자기곁에 바싹 붙어서서 발걸음을 재촉하는것이였다.

그는 어쩔수없이 떨리는 가슴을 걷잡지 못한채 《비둘기장》쪽으로 끌려갔다.

(영옥이가 왔구나. 틀림없는 영옥이야. 그렇지, 안 올리 없지.)

찬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걸어갔다.

그는 공판정에서 영옥이를 발견하지 못했던것이 유감스러웠다. 그리고 영옥이가 자기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앉지 않은것이 섭섭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옥이를 발견하고나자 자기가 품어오던 섭섭한 생각이 어느덧 스르르 사라져버리는것만 같았고 그것이 자기의 너무나 지나친 오해나 아니였던가싶어 도리여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찬수가 《비둘기장》앞에 거의다 이르렀을 때였다.

씩씩한 얼굴에 웃음을 띤 청년 하나가 찬수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는 바로 류치장에서 자기 머리를 동여매주던 그 청년이였다.

찬수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그는 갑자기 큰 힘이나 얻은듯이 마음이 든든하고 그 청년이 믿음직스러웠다.

찬수는 간수에게 끌리여 《비둘기장》으로 들어왔다.

이때 뒤미처 끌려온 어떤 미결수 하나가 《비둘기장》앞에 이르러 간수놈한테서 총대로 매를 맞기 시작했다.

《너 이 자식아! 아까 법정에서 어쩌고어째?》

간수녀석은 욕설을 퍼부었다. 그자들은 미결수들이 법정에서 검사의 심문에 대하여 고분고분하게 잘 대답하지 않거나 경찰의 조서를 부인하면 《비둘기장》에 데리고 오자마자 언제나 이렇게 악의찬 욕설과 함께 매질을 하는것이 일상적인 습관으로 되여있었다.

《여보시오, 날 이렇게 때릴 리유가 뭐요? 내가 뭘 잘못했단말요?》

미결수는 매를 맞으며 항거해나섰다.

《너, 대한민국 법정맛을 모르니? 흥!》

간수놈은 여전히 총을 쥐고 개패듯 그 미결수를 후려갈기였다. 그리고는 《비둘기장》을 열고 왈칵 안으로 밀어넣어버리였다.

다른 《비둘기장》쪽에서도 공판정에서 돌아온 미결수들이 간수놈들에게 매를 맞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찬수는 미결수들이 간수놈들에게 매를 맞는것을 보자 분격이 치솟아올랐고 자기에게도 반드시 놈들의 행패가 미칠것만 같아 주먹이 부르르 떨리였다.

이때 한숙경이 찬수가 들어간 《비둘기장》문앞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뒤로 영옥이도 따라갔다.

《여보세요!》

한숙경은 문안을 들여다보며 간수놈에게 가만히 입을 열었다.

《왜 그러슈?》

《빵차입 좀 할수 있죠?》

《할수 있죠. 아, 돈만 어서 내십쇼.》

간수놈은 금방 미결수를 실컷 두드려팬 그놈이였지만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며 한숙경을 바라보았다.

한숙경은 돈 500환을 꺼내여 간수에게 주며 홍찬수에게 차입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그놈은 덥석 받아 제 양복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시치미를 뚝 따고 서있기만 했다.

영옥이는 선희와 인자와 함께 돈을 모아가지고 찹쌀떡을 사서 찬수에게 차입해달라고 그놈에게 또 부탁을 했다.

얼마후에 간수놈은 찬수의 번호를 불렀다.

그놈은 한숙경의 돈 500환은 그대로 먹어버리고 영옥이와 선희 등이 사가지고 간 찹쌀떡 20개중 15개를 떼여놓고 다섯개만 찬수에게 들이밀었다.

《여보게, 홍찬수! 자넨 오늘 운수가 좋네. 공판정에 나오면 의례 비둘기장에서 매를 맞는것이 십상팔군데 자넨 매두 안 맞고 떡차입까지 들어왔으니… 이제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자네네들을 때리고싶어 때리는게 아닐세. 다 상부의 명령을 받아하는거란 말야!》

간수놈은 비렬한 음성으로 변명비슷하게 떠벌였다.

찬수는 간수녀석이 들이밀어준 떡봉지를 받긴 했으나 그것을 얼른 꺼내여 먹고싶은 의욕이 나지 않았다.

찬수는 이 다섯개의 찹쌀떡이 자기 수중에 들어오려면 적어도 그 4~5배의것이 간수놈 아가리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있었다. 때문에 누가 차입한것인지는 몰라도 적지 않은 돈이 자기때문에 소비되였다고 생각되자 미안한 생각이 불쑥 치밀었다.

《누구요? 내게 차입한 사람이…》

찬수는 간수녀석에게 물었다.

《그건 알아 뭘 해! 그저 먹기나 해두게!》

간수놈은 차입품을 떼여먹고나니 《오늘은 수지가 맞았다.》는듯이 흡족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찬수는 해가 저물무렵에야 《비둘기장》에서 나와 호송차에 실리였다.

호송차는 아침에 들어오던 뒤문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가 대문을 나설 때는 문의 좌우연도에 아침에 들어올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서 미결수들을 전송해주었다.

찬수는 간수의 호령으로 고개를 수그렸으나 대문밖 좌우연도에 늘어선 사람들속에서 자기를 전송하기 위하여 마리야녀학교 교복을 입은 여러 학생들이 떼를 지어선 모습을 곁눈질로 볼수 있었다.

찬수는 무의식중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홍선생님!》

《홍선생님!》

학생들속에서 찬수를 부르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울려나왔다.

찬수는 손을 들어 화답을 하려 하였으나 이미 쇠고랑이 채워진 손이라 들려지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의 얼굴을 쭉 한번 훑어보았다. 모두다 상급반 학생들이였다.

그들이 공판정에 들어오지 못하고 길가에 섰다가 묶이여 실려가는 자기를 부르며 몹시 안타까와하는 모습을 보자 찬수는 가슴이 미여지는듯 쓰리고 아팠다.

영옥은 한숙경과 선희, 인자와 지선생을 비롯한 사람들틈에 끼워서서 찬수의 모습을 한번 더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찬수의 시선과는 반대쪽이여서 볼수가 없었다.

어느덧 호송차는 큰길로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는 벌써 어둠이 깃들었고 군데군데 가로등에 젖빛같은 불빛이 비치였다.

형무소에 돌아와 점검을 마친 찬수는 다시 2동우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이방저방의 미결수들이 찬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오늘 공판결과를 알려고 했다.

찬수는 《3년 구형》이란 뜻으로 손가락 3개를 세워보였고 빙긋이 웃으며 여러 감방앞을 지나 자기 감방으로 돌아왔다.

감방사람들은 찬수를 오랜만에 만나는듯 모두 차례로 악수를 나누었다.

이 악수는 공판정에서 잘 싸우고 돌아온 그에 대한 신뢰와 격려의 악수인것이였다.

《그래, 검사놈허구 어떻게 싸우셨습니까?》

차동무가 먼저 물었다.

찬수는 오늘 공판정의 광경과 검사의 사실심문에 대한 이야기를 대강 들려주었다.

《이젠 꾹돈만 쓰면 문제없이 석방입니다. 놈들이 꾹돈을 먹고싶어서 언도를 일주일 연기한것입니다.》

《홍선생은 징역을 쳐두 보람이 있당깨로. 아, 방청석에 사람이 많이 나왔고 또 학생들이 그렇게 길가에서까지 전송을 해주었으니 정말 신이 날 일이랑깨…》

정돌이가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찬수는 초생달빛에 희미하게 드리운 철창그림자밑에서 자기 몫으로 남겨둔 밀밥부스레기를 꼭꼭 씹어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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