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일기

5

 

찬수의 공판이 시작되는 날이였다.

이날따라 류달리도 이른아침부터 시커먼 구름이 해를 가리고 무학재고개에서 불어오는 음산하고 쓸쓸한 바람이 형무소의 높은 벽돌담을 넘어 감방마다 스며들었다.

《오늘은 류달리도 춥군. 자, 홍선생! 내 내의를 껴입고 나가시오.》

젊은 차동무는 자기가 입었던 내의를 벗어 찬수에게 주었다.

찬수는 두어번 사양하였으나 《비둘기장》속에서 하루종일 떨것을 생각하고 그의 호의가 깃든 내의를 껴입었다.

《홍선생! 부디 오늘 이기시라우. 검사놈헌테 까딱하다가는 넘어간당깨.》

농민 정돌이가 은근히 찬수를 격려해주었다.

《그렇습니다. 홍선생! 공판을 처음 받으시면 좀 얼떨떨하실겝니다. 그러나 대담하게 싸우셔야 합니다. 어름어름하다가는 죄를 더 뒤집어쓰게 됩니다. 홍선생사건은 얼마든지 대담하게 싸우기 좋은 사건입니다.》

차동무도 찬수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순간 갑자기 이웃감방에서 벽을 툭툭 치며 통방이 왔다.

《오늘 공판나가는 동무!》

찬수의 귀엔 처음 들리는 목소리였다.

《네!》

찬수는 벽가에 바싹 귀를 대며 대답했다.

《부디 굽히지 말고 승리하시오. 미군의 만행에 대해서, 부패한 교육계에 대해서 철저히 규탄하고 폭로하시오. 홍선생의 투쟁은 결코 외로운 투쟁이 아닙니다. 홍선생을 지지하는 힘은 큽니다. …》

말이 채 그치기도 전에 재판에 나갈 사람들을 끌어내려고 오는 간수의 발자국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찬수는 차동무와 정돌을 비롯하여 감방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감방문을 나섰다.

그는 공판정에 나가는 여러 미결수들과 함께 아래로 내려와 정문앞 대기장소에서 손목에 쇠고랑을 차고 포승으로 한줄로 길게 묶인채 호송차우에 올라탔다.

《고개들을 수그려!》

총을 멘 간수놈이 표독스럽게 고함쳤다.

호송차에 올라탄 40여명의 미결수들은 일제히 머리를 수그리였다.

찬수도 고개를 푹 수그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경찰서에서 형무소로 넘어와 며칠 안되여 검사취조를 받으러 재판소에 끌려갈 때도 그는 오늘과 마찬가지로 손목에 쇠고랑을 차고 포승으로 주렁주렁 묶이여 나갔던것이였다.

고개를 조금도 들지 못하고 바닥만 내려다보고있는 동안 어느덧 호송차는 서대문 네거리를 지나 서울역쪽으로 달리다가 서소문으로 빠지는 언덕배기길로 꺾으며 올라섰다.

이윽고 호송차는 재판소뒤 대문으로 들어섰다.

오늘 공판에 나오는 미결수들의 가족들과 친지들이며 방청객들이 호송차가 대문안으로 들어서자 좌우로 늘어서서 서로들 자기들이 보고싶은 사람을 찾으려 부산을 피웠다.

미결수들은 호송차가 《비둘기장》앞에서 멈출 때까지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들이 차에서 내릴무렵이였다.

형무소에서부터 감시하면서 호송하여 따라온 간수녀석들은 미결수들이 자기 가족들이나 친지들과 눈이 서로 마주칠가봐 눈을 부라리며 그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했다.

찬수는 놈들의 감시때문에 고개를 들고 똑똑히 살필수는 없었으나 곁눈으로 사람들이 모여선쪽을 슬쩍 훑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알만 한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윽고 찬수는 포승이 끌려진 다음 《비둘기장》속에 갇히게 되였다. 《비둘기장》은 공판정에 불리워나갈 때까지, 또 공판을 받고나서 다시 형무소로 갈 때까지 미결수들을 감금해두는 재판소내의 감방이다.

포승은 끌리여졌으나 쇠고랑은 여전히 손목에 채워진채 《비둘기장》같이 협소한 감방에 홀로 갇힌 찬수는 생각할수록 분격이 치밀어올랐다.

오늘 자기처럼 쇠고랑을 차고 《비둘기장》에 감금되였다가 법에 따라 처단을 받아야 할 놈은 과연 누구인가?

그놈은 바로 연회가 있던 날 밤 영옥을 끌어가려 하던 미군장교놈이고, 또 많은 녀학생들을 강제로 끌고 간 그 짐승같은 놈들이 아닌가? 또 그것을 그렇게 하도록 조직해준 교장 김치선이가 아닌가?

찬수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찬바람이 창살로 치밀어들어올 때마다 찬수는 전신이 떨리고 쇠기침이 또 시작되였다.

한참만에 찬수는 《비둘기장》에서 불려나왔다.

찬수는 자기와 함께 불려나온 5~6명의 미결수들과 함께 간수에게 끌려 쇠고랑을 찬채 공판정 4호법정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그들의 가족들과 친지들과 방청객이 꾸역꾸역 밀려들어갔다.

찬수는 맨 앞줄 피고석에 앉아있었다.

법정안은 싸늘하였고 의자우에는 먼지가 쌓여있었다.

찬수는 무의식중 고개를 돌려 방청석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순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방청석은 초만원을 이루었는데 아직도 법정입구에서는 방청객이 밀려들어오고있었다.

찬수는 시선을 들어 방청석을 쭉 한번 둘러보았다.

그는 더욱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의 시선과 바로 마주친 한숙경의 얼굴, 그곁에 나란히 앉은 지선생 그리고 그곁에 오영애와 조선희와 백인자의 얼굴들… 그리고 수많은 마리야녀학교 학생들과 학부형들… 찬수는 갑자기 격동되며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그러나 찬수는 이 순간 어딘지 마음의 한쪽구석이 텅 빈것만 같은 서글픔을 느끼였다.

혹시나 하고 생각하였던 영옥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영옥은 찬수의 시선에 띄지 않는 방청석 한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입원중에 있었지만 홍선생의 공판에 자기가 빠질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일찍부터 나와 공판이 열리기를 기다렸던것이였다.

영옥은 얼굴을 들어 홍선생의 시선과 마주치려 했다. 그러나 찬수의 시선은 영옥이가 앉은 자리에까지 이르지 못하고말았던것이였다.

영옥은 몹시 안타깝고 서럽기만 했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홍선생님! 나 여기 왔어요!》 하고 소리쳐 알리고도싶었으나 소위 법정에서 그럴수는 없었던것이였다.

영옥은 눈물어린 얼굴로 홍선생의 뒤모습만 바라보면서 혹시나 또 고개를 돌리지나 않을가 긴장되여있었으나 찬수는 좀처럼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찬수는 자기때문에 심한 고문과 또 구류까지 당하고 나온 조선희와 백인자의 얼굴이 몹시도 수척해보인데다가 또 그들이 교복대신에 입은 치마저고리가 그다지 변변해보이지 않아 마음이 괴로왔다.

더구나 늘 양복을 입고 다니던 한숙경선생이 검정치마저고리를 입고 온것도 그에게는 례사롭게 생각되지 않았다.

찬수는 자기가 학교에 근무할 때 보던 녀학생들이 오늘은 모두다 교복을 안 입고 치마저고리를 입고 온것은 우선 학생들에게 방청을 허락하지 않기때문도 있지만 구태여 교복을 입고 와서 공판을 받는 선생의 마음을 자극하기 싫어서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달전 영옥이가 자기를 찾아 자하문밖에 나왔을 때 하늘빛치마저고리를 입고 왔던 일이 불시에 회상되였다.

그때의 순진하고 아름다왔던 영옥이가 어찌 오늘은 보이지 않는것인가?

그도 그럴것이 경찰서 류치장에서 모든 죄를 자기에게, 조선희와 백인자에게 떠넘기고 석방되여나간 사실을 다시금 상기해볼 때 영옥은 오늘 방청석에 나타날 렴치도, 면목도 없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찬수는 이러한 생각이 자기의 오해에서 발생되였다는것을 전혀 알수 없었다.

교활하고 악랄한 형사녀석들의 악의에 찬 리간술책이 빚어낸 결과였던것이다.

찬수가 이렇게까지 영옥이를 오해하고있는 사실을 지금 방청석 한쪽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은 본인이 안다면 그는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깝고 슬퍼할것인가?

이윽고 몸집이 뚱뚱하고 40살가량 된 거만스러워보이는 검사가 잔뜩 찌프린 얼굴로 서기를 대동하고 법정에 나타났다.

뒤미처 검사보다는 좀 젊어보이는 판사도 나타났다.

《일동 기립!》

법정지기가 고함을 꽥 질렀다.

미결수들과 방청객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경롓!》

경례가 끝나자 검사는 독살스럽게 생긴 눈초리로 미결수들을 훑어보더니 방청석을 휙 둘러본다.

찬수는 이 틈을 타서 곁눈질로 좌측 벽쪽에 있는 변호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변호사석에는 늙은 변호사 한명과 전날에 형무소 면회실에 찾아왔던 오종호변호사가 나란히 앉아서 제각기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고있었다.

찬수는 오종호와 시선이 마주쳤다.

오종호는 오늘따라 자기 변론에 자신이나 있다는듯이 두눈과 입가장자리에 가벼운 미소가 넘쳐흐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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