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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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숙경은 이 학교에서 20년이상을 체육교원으로 근무하고있는 로처녀다. 성질이 괄괄하고 고집이 세고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녀성이다.

녀자나이 40이 넘어 50줄에 들면 피부에 지방이 빠져서 곱고 아름답던 얼굴에도 어느덧 잔주름이 잡히기 시작하고 정력이 줄어가는것이 보통이나 한숙경은 아직도 30전후의 젊은 녀자와도 같이 살결이 윤택하며 건강한 체력을 가지고있다.

더구나 어글어글한 두눈이며 넓은 이마며 좀 두터운 입술이며 두드러진 광대뼈는 녀자의 얼굴이라기보다는 남자의 얼굴에 가까운편이였다. 말하자면 그는 얼굴인상부터 남성적인 녀자였다.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 오늘 열리는 파티에 대해서 찬성 못하겠어요.》

한숙경은 의자에 앉아 자기에게 온 편지를 다 읽고나더니 찬수를 바라보며 동감을 청했다.

《…》

찬수는 잠간동안 입을 다문채 말이 없었다. 아직 재직년한이 짧은 그였기때문에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함부로 하기를 극히 싫어했다.

그러나 찬수는 이 한숙경과는 어딘지 모르게 감정이 통하는 점이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저 역시 동감입니다. 학교가 아니라 무슨 환락장같군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아, 글쎄 홍선생님! 가사실습이면 실습이지 툭하면 왜 외부사람들을 불러다 파티를 엽니까? 게다가 학생들을 화장시켜서 기생처럼 내세우고 실습비로 만든 음식은 죄다 엉뚱한 사람들이 와서 먹고…》

한숙경은 흥분된 어조로 찬수를 바라보았다.

이때 문이 열리며 박로인이 물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아, 선생님들! 연회구경 좀 안하십니까? 오늘은 아주 굉장한뎁쇼.》

박로인은 담배를 뻐금뻐금 빨면서 찬수와 한숙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듯이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더니 《… 내 일제시대부터 학교 소사노릇으로 늙은 놈이지만 학교가 점점 요모양, 요꼴 되여갈줄을 누가 알았습니까?》 하고 한탄조로 말했다.

《아니, 령감님! 지금까지 연회구경하셨소?》

한숙경이 말했다.

《그까짓걸 누가 구경을 합니까? 그저 오다가다 눈에 뜨이니깐 좀 봤습죠. 원, 정말이지 어디 보겠습디까? 눈허리가 시여서… 마치 료리집에서 기생다루듯 미국손님들이 녀학생들의 허리를 바싹 끌어안고 춤을 추며 돌아가는 꼴이란 정말 어디 보겠습디까? 두눈에서 쌍심지가 자꾸 솟아올라와서…》

박로인의 목소리는 의분에 넘치고있었다.

《글쎄, 누가 아니라우…》

한숙경은 박로인의 말에 한마디 거들었다.

이 순간 연회장에서는 왈쯔곡을 치는 피아노소리가 바람결에 은은히 들려왔다.

《아, 선생님들! 숙직실에만 계시지 말고 좀 가보십쇼. 어쩌면 녀학생들에게 술을 막 멕입니까? 미군들이 녀학생들을 붙들어 앉히고서 한잔, 두잔 강제로 마시게 해놓으니깐 나중엔 얼굴들이 새빨개져서 그거 어디 보겠습디까? 도대체 거기 어울려 앉은 선생님들이 그걸 보고두 못 본체 하고있는 꼴이 비위에 거슬리는뎁쇼. 어디 그런 법이 있습니까?》

박로인은 서글프게 쓴웃음을 한바탕 웃었다.

《령감님, 그런 말 함부루 마시유. 교장이나 교무주임이 들으면 기절초풍을 하리다.》

한숙경은 박로인에게 주의를 주었다.

잠간동안 세사람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한숙경이 앉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힝, 나는 일찌감치 집에 가서 구들장신세나 지겠소. 홍선생두 수화기 아주 떼여놓고 주무시기나 하시유!》 하고 휙 밖으로 나가버리였다.

소강당쪽에서는 노래소리와 웃음소리가 련속 흘러나왔다.

찬수는 오늘 밤 웬 일인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기분이 몹시 우울해졌다.

박로인이 연회장을 구경하고 와서 서글프게 탄식하는것이라거나 한숙경이 역시 의분을 참지 못한채 퇴근해버린것을 생각할 때 그는 오늘밤 숙직당번이 된것이 더욱 기분이 불쾌했다.

《아, 선생님! 신문만 들여다보시지 말고 나가 구경 좀 하다 오십시오! 아주 료리집이나 캬바레 같습니다.》

박로인은 연방 찬수에게 권했으나 찬수는 입을 다문채 구경갈 생각이 없는듯 이윽고 무게있는 어조로 《그까짓것 구경해 뭘 합니까. 령감님 말씀대로 눈허리가 시여 못 볼걸…》 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말이지 선생님은 숫제 보시지두 마십쇼. 하두 기가 막혀 나가보시라고 한거지요. 난 선생님이 이 학교에 오신지는 얼마 안되지만 선생님이 어떤분이란건 대강 짐작됩니다. 만일 선생님이 저 꼴을 보시면 아마 그대로 보고계시지는 않으시리다. 그저 저 란장판을 학부형들이 와서 봐야만 할텐데… 에익.》

박로인은 다시 벌떡 일어나 밖으로 휙 나가버리였다.

소강당쪽에서는 박수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요란스럽게 흘러나왔다.

찬수의 귀엔 그 박수소리와 웃음소리가 자기와는 인연이 먼 딴세상에서 들려오는것이라고 생각되자 더욱 불쾌하고 침울하였다.

이윽고 한참만에 연회가 끝난 모양인지 운동장쪽에서 자동차발동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복도에서 바쁜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더니 박로인이 헐레벌떡거리며 숙직실로 뛰여들어왔다.

《아, 선생님. 좀 나가봅쇼. 양코들이 글쎄 녀학생들을 끼고 나와 자동차에 태워가려 합니다그려.》

《뭐요? 학생들을?》

찬수는 갑자기 놀라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에서는 한대, 두대… 자동차들이 움직이며 정문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유… 선생님… 선생님…》

아직 움직이지 않고있는 자동차부근에서 어떤 녀학생의 비명이 들리였다.

찬수는 번개처럼 그쪽으로 뛰여갔다.

어떤 미군장교녀석이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녀학생 하나를 자기 자동차에 강제로 태워가려는 순간이였다.

《노꿋! 노꿋!》

찬수는 왈칵 달려들어 미군장교녀석의 손을 뿌리치고 녀학생을 차에서 끌어내리였다. 그는 바로 영옥이였다.

《까뗌! 까뗌!》

녀학생을 빼앗긴 장교녀석은 찬수에게로 덤벼들며 후려갈기려 하였다. 그러나 찬수가 재빨리 비켜서는 바람에 그놈은 제풀에 나가 쓰러져버렸다.

술에 취했기때문에 맥없이 쓰러져버린것이였다. 그놈은 정신을 차리더니 다짜고짜 권총을 뽑아들고 찬수를 향하여 란사했다.

팡- 팡팡-

권총소리가 운동장을 요란스럽게 울리자 연회에 참가했던 교장이하 교원들이 당황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그놈의 권총알은 가까운 거리였으나 다행히도 찬수에게 명중되지는 않았다.

찬수는 치가 떨려 그 자리에서 얼른 물러나려 했으나 어느 틈에 교장 김치선이가 나타나며 《아니, 홍선생. 이게 웬 일이요? 학교체면두 봐야지. 미국손님한테 무슨 실례의짓이요?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선물들을 주기로 했는데 홍선생이 주제넘게 뭣하러 나서서 말리는거요?》 하고 불쾌한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그리고는 땅에 쓰러진 장교놈을 일으켜 흙을 털어주었다.

《미스터 김, 아까 그 녀학생 찾아주시오! 빨리빨리 찾아주시오! 그 녀학생 나 좋아합니다. 오늘 밤 프레센트(선물) 많이 주어 도로 보내겠습니다. 어서 찾아주시오!》

장교놈은 철면피하게도 김치선에게 애원하였다.

《예쓰, 예쓰.》

김치선은 장교놈의 청을 거부할수가 없었던지 녀학생을 찾으려 돌아섰다. 그러나 녀학생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김치선은 당황한 태도로 잠간동안 무슨 계책을 생각하더니 어느덧 기숙사쪽으로 발길을 다그쳤다.

숙직실로 돌아온 찬수는 몹시 흥분된채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는 어느 틈에 영옥이의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리였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구원은 했으나 과연 무사히 집에 돌아갔는지? 몹시 궁금하고 불안스러웠다.

얼마 지난 뒤였다. 고요해진 복도를 바삐 걸어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리였다. 그것은 박로인의 발걸음소리였다.

《선생님, 어서 밖에 좀 또 나가보십쇼. 본관모퉁이에서 영옥이가 아마 울고있는것 같습니다.》

박로인은 더 자세한 말을 하지 않고 찬수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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