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일기

3

 

찬수는 자기를 면회하러 온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 궁금해지면서 가슴이 울렁거려 견딜수가 없었다.

《홍선생, 이젠 됐습니다. 그 봅쇼. 안 온다 안 온다 하더니만 기어이 면회를 오잖습니까.》

《무엇보다도 침구하고 식기를 차입해달라고 부탁하십쇼.》

《치약, 치솔, 수건도 부탁해야지…》

《그리구 하구싶은 말, 묻고싶은 말을 미리 생각했다가 하십쇼. 면회시간에 말 한마디 못하고 그대루 안타깝게 보고만 서있다가 헤여져나오는 사람들두 많으니까…》

감방안의 여러 사람들이 감방생활에 아직 경험이 없는 찬수에게 이것저것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마치 자기자신들이 면회를 나가는듯이 기쁜 표정으로 찬수를 내보냈다.

그러나 찬수는 과연 자기를 면회하러 온 사람이 누구인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혹시 영옥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영옥이가 자기한테 면회오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죄를 덮어씌웠다면 볼낯이 없어서도 면회를 못 올것이 아닌가? 그렇다! 영옥은 아니다.)

찬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 부정해보기도 했다.

혹시 영옥이가 그동안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를 하기 위하여 면회를 신청한것인가?

찬수는 이런 생각에 잠기느라니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고 긴장되였다.

(아니야, 영옥이는 아니야. 누구일가?)

찬수는 이렇게 부정을 하고말았다.

(혹시 한숙경선생인가? 그것은 더구나 아니야.)

한숙경은 학교에서 자기를 지지한 량심적인 선생이나 이미 《빨갱이》로 지목되여 형무소에 넘어온 자기에게 면회를 신청해올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인가? 그는 이사람저사람 생각해봤으나 누구 하나 지목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2동우에서 온 10여명의 미결수중에 끼워 간수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각 동 미결감에서 모여온 수감자들은 면회실곁에 있는 세멘트바닥으로 된 대기실에 쪼그리고 앉아서 면회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대기실은 말이 대기실이지 찬바람이 사방으로 통하는 복도의 변종이였다.

찬수는 면회나온 미결수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직도 여름홑옷을 그대로 입은 사람, 그나마 홑껍데기가 해져서 맨살이 드러나보이는 사람, 얼굴에 전혀 피기가 없어 백지장처럼 해쓱한 사람, 띵띵 부어오른 사람, 꼬챙이처럼 말라들어간 사람… 이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못이기여 부들부들 떨고 앉아서 면회를 기다리는 모습을 차마 볼수가 없었다.

《자, 다들 이쪽으로 돌아앉아! 면회나오면 의례 벽쪽으로 돌아앉는것 몰라?》

총을 둘러멘 간수녀석 하나가 수감자들에게 고함쳤다.

그놈은 누런 풀빛외투를 입고 손에 장갑까지 꼈다.

면회나간 사람들은 모두 면회실로 통한 복도와는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돌아앉았다.

찬수도 하는수없이 벽쪽을 향하여 돌아앉았다.

여러 시간만에야 찬수에게 면회시간이 돌아왔다.

쪼그리고 앉아서 떨던 찬수는 간수가 번호를 부르자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며 금시 그 자리에 쓰러지고말았다.

그만 빈혈증이 일어난것이였다.

《이 자식아! 면회 못하겠니? 그럼 취소다!》

찬수는 간수놈의 목소리를 듣자 정신을 겨우 가다듬어 다시 일어섰다.

그는 어지러운 머리를 겨우 가누며 면회실쪽으로 걸어갔다.

더부룩한 머리, 시꺼멓게 자란 수염, 피기없는 얼굴빛… 면회실문의 유리창에 자기의 모습이 비쳤을 때 찬수는 새삼스럽게 깜짝 놀랐다.

자기 아닌 자기가 자기를 놀라게 한것이였다.

찬수는 떨리는 손으로 면회실문을 열었다.

그는 소스라쳐 놀랐다. 거기에는 천만뜻밖에도 옛날의 은사인 지성근선생이 기다리고있었다.

찬수는 자기를 마리야녀학교에 소개해준 그가 자기한테 면회하러 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것이다.

《아, 선생님!》

찬수는 갑자기 어린 소년시절로 돌아간것처럼 지선생이 몹시 반가왔고 고마왔다.

《난, 자네가 이리될줄 몰랐네. 차라리 이렇게 될줄 알았다면 내가 자네를 마리야녀학교에 소개하지 말것을… 도리여 자네에게는 큰 화근이 되였네.》

50이 넘어보이는 그는 점잖게 말을 했다.

《제가 오히려 선생님 뵐 낯이 없습니다.》

찬수는 도리여 미안한 표정을 보이였다.

《그래, 자네가 기소된 사실을 나는 시골에서 신문을 보고 알았었네. 몸이나 건강해야겠는데… 어떤가?》

《네, 그저 괜찮습니다.》

《부디 조심하게, 그동안 나는 자네 문제때문에 김치선교장도 만나봤고 또 변호사에게도 의뢰해두었네. 아마 쉬이 공판이 있을걸세.》

지선생의 이 말에 찬수는 귀가 번쩍 띄였다. 그러나 김치선이를 만났다는 사실엔 불쾌하지 않을수 없었다.

《…선생님께 너무 페를 끼쳐 죄송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경영하시는 일은 잘되시나요?》

《잘될리 있겠나, 쉬이 문을 닫을 작정일세.》

지선생은 여기까지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그래 자네, 혹시 무슨 부탁이 없는가? 차입은 뭐 받은게 없는가?》 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때 간수놈이 찬수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표독스런 목소리로 《시간이 지났어! 그만 들어가!》 하고 면회장부를 탁 덮어버리고 철필을 내던지며 벌떡 일어선다.

찬수는 싹수없이 구는 간수놈이 몹시 증오스러웠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면회를 중지할수밖에 없었다.

지선생도 하고싶은 말을 다하지 못한채 《부디 몸조심하게. 공판은 속히 열도록 주선합세.》 하고 말끝을 초조히 맺었다.

《선생님, 그럼 안녕히 돌아가세요.》

찬수는 마지막인사를 마치고 면회실을 나왔다.

한사람에게 5분간의 면회! 말이 좋아 5분이지 그것은 3분밖에는 안되는 시간이였다. 불러서 들어갈 때의 시간과 나올 때의 시간까지도 면회시간에 포함되여있었기때문이다.

이 3분밖에 안되는 면회시간을 위하여 거의 4~5시간이나 추운 대기실바닥에서 벌벌 떨며 차례를 기다리다가 면회장에서는 정작 하고싶은 말, 듣고싶은 말을 주고받지 못한채 헤여져나오는 찬수의 가슴은 울분으로 벅차올랐다.

찬수는 자기를 면회온 사람이 지선생인줄 사전에 알았더라면 하고싶은 말이나 묻고싶은 말을 미리 생각해가지고 나갔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찬수가 감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해가 저물어가고있었다.

남쪽으로 뚫린 창살그림자가 회색빛세멘트벽 한 귀퉁이에서 각각으로 사라져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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