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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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얼마나 깊었는지 뚜벅뚜벅 긴 복도를 울리던 간수들의 구두발소리도 드물어지고 령천과 서대문사이를 오고가는 전차들의 자그러운 금속성도 별로 들리지 않았다.

서대문형무소안 3동아래의 《정거장방》에서 2동우로 《승급》되여 올라온 홍찬수는 이 감방에 옮겨와서부터 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울 때가 많았다.

그는 경찰서 류치장에서 맞은 머리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데다가 형무소에 옮겨와서부터 걸린 감기가 더 심해져서 한때는 고열에 오한까지 겹쳐들어 정신을 잃고 앓았으나 이제는 한고비를 넘겨 기침이 때때로 몹시 날뿐 고열은 더 나지 않았다.

찬수는 담요도 없이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 눈을 감고 잠에 들려하였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쇠기침이 나서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었다.

찬수는 기침을 참으려 외마디 숨을 쉬며 눈을 떴다감았다 하면서 회색빛어둠에 싸인 감방천정을 바라보았다.

거기에서는 금방 터실터실한 세멘트뭉치가 떨어져 자기의 이마와 얼굴을 때릴것만 같았고 감방을 둘러싼 세멘트벽은 금방 오그라져들어와 자기 몸을 덮어 눌러 숨조차 쉬지 못하게 할것만 같았다.

아직도 유리를 끼우지 않은 창살사이로는 찬바람이 침습해들어와 감방안은 한지나 다를바없었다.

나치스도이췰란드의 감옥제도를 본따서 일제가 대규모로 건축한 세계적인 괴물-서대문형무소의 감방들은 8. 15해방전 일제식민지통치를 반대하고 조국의 자주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싸운 무수한 애국적인 혁명투사들을 학살한 진저리쳐지는 지옥이였다.

일제가 패망하고 물러간 뒤에 이 지옥은 반드시 파괴해버리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였어야 했건만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는 이 괴물내부를 더욱 확장, 신축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을 념원하는 수많은 남조선의 애국인민들을 투옥하고 학살하는 지옥으로 만든것이였다.

찬수는 속옷조차 별로 변변히 입지 못한탓에 웅크린 몸을 떨면서 터져나오는 마른기침을 참지 못하고 쇠기침을 련발하였다.

그는 코앞에 닥친 엄동설한을 차디찬 감방에서 담요 한장없이 또 내복 한벌없이 지낼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솜바지저고리나 두툼한 솜버선은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일이지만 자하문밖 하숙집에 있는 자기 이불이나 담요조차 차입해줄만 한 사람이 지금 자기에게는 단 한명도 없을것만 같았다.

설령 차입을 해줄수 있는 사람을 골라본다면 그것은 오직 손영옥이 한사람밖에 없을것 같았으나 그는 어느덧 고개를 흔들어 자기의 그 생각을 취소해버리려 했다.

손영옥은 한때 자기의 위험한 고비를 모면하기 위하여 선생에 대한 의리도 인정도 망각하고 자기에게 죄를 덮어씌웠을뿐만아니라 동급생 조선희와 백인자에게까지도 책임을 떠넘기고 살짝 빠져나간 사람이 아닌가? 그렇기때문에 그는 량심에 찔려 무색해서도 차입을 못할것이며 또 설사 해준다 치더라도 자기는 그렇게 달갑지 않을것만 같았다.

찬수는 이런 생각이 치밀어오르자 더욱 마음이 스산해졌다.

한때 귀엽게 보았고 또 앞으로 훌륭한 미술가로 발전할수 있는 그의 소질을 남달리 사랑하며 또 령리하고 상냥스럽고 아름답게 보아온 영옥에 대한 인상이 오늘 와서 이렇듯 달라져가는것은 그에게 있어서 결코 우연한 심경의 변화라고 볼수 없었다.

《홍선생, 여태까지 잠을 못 주무셨능게라우?》

찬수의 곁에 누워 담요를 덮고 자던 사람 하나가 가만히 일어나며 담요자락을 찬수의 몸에 덮어준다.

그는 수염이 시꺼멓게 난 정돌이라는 농민이였다.

《아니예요, 덮으십쇼.》

찬수는 사양하면서 부시시 일어나 담요를 제끼였다.

순간 쇠기침이 몹시 나기 시작했다.

정돌은 다시 담요를 들어 찬수의 등을 덮어주었다.

정돌은 전라도 다도해가 보이는 바다가 농촌에서 사는 40살가량 된 사람이였다.

찬수의 고향도 다도해근처인 남쪽 농어촌이란것을 알게 된 그는 찬수에게 더욱 친근하게 굴었고 또 담요가 없는 그에게 늘 자기 담요자락을 덮어주군 했다.

정돌은 작년에 절량농민의 한사람으로서 자기 마누라와 어린 자식들이 굶어서 부황이 나고 다 죽게 되였을 때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농민들과 함께 읍내 군청과 경찰서에 밀려가 강제매상과 토지상환곡으로 빼앗아간 곡식들을 나누어달라고 요구했었다. 그것이 폭동죄로 매도되여 광주경찰서를 경유해서 광주형무소로 넘어간것이였다.

그때 정돌은 돌멩이를 던져 군청 유리창을 까부신 사람들틈에 끼여있었기때문에 1심에서 5년이라는 체형언도를 받았다. 그는 너무도 억울하여 불복공소를 하고 서울로 이감되여 2심을 기다리고있는중이였다.

그의 동료들은 2동우의 여러 감방에 나뉘여 5~6명이나 수감되여있었다.

찬수는 정돌이가 덮어준 담요를 보느라니 가슴이 아프고 치가 떨리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가 이 감방으로 옮겨오던 바로 그날 밤의 일이였다.

감방에서는 젊은 청년 하나가 사망했다.

그는 철도운수로동자였다. 그는 임금지불을 요구하다가 파업선동자로 지목되여 체포되였고 경찰서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였기때문에 형무소로 넘어와서도 늘 앓고있었다. 그러나 감옥병원이 만원이고 또 약조차 가져다 주지 않아 결국 여러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앓다가 끝내 사망하고만것이였다.

그 청년은 최후에 숨을 거두면서 이 담요로 자기의 시체를 싸내가지 말고 감방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돌려가며 덮으라는 유언을 정돌이에게 남겼던것이다.

이 유언은 찬수도 들었다. 그는 청년이 숨을 거둘 때 감방안의 사람들모두가 침통한 얼굴에 눈물을 흘리던 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찬수는 그 슬픈 래력이 깃들어있는 담요를 정돌이가 자기에게 덮어줄 때마다 가슴이 몹시 아팠다.

그는 또다시 쇠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찬수의 기침소리가 울리자 이방저방에서 기침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져갈수록 수감자들의 기침소리는 더 심하게 들리였다.

기침소리는 때때로 물결이 굽이치고 지나가듯 파장형으로 전파되기도 했다.

간수놈들은 기침소리가 요란스럽게 나기만 하면 수감자들이 무슨 불온한 신호들을 하는것이나 아닌가 하고 신경과민증을 일으키며 발원지를 잡아내려고 달려오군 했다.

찬수가 쇠기침을 련발하자 어느 틈에 창구멍으로 그를 흘기며 들여다보는 간수 한놈이 있었다.

《아니, 이 자식들아! 취침시간에 잠은 안 자고 웬 놈의 기침이야?》

간수놈은 포악스럽게 고함쳤다.

《나오는 기침을 어떻게 참으란 말이요?》

찬수의 대답은 퉁명스럽게 들렸다.

《망할자식같으니! 왜 기침을 먼저 해가지고 감방을 모두 소란하게 하느냐 말야?》

간수놈은 또 이런 말같지 않은 소리로 트집을 잡는것이였다.

어느 감방에선지 기침소리가 갑자기 요란스럽게 들리자 그것은 또 다른 이웃방으로 퍼져갔다.

때로는 기침소리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간수놈들의 지나친 학대와 모욕에 대한 항거에서 나온 일종의 시위로도 될수 있었다.

간수놈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쪽을 향하여 달려갔다.

찬수는 겨우 기침을 진정하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틈에 무슨 소리엔지 깜짝 놀라 잠을 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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