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비밀

9

 

영옥은 자기의 진정을 모르고 역정만 내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도 다짜고짜로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부을것을 생각하니 은근히 겁이 나고 불안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웬 일로 여태까지 돌아오지 않는지, 암만해도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만 같아 더욱 걱정스럽고 초조해졌다.

얼마쯤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대문흔드는 소리가 났다.

영옥은 아버지가 돌아와 흔드는 소리같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마당으로 얼른 뛰여내려가지 않을수 없었다.

《아버님이세요?》

《아닙니다, 김만국입니다. 어서 대문 좀 여십시오.》

만국의 목소리는 심상치 않았다.

영옥은 조금전에 집을 나간 김만국이가 되돌아온것이 이상스럽고 또 그의 당황한 음성을 듣게 되자 어떤 불길한 예감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였다.

그는 얼른 대문빗장을 벗기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깜짝 놀라며 《어마나!》 하고 비명을 지르지 않을수 없었다.

대문안으로 들어서는 김만국의 등에 업힌 사람이 바로 다름아닌 어머니였기때문이였다.

《아니, 어머니! 이게 어찌된 일이세요?》

영옥은 가슴이 떨리고 억이 막혀 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만국의 등에 업힌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만국은 안방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아래목에 눕히였다.

《대체 어머니가 왜 이렇게 되셨어요?》

영옥은 흙투성이바람인 어머니의 두루마기와 조바위를 벗기면서 물었다.

김만국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였다.

《너무 놀라지는 마십쇼. 내 천천히 이야기하죠. 우선 의사를 부릅시다.》

만국은 침착하게 말하면서 마루로 나가 전화를 건다.

영옥은 허둥지둥 랭수그릇을 떠가지고 들어와 어머니의 입에 떠넣기 시작했다.

《어머니! 어머니! 물 좀 삼켜보세요, 네? 어머니! 어머니!》

그러나 아무런 동정이 없는 어머니는 눈을 감고 해쓱해진 얼굴로 거의 무의식상태에 빠져있었다.

만국은 여기저기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잘 걸리지 않거나 어떤 병원은 의사가 없었다.

겨우 한참만에야 어느 병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의사의 왕진을 요청하고 방으로 들어가 영옥 어머니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도대체 우리 어머니가 어디서 이렇게 다치셨어요?》

《네- 아까 댁에서 나가는 그길로 동대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전차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큰길쪽에서 갑자기 교통사고가 일어났기에 뛰여가봤더니 차에 치운 사람이 바로 어머니가 아니겠습니까…》

만국은 잠간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어머니를 들이받은 차는 미군놈의 찌프차였습니다. 그놈은 어머니를 깔아놓고도 뺑소니를 쳐 달아나버리고말았습니다.》

만국은 분격에 넘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달아나버린 놈은 잡을수 없고 해서 내가 어머니를 등에 업고 그 근방 병원을 찾아갔으나 문을 안으로 잠그고 아무리 고함을 쳐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바루 댁으로 모시고 온겁니다.》

영옥은 만국이가 이렇게 어머니를 등에 업고 온것이 몹시 고마왔으나 언제 인사를 할 경황도 없었다.

《어머니! 어머니! 정신 좀 차리세요.》

그가 계속 부르는 소리에 어머니는 드디여 정신이 좀 들었던지 겨우 눈을 뜨는것이였다.

《영옥이냐? 오오, 여기가 집이로구나. 내가 어떻게 집엘 왔니?》

《어머니! 어디가 아프세요?》

《모르겠다, 어디가 아픈지… 내가 아마 미군놈의 찌프차에 치였지? 네가 학교에서 당할번 하던 화근을 기어이 내가 당했구나! 그놈은 그대루 도망쳐버렸지? 아이유, 김서방! 참 고마우이. 김서방이 날 업고왔지? 김서방이 아니였으면 내가 그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었을게다. 어찌 다행히도 김서방이…》

어머니는 그제야 겨우 의식이 조금씩 드는 모양이였다.

《그런데 영옥아, 아버지헌테서 무슨 전화오지 않았니? 아버지는 지금 나를 기다리고있을터인데… 어쩌면 좋으냐, 응?》

어머니는 걱정스럽게 말하면서 맥풀린 눈으로 영옥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걱정은 마세요. 이제 오실거예요.》

《아니야, 내가 가야만 오실텐데…》

어머니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윽고 의사가 간호부를 데리고 왔다.

그는 외과와 내과를 겸한 개인의사였다.

환자가 미군찌프차에 치여 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의사는 별로 놀라는 빛도 없이 진찰을 시작했다.

오른쪽발목뼈와 앞정갱이뼈가 골절이 되고 머리에 타박상을 입었으며 왼쪽륵골에도 타박이 심하다는 진단을 내리고는 강심제와 지혈제와 진통제주사를 놓고 약을 발라 붕대를 감아주었다.

《원, 웬 놈의 교통사고가 그리 많은지… 오늘두 우리 병원에서 다섯명을 취급했소. 만삭된 임신부에다 어린아이 둘을 한꺼번에 깔아죽이구두 못 본체 하고 달아나는 미군놈들의 꼬락서니를 언제나 안 보게 될는지 원…》

의사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가방을 챙기였다.

그가 치료비를 받아가지고 뜰에 내려섰을 때 통행금지를 알리는 고동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김만국은 의사의 뒤를 따라나섰다.

《아니, 어떻게 가시려구 그러세요? 래일 가세요.》

영옥이가 못 가게 권했으나 만국은 자기 집안일이 걱정된다고 하면서 대문간을 나섰다.

《그럼 조심하세요.》

《네, 실직자가 겁낼게 뭐 있습니까, 래일 다시 오죠.》

영옥은 만국이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골목 저편으로 사라져가는것을 보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얼마쯤 지나자 아버지가 어떤 사람에게 부축되여 들어왔다.

그는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한채 비틀거리며 들어와서는 마누라가 부상당해 누운것도 모르고 마루바닥에 쓰러지고말았다.

영옥은 겨우 아버지를 방으로 끌어들여 웃옷을 벗기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밤이 깊었으나 잠들지 못했다. 서럽고 외롭고 안타까운 생각만이 북받쳐올랐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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