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비밀

8

 

《그동안 혹시 상품미수금은 얼마나 들어왔는지 모르시겠습니까?》

김만국의 이 질문에 영옥은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사실 영옥은 자기네 공장이지만 공장내용에 대한것은 잘 알지 못했던것이다.

《…물론 짐작하겠지만 공장문을 닫던 날 우리는 밀린 임금을 다 받지 못한채 어쩔수없이 그대로 실직자가 되였습니다. 현재 우리들은 100여명이 다 누구라 할것없이 취직한 사람이 없습니다. 가족들은 굶어서 다 죽게 됐습니다.》

김만국은 심각하게 말했다.

영옥은 자기네 공장에서 실직당한 이 로동자들이 굶주림을 참다 못해 결국 받지 못한 임금을 받으려고 왔다는것을 깨닫게 되자 더욱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일에 오늘 밤 아버지가 술값으로 없애는 돈을 차라리 이 로동자들에게 나누어준다면 얼마나 생색이 나고 좋을것인가? 영옥은 이렇게 생각되자 남의 말을 잘 듣는 아버지가 민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어디 먼데 가셨나요?》

한 로동자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요즘 며칠은 공장일을 다시 시작하시려구 날마다 무척 애를 쓰고 다니세요.》

영옥은 로동자들의 마음을 잠시라도 위로할가 하여 이렇게 말했으나 그들은 의외로 영옥이의 말에 별반 흥미를 느끼지 않는것 같았다.

마치 그들의 얼굴에는 《안되는 놈의 공장 또다시 문을 열어 뭘해!》 하는듯 한 서글픈 표정들이 넘치고있었다.

김만국은 자기 양복속에서 담배꽁초를 꺼내피우며 여전히 무겁게 침묵을 지키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공장문을 다시 열겠다구 사장님이 애를 쓰셔두 아마 잘 안되실겝니다. 차라리 단념하시는게 좋겠지요. 한번 문닫은 공장을 다시 개업하기란 요즈음 와선 더욱 불가능하니까요. …》

영옥은 이 로동자들이 자기들이 일하던 공장문을 다시 여는 문제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또 찬성하지 않는 눈치를 보자 공연히 그 말을 끄집어내였다고 후회하였다.

영옥은 그들이 오늘 밤 자기 집을 찾아온 목적이 그런 이야기를 들으러 온것이 아니라는것을 더욱 느끼자 그들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런데 학생. 아까 설렁탕 주문한것중 내건 그만두시구 그 설렁탕값을 내게 주시우. 어찌 어린것들을 굶겨놓고 내 배만 채우고 들어가겠습니까?》

침울한 얼굴을 반쯤 쳐들며 녀성로동자가 영옥이에게 간청했다.

《나두 그만두겠시다. 어찌 가족을 굶겨놓고 나만 먹겠소.》

한 로동자가 또 말했다.

《옳습니다. 모두다 그만둡시다. 차라리 설렁탕값을 나누어주시우.》

김만국이가 결론지어 말했다.

영옥은 자기의 호의가 무색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주문한지 이미 오래되였으므로 금방 들이닥칠것만 같았기때문에 《아마 곧 올거예요.》 하고 말했다.

《내 전화 걸어보죠.》

김만국은 선뜻 일어나 전화를 걸었다.

《뭐요? 벌써 떠났어요?》

그는 랑패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와 제가 앉았던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윽고 얼마 안되여 대문밖에서 설렁탕배달부가 찾는 소리가 들리였다.

영옥이가 뛰여나가 문을 열자 설렁탕배달부는 설렁탕그릇을 목판에 받쳐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는 마루우에 내려놓기가 바쁘게 먹을 사람들의 신발들을 휙 훑어보고는 그들이 먹기 전에 대금부터 받아가려 하였다.

하지만 영옥에게는 돈이 없었다.

《있다가 그릇 찾으러 와서 받아가세요.》

《안됩니다.》

설렁탕배달부는 퉁명스럽게 거절하였다.

《돈은 우리 어머니에게 있는데 지금 밖에 잠간 나가셔서 그래요.》

《힝! 빌어먹을… 재수가 없을라니깐…》

설렁탕배달부는 많이 속아보았다는듯이 다시 목판을 둘러메는것이였다.

《아니 이봐요. 우리 어머니가 들어오시면 당장 드려요.》

《…》

배달부는 검다희다 말이 없이 그대로 휙 목판을 둘러메고 나가버리였다.

잠시동안 마루에 풍기던 누릿한 설렁탕냄새와 양념냄새가 굶주린 비위만 건드리고 사라지자 그들은 서로 얼굴들만 멍하니 바라볼뿐이였다.

영옥은 한없이 미안하였다. 사실 자기에게 돈은 없었지만 설렁탕이 오기 전에 어머니가 의례 먼저 돌아올줄 알았고 설렁탕값쯤이야 줄수 있으리라고 믿었던것이 도리여 그들을 실망케 한것이였다.

영옥은 어서빨리 어머니가 돌아왔으면싶었다. 그러나 웬 일인지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안 오실가?》

영옥은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어느 틈에 벌써 통행금지시간이 가까와왔다.

영옥은 초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로동자들도 시계를 바라보면서 서로 눈치들만 살피였다.

《자, 다들 갑시다! 집들이 모두 시왼데 이러다간 통행시간내에 못가겠소.》

김만국이가 먼저 일어서자 다른 로동자들도 어쩔수없이 부스스 일어섰다.

《아이유, 헛걸음들을 하시게 돼서…》

영옥은 민망스러웠으나 그들을 붙들어둘수도 없었다.

《돌아오시거든 말씀이나 전하십쇼. 래일 다시 오겠다고…》

김만국은 로동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영옥은 대문밖까지 나와 로동자들이 맥없는 걸음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한참동안이나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정신없이 우두커니 서서 로동자들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어두운 골목을 바라보았다.

영옥은 자기네 공장이 망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저렇게 처량한 걸음걸이로 돌아서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울분이 치솟아올랐다.

자기 집 조그만 공장까지도 망하게 하고 로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굶어죽게 하는 놈은 대체 어떤 놈인가?

영옥은 새삼스럽게 미국놈이 증오스러워졌다.

마리야녀학교에서 동맹휴학사건이 일어나게 된것도 미국놈때문이고 아무 죄도 없는 홍선생이 감옥에 갇히게 된것도 미국놈때문이며 자기 오빠가 집에 오지도 못하고 행방불명이 된것도 그놈들때문이라고 생각하자 영옥의 작은 가슴은 더욱 분격으로 벅차올랐다.

미국놈은 여전히 남조선에서 물러가지 않고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반대해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버지는 왜 하필 그놈들의 앞잡이군대의 군복을 만드는 군수피복공장을 세우겠다고 딸의 례장옷감까지 팔아치우려 하는것일가?

영옥은 생각할수록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는 이런 생각에 잠겨 대문밖에 한참동안 서있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돌아오지나 않나 하고 어두운 골목 저쪽을 살폈다.

그러나 어머니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갑자기 방안의 전화가 따르릉하고 울리였다.

《누구세요?》

《나다. 느 어머니 좀 대라!》

《네? 어머니요? 안 오셨는데요.》

《뭐라구? 방정떨지 말구 어서 대라, 대!》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미 혀가 꼬부라진 상태였다.

《정말 여태까지 안 오셨어요. 아버지는 어디 계셔요, 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의 모녀가 방정떨면 될것두 안돼! 어서 대!》

아버지는 성을 왈칵 내며 고함쳤다.

수화기에서는 어렴풋이 노래소리, 장고소리가 흘러나오고있었다.

《아이유, 참 아버지. 자꾸만 그러시면 어떡하세요, 글쎄.》

《이 계집애야, 벌써 간지가 언젠데 여태까지 집에 안 들어갔다구 그래, 그러지 말구 어서 대라, 대!》

《정 제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오셔서 보세요!》

《뭣이 어째? 내가 갈 틈이 있으면 전화질하겠니? 그리말구 얼른 느 어머니더러 내가 부탁한것 가지구 빨리 오라구 해! 이러다간 암만해두 너의 모녀가 날 망신시켜놓겠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게 들리였다.

과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가지고 오라고 부탁한 물건은 무엇이며 그것을 빨리 가지고 안 가면 망신을 한다는것은 무슨 소리인가?

어머니가 술값으로 돈을 가지고 가셨는데도 그것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공장문을 다시 열기 위해서는 술을 먹여가며 교제를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은 어째서 아버지는 그렇게 혀꼬부라진 소리가 나오도록 약주를 마셨을가?

아무리 약주에 취해 정신이 얼떨떨한 아버지이기로서니 딸의 말도 믿지 않고 의심하는데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마음이 괴로왔다.

영옥은 수화기를 귀에 댄채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울음이 배여나오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러나 잠시후 그는 정신을 다잡고 《아버지! 제발 약주 좀 그만 잡수시고 얼른 돌아오세요, 네? 통행시간두 다 되잖았어요?》 하고 침착하게 애원하였다.

딸의 울음섞인 처량한 목소리가 귀를 울리였건만 아버지는 너무도 랭정하게 《아니, 너 정말 이러기냐? 그만둬라, 어디 보자!》 하고 성을 왈칵 내며 전화를 딱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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