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비밀

7

 

영옥은 대문을 안으로 잠그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웬 일인지 기분이 이상스러워졌고 쓸쓸한 생각조차 들었다.

이렇게 자기 혼자 밤에 집을 지켜본적은 별로 없었기때문이다.

그러나 영옥은 쓸쓸한 생각보다는 어머니가 자기를 못 믿는것만 같아 너무도 섭섭하고 야속스러운 생각까지 솟아올랐다.

어머니가 밖에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 장농문에 자물쇠를 채운거라든가 또 벽장에까지 주의를 돌리며 전에 보지 못하던 다른 큰 자물쇠를 채우고 간 사실들을 따져보면 어머니는 확실히 자기를 믿지 않는것만은 틀림없다고 느껴졌다.

어머니가 허둥대다가 그대로 깜박 잊고서 잠그지 않고 나가기만 했더라면 얼마나 손쉽게 자기의 례장감을 맘대로 뽑아낼수 있었을것인가?

영옥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의 례장감이 들어있는 장농자물쇠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열수 있을가 곰곰히 생각해봤다.

어떻게 해서든지 감쪽같이 열려졌으면… 그는 이렇게 공상에 잠기였다.

한벌, 두벌, 세벌… 비단옷감들을 뽑아내느라 바쁜 자기의 손길-그것이 곧 돈으로 바뀌고… 그 돈을 가지고 변호사에게로 달려가는 바쁜걸음. 이윽고 형무소에서 석방되여나오는 홍선생의 기쁜 얼굴…

《선생님!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모두가 저때문이였어요. 용서해주세요.》

눈물을 글썽거리며 홍선생의 가슴에 안길듯 달려들어가는 자기의 모습!

《공연히 영옥이가 나때문에 지나치게 걱정을 했구만.》

빙그레 웃으며 자기의 애타는 심정을 알아주는듯 한 홍선생의 얼굴…

영옥은 이런 공상속에 사로잡혀있다가 소스라쳐 일어섰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혼자 집에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농문을 열어 목적을 이룰 결심이였다.

영옥은 순진하게도 장농문을 그대로 열어볼 생각으로 열쇠를 잡아당겨도 보고 밀어도 보았다.

그러나 까딱하지도 않았다.

영옥은 그 언젠가 어머니가 열쇠를 잊어버리고 저가락으로 곁쇠질을 해서 여는것을 본 일이 생각나 자기도 그렇게 해보려고 부엌에 가서 저가락을 두어개 들고 들어왔다.

그는 어머니가 하던 식대로 저가락끝을 넣어 곁쇠질을 해봤으나 도저히 열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돌리면 금방 열릴듯 하다가는 그만 미끄러져 빠져나가군 했다.

그는 저가락으로는 곁쇠질이 안될것 같아 이서랍저서랍 바삐 뒤져 쇠끝, 핀세트, 칼, 머리삔 같은 여러가지 도구들을 찾아내여 곁쇠질을 해봤다.

영옥이의 고심은 마침내 성공했다.

이것저것 곁쇠질을 하는 동안에 저도 모르게 자물쇠가 열려졌던것이였다.

영옥은 순간 몹시 기뻤다. 그는 얼른 장농문짝을 제껴놓고 속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이내 실망하고말았다.

그는 비로소 어머니가 오늘 밤 벽장문에 큰 자물쇠를 채운 리유를 깨달을수 있었다.

그는 장농문을 닫고 벽장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벽장의 자물쇠는 장농의 자물쇠와는 구조부터 달랐다.

저가락이 들어가서는 어떻게 된셈인지 꼭 물려 빠지지를 않았다.

그는 흔들어도 보고 비틀어도 보고 잡아당겨도 보았으나 도무지 빠져나오지 않았다.

이때 별안간 밖에서 대문흔드는 소리가 났다.

영옥은 어머니가 벌써 오는것만 같아 당황해서 저가락을 잡아뽑으려 했지만 그만 저가락이 자물쇠속에서 뚝 부러지고말았다. 부러진 반 토막은 자물쇠속에 물린채 끼여있었으나 영옥이의 재간으로는 도저히 뽑아낼수가 없었다.

영옥은 부러진 반토막을 만지작거리다가 선뜻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 저가락은 바로 아버지의 저가락이였기때문이다.

또 대문흔드는 소리가 났다. 영옥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세요?》

영옥은 대문간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아닙니다, 만국이요.》

《네, 만국씨세요?》

영옥은 만국이를 잘 알고있었다. 더구나 이번에 자기가 류치장에서 나온 이후 만국이가 자기에게 얼마나 고생했느냐고 따뜻하게 대해주던것으로 보아도 보통 딴 로동자와는 달리 생각되였다.

그는 자기네 공장 로동자중에서도 공장을 위해서 제일 성실히 일해주던 사람이였던만큼 영옥은 서슴지 않고 빗장을 밀고 대문을 제끼였다.

이 순간 영옥은 깜짝 놀랐다. 김만국의 뒤에는 대여섯명이나 되는 로동자들이 서있었기때문이다.

그중에는 얼굴이 해쓱한 녀성로동자도 한명 끼워있었다.

《아이구 학생,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수. 그 죽일놈들이 무슨 죄가 있다구…》

녀성로동자는 영옥이에게 인사를 했다.

《네, 여러분이 념려해줘서 속히 나왔죠.》

영옥은 겸손하게 말하며 만국을 바라보았다.

그는 밤중에 이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온것이 무슨 리윤지 대강 짐작되였으므로 《자, 어서들 들어오세요.》 하고 대문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사장님 안 계십니까?》

만국이가 대표로 물었다.

《네.》

《사실은 오늘 저녁에 와보라구 해서 이렇게들 모여왔는데…》

《그럼 오실 때까지 방에 들어가 기다려보세요.》

영옥이가 이렇게 말했으나 그들은 별로 방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뭐 여기서 기다리죠.》

한 로동자가 말했다.

《아니예요. 추운데 어떻게 밖에서 기다리세요? 어서들 방으로 들어가세요.》

영옥이가 권하는 바람에 그들은 영옥이를 따라 마루로 올라서서 건너방으로 들어갔다.

전등불빛아래 드러난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해서 볼수가 없었다.

겨울이 가까왔건만 아직도 홑옷을 그대로 입었고 양말뒤꿈치는 다 해져있었다.

얼굴들은 피기가 없고 몹시 여위였으며 머리를 깎지 못해 귀밑까지 더부룩한 사람이 세명이나 되였다. 속옷을 변변히 입지 못한탓인지 녀성로동자는 몸집이 훌쭉한데다가 더욱 추위를 타는것만 같이 보이였다.

영옥은 자기네 공장에서 일하던 이 로동자들이 이렇게 모두다 람루한 옷들을 입고 영양부족에 걸린것을 생각하니 안타깝고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아마 저녁들도 못 먹은것만 같았다.

《저녁진지들은 어떻게 하셨어요?》

영옥이가 걱정스럽게 물었으나 얼른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고 김만국이가 대표로 말했다.

《집에들 가면 먹게 되겠죠.》

그러나 이 말은 너무도 힘없이 들렸고 처량한 어조였다.

영옥은 얼른 나와 설렁탕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 아버지가 피우다 남겨둔 담배라도 있을가 하고 서랍을 뒤졌다. 절반쯤 남은 담배갑을 찾아가지고 돌아온 영옥은 그들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러나 그들은 담배조차 잘 피우려 하지 않았다.

《담배들이나 피우세요. 공장일이 잘됐으면 고생들을 안하실텐데…》

영옥은 걱정스럽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였다. 갑자기 기분이 침울해졌기때문이였다.

로동자들도 고개를 숙인채 아무 말이 없이 앉아있을뿐이였다.

실로 납덩이같이 무겁고 싸늘한 침묵이 한참동안 계속되였다.

그러나 마침내 김만국은 고개를 쳐들고 영옥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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