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비밀

6

 

밤이 깊었다. 영옥이 어머니는 방문고리를 안으로 걸고 벽장문을 열었다.

그리고 베개를 발돋움을 해서 깊숙이 넣어두었던 함짝 한개를 끄집어냈다.

검정함짝이였다. 뚜껑우에 뿌옇게 앉은 먼지는 오래동안 벽장속에 처박아두고 꺼내지 않았다는것을 말하여주는듯 했다.

이 함짝은 영옥이 어머니가 옛날 손종모에게 시집을 올 때 그가 자기에게 례장을 넣어보내준 함짝이였다.

지금 이 함짝속에는 아직도 옛날의 비단옷감들이 차곡차곡 들어차있다.

궁초, 모본단, 법단, 공단 등 저고리감들과 이불, 요, 두루마기감들이며 그밖에도 이름모를 여러가지 비단치마감들이 들어있었다.

뿐만아니라 손종모에게서 받은 례물인 금가락지와 금비녀 등 금붙이들도 이 함짝속에 들어있다.

영옥이 어머니는 이 함속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시집온 이후 지금까지 거의 30여년동안에 걸쳐 보물처럼 남모르게 귀중히 아끼며 보관해내려왔다.

금가락지와 금비녀가 있었지만 나들이할 때에는 소매치기가 겁이 나서 끼거나 꽂지를 못했고 또 집안에서는 너무도 사치스럽고 닳을가봐 사용하지 않았다.

어느덧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꽃다운 청춘시절이 가고 이제는 다 늙은 몸이 된 그는 이 비단옷감들과 금붙이들을 아들과 딸의 례장감으로나 보태쓰려고 깊숙이 처넣어두었던것이였다.

영옥이 어머니는 먼지를 털고 잠근 자물쇠를 열고 뚜껑을 가만히 벗기였다.

좀약냄새가 코를 콕 쏘았다. 그는 먼저 함짝귀퉁이로 손을 넣어 옷감속 밑바닥에서 명주로 싼것을 만져봤다. 가락지와 비녀가 쥐여졌다.

그는 다시 우에서부터 차곡차곡 가지수를 세여봤다.

봄에 한번 세여보고 좀약을 새로 넣어두었을 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었으므로 그는 비로소 안심이 되였다.

남편 손종모나 딸 영옥이를 못 믿는것은 아니였지만 이 함속에 있는 물건들에 대하여 그들부녀에게는 여직껏 비밀을 지켜왔다.

방안 웃목에 버젓한 장농이며 양복장이며 일본식《단스》(옷장의 한형태)도 있건만 구태여 벽장속 컴컴한 깊은 구석에 감추어둔 리유는 이 함짝의 존재를 남편은 물론 영옥이에게도 알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기때문에 남편이나 딸이 보는데서는 이 함짝을 꺼내본 일이 없었고 또 꺼내볼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 함속에 들어있는 물건들이 자기의 유일한 재산이며 또 이 유일한 자기 재산에 대하여 남편은 물론 아들이나 딸까지도 결혼할 때까지는 함부로 다칠 권리가 없다고 스스로 단정해왔던것이다.

그러나 집안의 경제형편이 점점 기울어져가고 공장문을 닫게 된 뒤부터 다른 가정용품들과 함께 이 함속에 들어있는 자기의 유일한 재산이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어떤 절박한 일이 있더라도 이 함속의 물건들은 굳건히 지키려고 생각해왔다.

그는 허리띠에 찬 열쇠주머니속에서 큰 장농열쇠를 찾아쥐였다. 자물쇠를 열고 장농문짝을 제낀 그는 잠간동안 그안을 유심히 살피였다. 그속에도 비단옷감들과 모직물들이 들어있었다.

이 장농속에 들어있는 옷감들과 물건들중에는 남편이나 딸이 알고있는것들도 적지 않았다.

영옥이 어머니는 그중에서 값이 비싼 모직물과 양단, 뉴똥 등 옷감들을 골라내여 벽장에서 내려놓은 함속에 넣었다.

그러나 함에는 골라낸 옷감들이 더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는 반침문을 열고 빈 버들상자를 꺼내다가 옷감들을 차곡차곡 챙겨넣기 시작했다.

이때 마루에서 전화가 따르릉하고 울리였다.

그는 이 순간 당황하였다. 미처 다 골라넣기도 전에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갔다가 남편이 들어오는 날에는 자기가 감추어둔 함속의 물건들이 탄로가 날것이 뻔한 일이기때문이다.

전화기는 또 계속 따르릉 울리였다.

이런 때는 영옥이가 얼른 나와 전화를 받아주었으면싶었으나 영옥이는 무엇을 하고있는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얘, 영옥아! 전화 좀 받아봐라!》

영옥이 어머니는 건너방쪽에 대고 고함쳤다.

전화를 받는 일은 언제나 어머니가 맡아했으므로 영옥은 숫제 전화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여나왔다.

《네, 아버님이세요? 지금 어디 계세요? 진지는 드셨어요? 어머니요? 잠간 계세요. …》

영옥은 수화기를 든채 어머니를 불렀다.

《얘, 지금 변소에 갔다구 좀 그래라. 들어오시지두 않구 무슨 전화라더냐, 얼른 들어오시라구 그래라.》

어머니는 허둥지둥 함짝과 버들상자의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채우고 영옥이의 눈에 띄지 않게 얼른 벽장속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그러나 함짝은 들어내릴 때보다 무거워져서 도저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벽장문턱까지 들어올릴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옥이를 불러 도와달라고 할수도 없었다.

그는 몹시 당황했으나 다시한번 힘을 다하여 번쩍 들어봤다. 겨우 문턱에 닿을가말가 했다.

《어머니! 뭘 하세요. 얼른 전화받으세요!》

영옥이가 미닫이를 열려고 했으나 이미 안으로 걸려있었다. 영옥은 어머니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좀 있거라. 벽장속에 쥐가 있어 쥐를 잡는다.》

영옥이 어머니는 얼른 둘러대면서 간신히 함짝과 버들상자를 벽장속에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얼른 고리를 벗겨 미닫이를 열고 마루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아니, 일찍 안 들어오시구 전화는 왜 하시우… 네? 아, 또? 글쎄 좀 생각해서 허시지 않구 또 술자리를 벌리셨구려. 네? 뭐요? 아 내게 글쎄 무슨 돈이 있다구 그러시우? 원 참…》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있는 동안 영옥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반침문이 열린채 그대로 있고 벽장문도 한짝이 잘 닫겨지지 않은것이 보이였다. 어머니가 쥐를 잡느라고 애쓴 흔적은 보이였으나 실패한것 같았다.

어머니는 어느 틈에 전화를 다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 쥐 잡으셨어요?》

《그 약은 놈의 생쥐새끼가 농속으로, 벽장속으로 지랄발광을 치며 돌아가기에 잡으려 했더니 어디 잡히니, 그만 도망가구말았지.》

어머니는 시치미를 뚝 떼고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양복장문을 열고 두루마기를 꺼내여 입기 시작했다.

《어디 가세요?》

《네 아버지가 또 누구한테 술대접하나부다. 한두번도 아니고 술밑천은 나보고만 대라니 이걸 어쩌란 말이냐?》

어머니의 표정은 근심과 불만으로 가득차있었다.

《참, 아버지두 딱하셔.》

영옥이도 침울해지며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니는 머리에 조바위를 쓴 다음 다시 장농문을 열고 자기 손가방속에서 돈뭉치를 꺼내 세여보지도 않고 그대로 두루마기주머니속에 집어넣으며 허둥지둥 미닫이를 열고 나갔다. 그러나 다시 방으로 들어오더니 벽장문과 장농문짝에 자물쇠를 절컥 채워버린다.

《어머니, 그렇게두 내가 못미더우세요? 다시 들어오셔서 자물쇠를 채워놓고 가시면서…》

영옥이는 어머니의 태도가 암만해도 이상하고 불쾌하게 느껴졌다.

《잔말말구 어서 나와 대문이나 얼른 잠가라.》

어머니는 미닫이를 다시 열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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