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비밀

5

 

영옥은 입을 다물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면 응당 방으로 들어오라고 재차 독촉할것이고 방으로 들어가면 교장 김치선에게 하기 싫은 인사를 해야 할것이고 또 오늘 조퇴하고 돌아온 사실을 두고 아버지가 교장앞에서 반드시 자기를 책망할것이고… 이런것들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을 때 영옥은 대답을 피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영옥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 들리였다. 이번에는 아까보다도 훨씬 크게 들렸고 또 약간 노기가 풍기는 음성이였다.

《어머니, 나 물길러 갔다구 그러세요.》

영옥은 어머니에게 입속말로 말하고나서 바께쯔를 들고 휙 밖으로 나와버렸다.

영옥은 김치선이가 오늘 자기뒤를 따라 집에 나타난것이 암만해도 수상하고 밉살스러웠다.

혹시 아버지가 김치선을 불러서 온것인가? 그럴리는 없을것 같았다.

영옥은 들고나간 바께쯔를 수도앞에 내려놓았다.

수도앞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있었다.

오히려 그것이 이날만은 영옥이에게 있어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거의 한시간 반이나 차례를 기다려 물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김치선은 이미 가고 없었다.

방안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영옥은 갑자기 불안스럽고 기분이 침울해졌다. 그는 우두커니 부엌에 서서 다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당신은 글쎄, 남의 말두 잘 듣는다니까… 그만둬요. 교장이면 교장노릇이나 할 일이지 무슨 우리를 제일 위하는체 하고…》

어머니의 말소리가 높이 들리였다.

《글쎄 모르면 가만히 좀 있으래두 그래. 군수피복공장으로 바꾸어놓기만 하면 우리 공장이 다시 살아난단 말야.》

아버지의 퉁명스런 목소리였다.

《난 그 말 도무지 믿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이 먹은 간이 있으니깐 지금 와서 어물쩍하는걸 가지구 당신은 정말로 들으시우?》

《글쎄 그렇잖단 말야. 임자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란 말야. 만날 속아넘어갈가?》

《난 군수피복이구 뭐구 이젠 다 귀찮아요. 그 안되는 놈의 공장을 또 해요?》

어머니의 거치른 목소리가 똑똑히 들리였다.

《그럼 어쩌란 말요? 이대루 나가다간 단 몇달 못살구 바가지 차게 된다는걸 알아야지.》

《…》

《이제는 막다른 골목이요.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결국 망할바엔 한번 비상수단을 써보다가 망해보잔 말이요.》

아버지의 목소리는 거칠게 들리였으나 어딘지 비장하게 울리였다.

《글쎄, 난 도무지 당신 생각 알수 없구려. 그까짓것 다 때려 처분해봤자 물건만 송두리채 없어지지 몇푼이나 되겠다구 그럽니까? 안돼요. 그건, 부모도리에… 그래두 그것만은 없는셈 치고 손대지 맙시다. …》

어머니의 목소리는 애원에 잠기였다.

영옥은 이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 같았다.

부모의 도리에 그래두 그것만은 손대지 말자고 말한 어머니… 확실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무엇을 요구했다는것을 충분히 짐작할수 있었기때문이다.

《흥! 집안이 망하는 판에 딸자식 시집밑천이 다 뭐람. 양광스럽게…》

아버지는 화를 왈칵 내며 미닫이를 홱 열고 마루로 나오는 모양이였다.

영옥은 자기 정신으로 돌아와 부엌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모자를 쓰고 뜰아래로 내려서며 《얘, 영옥아!》 하고 거치른 목소리로 불렀다.

《네?》

《너 왜 오늘 학교에서 조퇴하고 왔니? 교장선생이 왔다간것 모르니? 돈을 흠뻑 들여서 빼내놓으니깐 그저 네 맘대루 가구싶으면 가구 오구싶으면 오구… 왜 그리 자꾸만 가루꿰지는거냐?》

아버지는 성을 내며 영옥을 꾸짖었다.

영옥은 그저 잠잠히 서있기만 했다. 아버지가 성이 났을 때 말대꾸를 했다가는 집안살림살이가 성해나지 못하기때문이였다.

영옥은 아버지가 너무도 자기의 심정을 몰라주는것이 무정스럽고 안타깝기만 했다.

더구나 김치선이에게 또 속을것만 같은 아버지가 한편으로 가엾기도 했고 또 미련한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지기만 했다.

영옥은 아버지가 밖으로 휙 나가고난 뒤에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니, 교장이 와서 나에 대해 뭐라구 하고 갔어요?》

《낸들 아니?》

《무슨 군수피복공장을 만들게 해준다구요?》

《모르겠다. 자기가 무슨 군수국장인지 뭔지를 잘 안다나부더라.》

《그러니깐 운동비를 준비하라 그 말이죠?》

영옥의 목소리는 의분에 떨리였다.

《…》

《난 아버지 하시는 일에 찬성할수 없어요. 어머니도 끝까지 반대하셔야 해요.》

《넌 어쨌든 아버지 하시는 일엘랑 좋든싫든 참견말아!》

《왜 참견 안해요? 어머니는 때때루 아주 케케묵은 말씀만 하세요. 부모가 하시는 일이 잘못되는것을 보고두 가만히 있어야만 해요?》

영옥은 정면으로 어머니를 공격하였다.

《글쎄 너는 가만있어! 내가 다 알아할테니깐…》

《알아하시긴 뭘 알아하신다구 그러세요. 두고보세요. 이제 아버지헌테 장속에 둔것들을 모조리 빼앗기지 않나.》

영옥의 이 말에 어머니는 정색을 하며 《념려말구 너는 너 할 공부나 해. 아버지가 혹시 네 례장감까지 꺼내가실가봐 그러니?》 하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의 생각뿐이지 암만해도 조만간 그것들이 아버지수중에 들어가 운동비로 쓰일 위험성이 없지 않은 이상 그대로 방관할수는 없었다.

더구나 자기의 례장감은 홍선생의 석방운동비를 마련하기 위한 유일한 원천이기때문에 이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수중에 넣어두어야 할것이건만 어머니가 그것을 쉽사리 꺼내줄것 같지 않았다.

영옥은 실로 가슴이 답답하고 초조하여 견딜수가 없었다.

《어머니, 내 물건은 미리 나한테 주세요!》 하고 어린애처럼 떼를 써보고도싶었으나 어머니가 그런 말을 선선히 들어줄리 없다고 생각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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