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녀학교

3

 

20명의 녀학생들을 앞에 세워놓고 교장 김치선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에- 너희들은 오늘 큰 영광이야. 전교 900여명 학생가운데서 선발되였으니 말이야!》

김치선은 먼저 이렇게 서두를 떼면서 20명 학생들의 표정을 살피였다.

《다른게아니라 오늘 밤 기념파티에 너희들 20명을 학생대표로 참가시킬테야. 그것은 너희들이 가사실습에서 열성이고 또 가정이 다 좋고 또 너희들은 전교적으로 성적이 우수하고 인상이 다 아름답고 상냥스럽고 명랑한 성격들을 가졌으니깐. 특히 미국손님들에게 호감을 줄게란 말야! 그리구 미국손님들이 선물을 가져오면 그것은 모두 너희들이 받게 되는것이니까… 아주 너희들 오늘 복 만났어!》

김치선은 여전히 생글거리며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였다.

《어떤 손님들이 오십니까?》

학생 하나가 궁금한듯이 물었다.

《음, 정말 알고보면 우리 학교의 큰 영광이야! 오늘 밤 오시는 손님들은 바로 유엔군사령부에 계시는 고급장교들을 비롯해서 우리 학교를 원조해주는 미국실업가들과 문교부 고관 그리고 선교사 그리고 국회의원들 또 우리 학교 리사장이하 리사들… 모두 유명한 어른들이야!》

학생들은 그저 멍하고 서서 잠잠하였다.

《…문제는 너희들이 주인이 돼서 오늘 밤 손님들을 잘 접대해야 된단 말이야. 너희들이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한 뒤에 손님을 초대하더라도 접대를 잘해야 남편의 위신이 서는거야. 오늘 밤 우리 학교의 위신이 서느냐, 망신을 하느냐 하는 문제는 바로 너희들 20명에게 달렸어.》

김치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학생 하나가 불쑥 입을 벌렸다.

《어떻게 접대를 해야 잘하나요? 우리가 뭘 알아요?》

《음, 내가 그 요령을 가르쳐주지.》

김치선은 다시 가벼운 웃음을 지으면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첫째,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대할것. 둘째, 손님들에게 음식을 잘 권할것. 셋째, 손님들이 너희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면 사양말고 먹을것.》

《술을 자꾸 마시라고 권하면 어떡해요?》

어떤 학생 하나가 걱정스러운듯이 물었다.

《음, 그야 학생이 술을 마셔서는 안되지. 더구나 녀학생이… 그러나 오늘 밤만은 특별한 손님들이 오시니까 만일 술을 권하면 거절말고 마시는체 하는것이 례의야. 하하하…》

김치선은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며 한바탕 간사하게 웃었다.

학생들은 또다시 잠잠히 서서 김치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또 나오나 주의하였다.

《자, 이제 나가서 너희들은 모두 화장들을 하고 교복을 벗고 치마저고리를 입고 가사교실에 대기하고 앉아있어.》

김치선의 지시가 떨어지자 학생들은 모두 교장실을 나왔다.

선발된 20명 학생들은 서로 다투어 얼굴들을 씻고 분을 바르고 머리를 다시 만지며 모양을 냈고 재봉실에 들어가 교복을 벗어버리고 미리 가져다준 접객용치마저고리로 바꾸어입었다.

노랑저고리에 분홍치마, 람색치마에 흰저고리, 우아래 새빨간 치마저고리, 우아래 새하얀 치마저고리… 형형색색의 옷들을 입은 20명의 학생들은 확실히 학생으로 보이질 않았다.

영옥은 오늘 웬 일인지 화장을 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전교를 대표해서 선발된 20명가운데 하나인 자기인것만큼 《영예감》과 《즐거움》을 느껴야 할 자기가 화장할 생각이 나지 않는것은 무슨 리유에선가?

첫째 그는 오늘 가사실습비를 내지 못한것때문에 천대를 받고 로역을 한데서 기분이 불쾌했고, 둘째 선발된 20명 학생들의 가정이 모두 좋다느니, 성적들이 우수하다느니 한 말은 무엇을 표준하고 한 말인지 잘 리해되지 않을뿐아니라 부자연하고 해괴하게 들렸기때문이였다.

그것은 20명가운데 4~5명의 학생은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들이였고 또 5~6명의 학생은 학비를 제대로 잘 내지 못하는 형편이였건만 어찌되여 이 학생들까지 통털어 성적이 좋고 가정이 좋다고 했는지 알수 없었다.

영옥은 다시 《허드레반》으로 내려와 나머지 일을 거들려 하였다.

《얘, 넌 화장 안하구 왜 여기 와서 어정거리니?》

최보배가 영옥을 쏘아보았다.

《난 허드레반에서 일하게 해주세요.》

영옥은 태연스럽게 말했다.

《왜?》

《…》

《안된다. 교장선생님의 지시를 까먹을 작정이냐? 어서 화장하고 옷 바꿔입어. 시간없다!》

최보배는 고함을 꽥 질렀다. 영옥은 어쩔수없이 세면을 하고 화장을 했다. 그리고는 재봉실에 가서 자기 치마와 저고리를 꺼내여입었다.

우아래 백설같이 흰 비단치마저고리를 입은 영옥의 모습은 20명중에 류달리 뛰여나보이였다.

연회시간이 가까왔다. 운동장에는 찌프차와 승용차가 한대두대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연회에 초대되지 못한 교원들은 슬금슬금 교문을 나가고있었다.

찬수도 물론 연회에 초대되지 못한 교원중의 하나였다. 그는 오늘 연회에는 초대되지 못했으나 퇴근할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가 오늘 밤 숙직당번이기때문이였다.

찬수는 미술전람회장설치를 채 끝마치지 못하고 숙직실 접수구로 나와 앉았다.

늦가을 해는 짧을대로 짧아 어느새에 황혼은 어둠과 바뀌였다.

넓은 운동장에는 20여대가 넘는 승용차와 찌프차가 즐비하게 서있었고 숙직실과 멀리 떨어진 소강당으로부터는 요란한 박수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찬수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숙직실에 혼자 앉아서 신문을 펼치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소사 박로인이 들어왔다.

그는 대머리가 벗겨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였다. 우아래 검정빛 겨울학생복을 입었으나 양복이 작아 몹시 팽팽하고 거북해보였다.

《아, 홍선생님! 저녁진지 안 잡수셨죠? 어서 가서 잡숫고 오십쇼. 하루종일 전람회장 꾸리느라고 점심도 못 잡숫고서 게다가 저녁도 안 잡숫고 숙직을 해낼듯싶습니까?》

박로인은 의자에 걸터앉으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찬수는 아닌게아니라 몹시 피곤했고 시장기도 들었다.

《그럼 내 식당에 갔다오리다.》

찬수는 박로인에게 부탁을 하고 기숙사식당으로 찾아갔다.

기숙사식당은 벌써 식사가 끝난 뒤였다. 찬수는 식권 한장을 떼고 식사를 한 다음 운동장으로 내려섰다.

연회가 열린 소강당은 전기불빛이 화려하게 빛났고 유리창마다 드리운 화려한 카텐사이로는 화기에 가득찬 호화스러운 실내가 딴세상처럼 엿보였다.

찬수는 이 연회에 초대되지 못한 자기가 새삼스럽게 이 학교에서 존재가 없는 교원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분하거나 불쾌한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는 의례히 자기는 말석교원이니 초대에서 제외되여야 할 사람 같기도 했다.

다시 숙직실로 돌아온 그는 의자우에 주저앉으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소사 박로인은 다시 밖으로 나가버리였고 숙직실안은 또다시 고요해졌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누구인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찬수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체육선생 한숙경이 들어오고있었다.

《아, 선생님! 파티에 안 가시구 오늘 밤 숙직이세요?》

《네. 파티에 갈 자격이 됩니까? 하하하… 그런데 선생님은 왜 파티에 안 가셨어요?》

《나야말로 자격이 없죠. 나 같은 늙은이가 뭣하러 파티에 참가합니까? 뿐만아니라 초대두 않는데 불청객이 자래라고 치사스럽게 뭣하러 갑니까?》

한숙경은 약간 불평 비슷한 어조로 빈정거리며 편지함을 주르르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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