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비밀

3

 

영옥은 교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교실로 들어가 책가방을 주섬주섬 챙기여가지고 쏜살같이 학교정문을 나와 소로길로 빠졌다.

금방 찬비나 우박이 쏟아질것만 같은 침울한 날씨는 마치 자기의 심경을 상징하는것 같았다.

영옥은 어름어름하고 학교에 있다가는 암만해도 그 짐승같은 장교놈에게 끌려가고야말것 같은 불안한 마음과 불쾌한 생각에 가슴이 울렁거렸던것이다.

찬바람이 세차게 량볼을 후려때리건만 화끈화끈 달아오른 영옥의 얼굴은 추운줄도 몰랐다.

그는 이따금 자기뒤를 돌아다보며 집으로 향하였다.

공장안은 오늘도 여전히 고요하였다.

영옥이가 류치장에 들어가있는 동안 2중3중으로 역경에 처한 자기 집 공장운영은 드디여 문을 닫지 않으면 안되게 되고말았던것이다.

영옥은 죽은듯이 고요한 공장문을 열고 안채로 들어갈 때 새삼스럽게 자기 집 앞일이 걱정되지 않을수 없었다.

《어머니!》

영옥은 힘없는 발길로 마루에 올라섰다.

《오냐, 그런데 웬 일이냐? 오늘은 일찍 오게. 혹시 어디 아프냐?》

《아… 아니요.》

영옥은 침울에 잠긴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영옥은 오늘 교장 김치선이가 자기를 불러다 미군장교놈을 따라가서 선물을 받으라고 한 그 말이 자꾸만 생각되여 불쾌한 기분에 구역질까지 났다.

그는 자기를 석방시키기 위하여 40만환씩이나 남의 아가리에 집어넣고만 아버지가 한껏 원망스러웠다.

40만환이란 돈은 자기 집 공장운영에 큰 도움을 줄 돈이였던것을 생각하면 자기때문에 공장이 문을 닫게 된것이라고 느껴졌다.

차라리 선희나 인자와 같이 29일 구류처분을 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홍선생과 같이 형무소로나 넘어갔더라면 떳떳했을것이고 앞으로 선희와 인자와 홍선생 보기에도 면목이 설게 아닌가!

결국 자기때문에 귀중한 공장운영자금이 없어진것도 아까운 일이거니와 홍선생이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하게 된것이 더욱더 안타까왔다.

영옥은 자기를 석방시키기 위하여 운동비로 없어진 40만환이 바로 교복대금 잔액이였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교장 김치선의 악랄한 수단과 사기적방법이 한없이 증오스러웠다.

김치선이 그 돈을 감쪽같이 떼먹기 위하여 운동비의 구실을 붙여 자기를 석방시킨것과 그러기 위해 맹휴사건의 주동인물을 조선희와 백인자로 만들고 또 홍선생을 반미분자로 몬것도 부족해서 맹휴까지 선동한것처럼 죄를 덮어씌우도록 경찰과 야합한 사실을 알게 된 영옥은 너무나 분하고 억울하였다.

영옥은 오늘따라 학교에 다니고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고말았다.

김치선이와 같은 흉악한 협잡배요 또 미국놈에게 녀학생들을 제물로 바치면서까지 아첨하는 교활하고 비렬한 인간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졸업을 한들 영예스러울것이 무엇이겠는가?

영옥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홍선생이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인가를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교복을 벗고 허드레옷으로 바꾸어입은 다음 안방으로 건너갔다.

《너, 오늘 조퇴했구나.》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네.》

영옥은 선선히 대답은 했으나 자세히 이야기를 하고싶진 않았다.

《어머니, 나 래일부터 학교 그만두겠어요.》

영옥은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왜? 무슨 일이 있었구나? 또…》

《…》

《공장두 저 지경이 되고말았는데 너까지 학교를 그만두면 집안이 스산해서 쓰겠니? 몇달 안 남았으니 잔소리말구 그대루 다녀라.》

어머니는 정색을 하고 타이르듯 말했다.

《정말이지 학교에 다니구싶은 마음 손톱만치도 없어요. 아이들 보기가 거북해서도 못 다니겠어요.》

영옥은 내친김에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요. 왜 교장에게 그 돈을 잘라 먹였는지 몰라요. 아버지는 나를 위해서 그러셨겠지만 그것이 내게는 도리여 좋지 못했어요.》

영옥은 류치장에서 나온 이후 비로소 처음으로 자기 심경을 솔직히 말했던것이다.

《너 그런 소리 내게나 허지 아버지헌텐 입밖에 내지두 말아! 아버지인들 그 돈이 아까운줄 모르셨겠니? 그 알토란(매우 소중히 대하는 알쭌한 물건이나 재산)이 같은 대금을 아까운줄도 모르고 그놈들 아가리에 넣어준것은 그게 다 너때문이였는데 지금 와서 네가 생각없이 그런 소리를 해?》

어머니의 목소리는 높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뭐 그 돈으로 운동비를 써서 석방시켜달랬어요? 어머니두 좀 생각해보세요. 어찌 같은 사건에 검거돼가지구 들어가서 나 혼자만 쑥 빠져나와요. 백인자나 조선희가 나를 얼마나 욕하고 원망하겠어요. 또 홍선생은 나를 얼마나 미워하시겠어요.》

영옥이가 들이대자 어머니도 그 말에는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뒤이어 점잖게 영옥이를 꾸짖기 시작했다.

《얘, 너 철딱서니없는 소리 내지두 말아! 내 코가 석자나 빠졌는데 남까지 돌볼수 있니?》

《난 나 혼자만 석방된게 그렇게 고맙지두 않아요.》

영옥은 오늘 학교에서 당한 불쾌한 기분을 만만한 어머니에게 화풀이하려들었다.

《미친년같으니, 부모는 죽도록 고생해가며 석방시켜놓으니까 고맙지 않단 말이 웬 말이냐? 그래 걔내들허구 꼭같이 재판을 받았어야 좋았겠니?》

어머니는 역정을 내며 야단쳤다.

《나는 학교아이들을 볼낯도 없고 또 인자와 선희가 나온 뒤엔 무슨 낯으로 보겠어요. 걔들이 나허구 말두 안할려구 할거예요. 더구나 홍선생은 무슨 낯으로 대해요. 어머니두 좀 생각해보세요. 역정만 내시지 말구…》

영옥은 여전히 어머니에게 맞섰다.

《그러니 대체 어쩌란 말이냐, 응? 날더러 운동비를 당하란 말이냐? 기둥을 치면 대들보가 울린다구 너 결국 홍선생이 형무소에 넘어가도록 꾹돈을 안 써줬다구서 트집이냐? 앙큼한 년같으니… 그야 돈이 있으면야 응당 꾹돈을 써서 빼내왔어야 옳지. 모든 일이 너때문에 그렇게 됐으니깐…》

어머니는 여전히 언성이 높기만 했다.

영옥은 어머니와 맞서기를 피하고 휙 나와 건너방으로 들어갔다.

영옥은 무엇을 결심했는지 부리나케 옷을 벗고 나들이치마저고리를 바꾸어입은 다음 외투를 걸치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어머니, 나 어디 좀 갔다와요.》

《아니, 어딜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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